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영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라이즈> 10년이 넘은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디비디를 구입하고 다시 본 이유는, 매번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을 때마다 볼수록 의미가 있는 영화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사랑과 이별을 수없이 반복해서는 안되겠지만. 2004년의 10월, <비포 선셋>이 개봉했을 당시 난 대학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취업준비생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취업준비생의 그 각박한 심정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난 여전히 책을 읽었고, 여전히 영화를 보며 돌아다녔고, 예전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무슨 배짱으로. 하여튼 그런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극장 좌석에 앉아 봤던 영화가 <비포 선셋>이었다.
<비포 선라이즈>는 이보다 9년전 1995년에 개봉한 영화다. 그러니 난 그 영화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비포 선셋>을 봤을 때 포스터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 전편이 있었구나. 언젠간 봐야지. 1995년에 나의 신분은, 고 1. 아 이런 파릇파릇한 넘 같으니. 그때 난 열심히 공부했을 때였다. 영화나 책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록음악에 입문했을 시기, 마냥 넥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그것으로 만족했던 시기가 바로 나의 고 1이다. 고 1 때 <비포 선라이즈>의 존재를 알았다 하더라도 당시 나의 취향으로 봐서 저 영화를 봤을리도 없다. 봐야 느끼는 것도 없을테니. <비포 선라이즈>와 <선셋>은 사랑을 경험하고 가슴아픈 이별을 경험한 이들이 봐야 의미 있는 영화다. 영화를 보며 나의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고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비록 이렇게 <비포선셋>을 먼저 보고, <비포선라이즈>를 뒤에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좋다. 혹자는 <선라이즈>를 먼저 보고 <선셋>을 9년 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 봐야한다고 하지만, 흠. 나의 상황이 그리 허락치 않은 것을.
프랑스 여대생 셀린과 미국 청년 제시가 만난 것은 기차에서 였다. 셀린은 할머니를 뵙고 가을학기 개강에 맞춰서 파리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제시는 마드리드에 유학 온 여자친구를 보러 왔다가 실연 당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서로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하다가 -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기차에서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급적이면 고급스러운 연애소설이 좋겠다. 알랭 드 보통 같은. 연애소설을 저급과 고급으로 나누는 것은 좀 뭣하지만, 그래도 그냥 웃고 우는 연애소설이 있고, 생각하게 하는 연애소설이 있다 - 식당칸으로 자리를 이동 본격적인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 제시의 엉뚱한 제안을 받아들인 셀린은 제시와 함께 내려 비엔나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영화는 <비포선셋>과 마찬가지로 장면의 전환이나 별다른 사건 없이 밋밋하게 진행된다. 그러니 영화를 통해 재미를 찾으려는 사랑에 무관심한 이들이 보면 에이 지루해 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영화다. 그러나 난 이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움직임 없는 정적인 배경과 화면, 장면의 전환보다는 카메라가 주인공을 따라가며 장면을 이어나가는 그런 영화. 주인공의 대사와 작은 손짓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영화. <비포선셋>은 그런 영화다.
제시는 오락실(?)에서 셀린과 핀볼을 하며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차였을 때 제일 못 견디겠는게 뭔지 알아?"
"내가 예전에 찬 여자들을 거의 생각안하듯, 날 찬 여자도 날 거의 생각 안할거란 걸 깨닫는 순간이야. 날 찬 여자도 슬플거라 생각하고 싶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차고 나니 속 시원한데!, 그 뿐이야"
내가 지금 가장 못견디겠는건 어쩌면 이별의 슬픔 때문도 아니고, 그녀가 보고 싶기 때문도 아닐지 모른다. 가장 못견디겠는건 내가 예전에 찬 여자들을 생각안하듯, 날 찬 그녀가 날 거의 생각 안할거란 걸 안다는 것이다. 날 차는 순간 눈물을 보였지만 그것은 이별의 수순일지도 모른다. 이별하게 되면 눈물이 나올 수 있다. 물론 그보다 더 매멸차게 차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 가혹하고 차고 있는 나 자신도 너무 나쁜 놈이 되지 않는가. 내가 좋은 놈이 되고, 상대에게 가혹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서 눈물을 보여주는 것. 이별을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다.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나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 또한 어쩌면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차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난 연애를 하고 찬 적이 없었다. 초창기에는. 왜냐면 차인다는 사실 자체가 여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갈 거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난 감히 여자를 찬다. 예전엔 사귀었던 여자가 싫어져도 상대가 날 차게끔 만들었지만 - 아픔을 덜 받게 하기 위해서 - 지금은 그냥 찬다. 가혹하다면 가혹한 것이지만 그렇게 착한 남자가 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착한 남자로서의 삶은 너무 힘들다. 난 예전보다 점점 못되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런 내 자신에 만족한다. 아직 멀었다. 아직도 난 착한 남자다. 너무나도. 더더욱 못된 놈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도 시간이 좀더 흐른 뒤에 내가 화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내가 찼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삐걱대고 있었으므로.
* 두 사람은 비엔나의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한다. 혼자 되는 법을 모르는 두 사람은 사랑을 원하고 있다.
셀린과 제시에게 있어 단지 기차에서 내려 비엔나를 돌아다닌다는 사실 이외에는 변화된 것이 없다. 두 사람은 여전히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 인생, 사랑, 결혼, 죽음, 실연 등 그들이 나누는 소재는 각자의 삶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갑작스레 다가온 사랑에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셀린과 제시. 그들은 공원에서 누워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리고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다.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나잇 과는 다른 개념이다. 겉으로 볼 땐 원나잇 맞다. 하지만 그들이 나눈 사랑은 원나잇과는 다르다. 보통의 원나잇이 그저 섹스를 위해 이성을 찾아나서 눈맞으면 함께 섹스하고 끝내는 그런 관계인 반면, 셀린과 제시의 사랑은 비록 하루였고, 우연적이고, 갑작스럽긴 했지만, 서로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진 기간은 비록 하루였지만 두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이미 상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있었다. 볼 수 없다고, 만날 수 없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 볼 수 있을지, 언제 만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음에서 피어난 감정의 싹을 스스로 잘라야하는지도 모른다.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 오늘 하루만 이렇게 함께 있기로 약속했지만, 헤어질 때는 이미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안다. 기차가 떠나갈 무렵, 일년 뒤 바로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대답은 <비포선셋>에.
하나 더. 제시는 셀린과 핀볼을 하며 이런 이야기도 한다. 사랑은 혼자 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흠. 그런가? 난 혼자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혼자 일하고, 혼자 책보고, 혼자 영화보고 하는 행위들을 난 즐긴다. 나의 취미는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당구도 못치고, 볼링도 몇번 쳐본게 다고, 축구, 농구, 야구 이런거 하나도 못하고, 스케이트, 스키도 타본적 없다. 내가 관심갖고 있는 분야는 그림그리기, 글쓰기, 책읽기, 악기 연주하기, 영화보기 등 순 혼자하는 것 뿐이다. 그렇담 나는 혼자되는 법을 아는 사람인가? 하지만 불행히도 대답은 '노'다. 난 혼자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내가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순전히 '취향'의 문제다. 혼자 되는 법을 아는 것과는 별개다. 난 혼자 되는 법을 모른다. 난 항상 외롭고, 타인과의 소통을 원하고, 함께 이야기하길 원한다. 그러므로 제시의 말에 따라 결론을 내리면, 난 사랑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