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7년만에 만난 친구 K

 

  오랫만에, 정말로 오랫만에 만나 내친구 K.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봤다. 헉. 이런 정말 오래됐군. 고등학교 때 나는 그와 같은 반을 한적도 없었고, 그다지 친한 친구도 아니었지만, 학교 야자 독서실 바로 옆자리에서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사이다. 야자 독서실은 성적순으로 자르는데, 그는 고등학교 입학 시 수석으로 들어왔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갈 때 수석으로 올라갔다. 그는 재수를 하고 서울대 생명과학부를 졸업, 현재 군대를 안가고 카이스트 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고있다 했다. 나는 재수요청을 거부하고 걍 일단 가고보자 해서 가서 맞지도 않는 경제학과 때려치고 철학으로 전과해 - 그렇다고 공부한 것도 아니야 - 예술한답시고 북이나 퉁퉁 두드리며 졸업했다. 그리고 현재 고대 교대원 재학중.

  그는 정말 학창시절 싸이코였다. 진정한 싸이코였다. 하는 행동이나 생각이나. 친구들은 그를 항상 싸이코라고 불렀다. 지구과학 샘과 축구 내기를 해서 지는 쪽은 축구를 안하겠다고 했다나. 그래서 정말 지구과학샘은 얘를 어떻게든 이기려고 야밤에 혼자 축구연습을 했다하고, 얘는 일부러 내기에서 졌다 한다. 그 샘이 얘를 공부시키려고 그런다는 걸 알기에. 첨에 딴지걸길 어디 그렇게 축구만 해서 좋은 대학 가겠냐고 시비를 걸었단다. 내가 아는 싸이코 짓은 사소한 것부터 몇가지 안되지만, 흠. 그는 지금도 우리 학교에 싸이코로 알려져있다고 한다.

  반면 난 그 지구과학 샘을 무쟈게 싫어했다. 고2 내가 방황하던 시기, 학원에서 어떤 여자애를 짝사랑했는데 -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전혀 이해가 안되지만 - 그 여자아이는 우리반에 다른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는 넘을 좋아했다. 자존심 상한 나. 학원에서 소주먹고 노래하고 누워자고 별짓거리를 다하며 고 2를 보냈다. 그 여파는 고 3 졸업때까지 안가셨다. 여튼 이걸 안 지구과학 샘이 다른 반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짓거렸나보다. 어떤 전교 1등 놈이 여자 때문에 어찌어찌하고 있다. 본 받지 마라 라는 식으로.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 그 담부터 난 지구과학 수업을 안들었고, 수업 시간 내내 그를 째려보는 내게 그는 물었다. "아니 재형이는 왜 날 싫어하는거니?" 난 결코 입을 안벌렸다.

  고 2,3 내내 누군가 날 잡아주길 원했지만 아무도 날 잡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을 마쳤고, 몇몇 아이들은 재수를 해서든 수능 대박을 해서든 의대를 갔나보다. 어제 K로부터 들었다. 어떤 고만고만했던 놈은 대박나서 강원대 의대갔고, 어떤 넘은 한양대 의대갔고, 어떤 넘은 설대 전기공학과 갔고 머 그런소리들. 후훗. 그래 누굴 탓할 소냐. 내가 끝까지 잘 되서 그런데 갔어도 아마 적응 못했을 터. 난 인문학을 하고 싶었으니까. 나중엔. 아마 거기서도 전과를 했을거다. 의과갔다면 의과에서 철학과나 사회학과로. 뭐 잘되서 정신과로 갔을수도 있지만.

  이 친구는 현재 카이스트에서 생명공학에 몸담고 있는 거 같은데 전문용어 말해봐야 난 못알아듣고 기억도 못한다. 황우석 관련된 일을 하고 있나보다. 언론에서 떠드는 젊은 과학자 중 한명이 자기라고 한다. 황우석을 비판하는 젊은 과학자. 요즘 무쟈게 바쁜가보다. 쉴 틈이 없단다. 토요일은 고등학생 수학 과외 해주러 서울왔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한다. 오랫만에 만나 조용하고 어두운 바에서 - 여긴 내가 가자 했다. 난 이런 분위기가 좋다 - 맥주 3명씩 나눠먹으며 - 아 세명이면 난 맛간다 - 이야기하고, 고속터미널로 이동 서점 구경하면서 책 이야기하고, 또 나와서 이야기하고. 그러다보니 11시가 넘었다. 헉. 무슨 남자 둘이 모여서 그렇게 이야기들을 하는지. 난 원래 말이 별로 없고 들어주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서 추가 의견을 제시하는 스타일이라 내가 대화를 이끄는 적은 없다. 그러니 얘 혼자서 그렇게 야기를 많이 해댄 거다. 후후. 결국 그러다 11시 넘어 난 집으로 오고 그놈은 거기서 심야버스를 타고 학교로 횡.

  간만에 만나 고등학교 이야기 듣고, 또 졸업한 얼굴도 기억 안나는 넘들 이야기를 들으니 재밌다. 어떻게 그렇게 선생님들 성함을 다 기억하고, 애들을 다 기억하는지. 나의 머리 속엔 고등학교 시절은 지워졌다. 군대 시절이 지워져있듯.

 

잡소리 하나.  공부 잘해 맨날 수능 1등만 하던 넘이 있었는데 설대 전기공학과 가서 흠. 여자친구랑 일내고 3년전인가 4년전인가  결혼했단 소식을 듣는 순간. 하하. 뭐가 그리 웃기던지. 엄청 맞았단다. 또 강원대 의대 간 얼굴이 희미하게 기억나는 쬐만한 넘도 역시 거기 대학에서 여자 쫓아다니다 결국 사귀었는데 일내서 결혼했단다. 흠. 그넘들 참... 학생 부부일텐데, 지금은 아니겠구나. 고생 좀 했겠군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부럽기도 하고. 일찌감치 결혼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여유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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