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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앞으로 가.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를 그는 등뒤에서 들었다. 괜찮아. 그냥 앞으로 걸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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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리스닝 플래너 (책 + MP3 CD 1장) - 듣기평가에 나오는 상황으로 떠나는 리스닝 어학연수 My Planner 6
대한교과서 Eng-up 영어연구모임 지음 / ENG-up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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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와 듣기를 재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영어교재
-나의 리스닝 플래너(대한교과서 ENG-up 영어연구모임) 


                                                                                                                     정 수 연

(Peace Agit, http://peaceagit.tistory.com/)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해외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살고 계신 호주에 방문했었는데, 영어 때문에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영어를 못한다고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공항 입국심사를 밟는 과정에서부터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당황했던 것이다. 점심을 사먹으러 패스트 푸드점에서 주문할 때나 할아버지께서 주차장에서 백인 남성들과 실랑이를 벌이실 때, 심지어 4살, 10살 박이 호주 태생 조카들과 의사소통할 때조차, 강한 악센트를 타고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영어는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귀 기울이느라 인상도 쓰고 동양인으로서 조금은 소심해지기도 하였던 듯.  

   한 번은 백화점에서 길을 잃어 방송실에 들러 도움을 청한 일이 있었다. 담당 직원이 ‘Announcement’를 하겠느냐고 제안했다. 언니와 나는 그 단어를 여러 번 듣고도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그 단어가 그 ‘쉬운’ 단어임을 알았고, 영어 악센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담당 백인 남직원 중 한 명은 우리가 계속 멍한 표정을 짓고 서있자, "Crazy Korean!"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런데 욕설은 왜 그렇게도 크고 또렷하게 잘 들리는가? 분노가 일어 항의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영어를 잘 하고 말리라!’하고 분투심이 일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영어소통의 어려움은 누구나 겪을 법한데, 생활 속에서 직접 접하는 영어의 세계는 참으로 달랐던 것 같다. 

   이번 2010년 목표 중 하나로 영어실력 회복 및 향상으로 잡았다. 그래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흥미로운 교재들을 물색했다. 나는 창의적인 시도와 교육방법론을 선호하는데, 이래야 지속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이다.  

   영어를 놓았다가 다시 시작하려는 성인들에겐 중학교수준 영어부터 다시 공부하라는 조언을 듣곤 한다. 그것을 목적으로 제작된 교재들도 꽤 많이 출간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영어권 나라에서의 일상회화 단어수준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듣기는 쉽지 않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교재들을 살펴보니, ‘대한교과서 ENG-up 영어연구모임’이라는 연구팀이 눈에 띄었다. 이 연구팀은 문법, 어휘, 독해 등 각 영역별로 ‘플래너 시리즈’를 연속 기획, 출간하고 있는 중이다. 그 중 <나의 리딩 플래너1>은 무서운 마녀 이야기를 읽어가는 독특한 구성과 설정으로 주목을 끈 바 있다.

   듣기 역량을 키우고 싶은 나는 듣기 파트가 우선 궁금했다. 일상적으로 외국인을 만나거나 해외여행을 갈 일이 있었을 때, 기본적인 회화가 안 되는 것이 답답해 도움을 청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나의 리스닝 플래너My Listening Planner' 신간이 출판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상당 부분 이런 욕구에 부응하기에 만족스럽다. 간략하게 표로 정리해 소개해보겠다. 

1. 난이도: 단어-中下 / 내용: 中 
 2. 다루는 상황: 전반적인 실생활

               예) 공항, 대중교통, 길 찾기, 은행, 우체국, 백화점, 가게, 
                    식당, 병원, 전화통화, 수업, 여행, 호텔 등

3. 듣기 속도: 토익TOEIC 듣기영역 속도보다 느림. 
                   수능 모의고사와 비슷하거나 살짝 빠름.

4. 학습대상: 중학교 수준으로 다시 공부하려는 성인 
                  상황별 기본회화표현을 익히려는 수능기초듣기 준비생 & 중학생

 

   교재는 외국에 나갔을 때나 한국에서 외국인을 맞닥뜨릴 때 적합한 회화로 채워져 있다. 각 상황별로 4가지 버전의 에피소드로 분화돼 적용도 및 적응력도 높였다. 외워두면 쓸모 있을 표현들이다.  
   회화를 듣고 스크립트Script를 받아쓰면서 통째로 외우는 방법도 도움이 되겠다. 하지만 이 방법부터 시도하기가 어렵다면, 교재에 마련된 빈 칸 채우기를 활용해도 좋다.(Build Your listening s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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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발음 듣고 연습해 보기” 코너는 문장 속에서 미세한 발음차이를 구별하며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예) The (Canadian/Canadians) came to our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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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일정 학습 분량을 정해서 꾸준히 반복청취하고 암기한다면, 시험을 대비하고 실생활에서 적용하는 데 유익할 것이다. 나는 2월 말부터 이 교재로 날마다 10분-30분, 듣기 연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넘어간 날들도 있었지만 어제, 오늘까지 지켜지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손이 가는 교재임에도 아쉬운 점이 있어 세 가지를 제안한다. 

1. 듣기 보강 
 1) -“시작하기 전에 알아두기” 코너에 있는 자음, 모음 파트 
    -“Chapter 시작 페이지”마다 소개된 주요표현 파트 

  

  이 파트들이 청취 가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음, 모음에 소개된 단어들 뜻도 하단에 함께 제시해주면 좋겠다. 학습자가 일일이 단어를 찾는 것은 영어 학습에 필요한 자세지만, 시간을 절약해주는 것 또한 영어교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또한 Chapter별 주요표현들은 본격적인 에피소드episode에서도 등장하나, 독립적으로 들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학습효과에 따라 에피소드 청취 전이나 후에 배치하면 좋을 것이다. 또 한 가지. p.27 “발음 듣고 연습해보기” 코너에서 -s를 구별하는 문장 모두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장 속에서 발음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푼 이후에 다시 들을 수 있도록 배치하는 방안도 있다.     

