학교 안에서 사계절 1318 문고 129
김혜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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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서"라는 제목을 오래 본다. 또 얼마나 어둡고 아프고 속상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가?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제목만으로 어둡고 무거운 방향의 이야기를 예상한다. 학교는 그런 곳이니까. 열에 아홉은 그렇게 그려졌으니까.

책을 펼친다. 설정은 이렇다. 학교에 폭탄 테러를 하겠다는 메시지가 SNS에 올라오고,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학교 출입을 금한다. 마침 그날, 수련회나 현장체험학습 등이 있어 학교는 거의 비어 있다. 문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에 들어왔던 8명이다.

폭탄 테러에 대한 경고로 출발했으나 사건 전개는 스펙터클하지 않다. 추리 소설의 요소가 있으나, 퍼즐을 맞추는 흥미진진함이나 긴장감과는 거리가 멀다. 갇힌 인물들이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폭탄 테러나 범인 찾기, 밀폐된 장소에서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그리는 것이 작가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초점은 인물들의 현재가 아니라 과거이다. 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학교에 대해 어떤 기억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를 작가는 그려낸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어느 학교에서나 있을 법한 인물이고, 겪고 있거나 겪었을 만한 사건들을. 우리의 대부분이 학교라는 시공간을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하고, 통과하는 중이거나 통과했기에, 소설 속의 이야기는 나 내 친구, 동료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아프고 슬프고 답답하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학교는 문제적 공간인가? 왜 우리(사회)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문제를 풀지 못하는가? 문제의 원인은 학교에 있는가? 학교 밖에 있는가? 뜬금없이 안나 카레리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이 떠오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이 문장을 이렇게 바꿔본다. “학교를 좋아하는 이유는 모두 엇비슷하고(급식 때문에? 친구 만나려고?) 학교를 싫어하는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소설 속 인물 ()교사 한영주는 생각한다. “도대체 학교란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학교에 다녀야 하는가? 학생을 지키지 못하는 학교는 과연 학교라고 할 수 있는가? 여러 가지 물음이 한영주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영주처럼 나도 답을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문득 학교가 참 억울할 것 같다. 학교를 위해 변명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수많은 인물과 학교 안팎의 여러 요인이 얽히고 설킨 것이 학교의 문제인데, 제각기 다른 이유와 원인을 뒤살피지 않고 학교 탓만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이 이야기도 그러했다. 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흘이나 갇혀 있었음에도 학교 밖에서는 문제 해결에 무능하거나 미온적이었고, 학교 안의 사람들을 의심하면서 그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마침내 학교 문이 열렸을 때,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학교는 곧 문을 열고 학생들과 교사들은 사흘 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학교는 억울해하면서도 그들을 품고, 답을 모르는 문제를 풀기 위해 외로운 노력을 할 것이다. 학교는 그런 곳이이까.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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