 

 

 2) ‘...이런 표현도 알아 두세요’ 코너 
   부록 CD에 이 코너 듣기가 없으니, 다음 번 제작할 때는 삽입하기 바란다.

2. 사이즈 변경 제안 
   사이즈가 A4인 이 교재가 소지 가능하도록 축소했으면 좋겠다. B5나 손에 쏙 들어오는 다이어리 크기 정도인 포켓용으로 제작한다면, 이동하면서 공부하기 편할 것이다. 주요 소비층을 10대로 잡은 것을 감안하면 이해되는 바이지만, 문제집 크기와 표지는 식상하고 재미없다. 문제집이지만, 팬시적인 감각이 가미됐으면 좋겠다.   

 

3. “시작하기 전에 알아두기” 수정 
   이 코너는 청취를 위한 사전교육을 끼워 넣은 셈인데, 읽기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지루하게 나열돼있다. 동일내용일 지라도 읽기 편하게 시각적인 레이아웃을 더하면 어떨까? 

 

  총평. <나의 리스닝 플래너>는 표지 상단엔 ‘듣기 평가에 나오는 상황으로 떠나는 리스닝 어학연수’라고 표기돼 있다. 홍보된 대로, 상황별 회화의 기본뼈대가 잘 간추려져 있다. 영어를 새로 다시 시작하려는 성인, 일목요연하게 상황별 표현법을 숙지하려는 수능 듣기기초 준비생과 중학생들에게 유익한 교재가 될 것이다.  <나의 리스닝 플래너>, 쉽고 재미나게 듣기/회화에 접근해서 자신감을 살려줄 수 있는 교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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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비밀 The Secret 실행편 - 100년간 숨겨진 부자들의 교과서
월러스 워틀스 지음, 김우열 옮김 / 흐름출판 / 200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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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시대이든 공동체의 고통을 공감하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제시하며 그것에 응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1910년에 출간된 <부의 비밀>을 읽다 보면, 당시 전 세계를 휩쓸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횡행했던 시기에 근대적 과학방법론의 얼개를 차용해 대안적 가치관과 세계구원의 방식을 설득하려던 한 지식인의 노고를 얼핏 접하게 된다. 
 
  저자 월러스 워틀스는 저항적 노동운동과 인간소외를 낳는 자본주의 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듯 보인다. 또 ‘자발적 가난’과 같은 불필요한 물질을 넘어선 영적 깨달음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는 일종의 마법사와 같이 물현을 통한 창조영성의 손을 들어준다. 

  그에 의하면, ‘부’란 모든 사람의 재능이 발현되고 공동체가 이로워지는 상태이며 동력으로서 새롭게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부자가 되고 부를 창조하는 것은 유익하고 선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재한 삶의 방식은 경쟁인데, 경쟁은 자원과 기회가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파생되고 고무된다. 그러나 이 세상을 배태하고 운영하는 우주의 에너지는 고갈될 수 없으며 근본원소로서 무한하다. 그것은 <신>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신은 결핍과 경쟁이 아니라 창조하려는 의지에게 부로서 응답한다.  

  가난한 자는 자본이 자본을 증식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난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억눌린 존재가 아니다. 자본은 소외의 기반과 수단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이 인간의 본원적인 주인은 아니다. 저자는 가난한 자를 그 내부의 가능성을 펼치는, 부자가 되고 있는 진행형의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그의 미래적 능력을 축하할 것을 권한다. 그럴 때 그가 힘을 얻고 신뢰를 통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의 내부에서 가능성의 영역이 일깨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각 사람들의 편견을 바꾸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세상을 창조하는 근본이기 때문에 마음의 판, 인간과 세상을 대하는 존재방식을 인간의 존엄과 신성한 우주에 대한 겸손을 향해서 맞추는 것이다.

  방법론상에서 이견이 있는 부분은 부유해지기 위해서 주변에 널린 가난을 쳐다보지도 말라는 처방이다. 이 방법론에는 그다지 가슴이 울리지 않는다. 대안적 가치는 어느 상황에서나 통합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나, 가치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도식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가난을 쳐다보는 것 자체가 가난에 대한 동일시와 내사를 자동적으로 낳지는 않는다. 관건은 어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가이다. 비폭력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인들에게 비폭력사상을 가르칠 때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차라리 그들에게 군에 입대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분노하고 저항해본 사람이, 그리고 그것의 고통과 파괴성을 뼈저리게 절감한 사람이 비폭력의 힘을 납득하고 비폭력의 세계에 헌신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공감 없는 조언과 훈계를 통해서 변화하지도, 깨어나지도 않는다. 그 조언자가 밑바닥을 치고 올라온 자라 해도. 자비의 부유함은 공감과 인내를 포용한다.

  하지만 때로 존재의 힘을 회복하고 내부의 소리를 따를 때 타자의 고통을 공감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정말 그것을 안 보고, 그것과 잠시 거리를 두면서 내부로 피정retreat을 떠나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은 타자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연민할 수 없음에도 힘을 쥐어짜내서 연민하려고 애쓰고 연민하는 척 가장하는 것보다 자신의 한계를 정직하게 수용하고 자신을 돌보는 편이 미래를 위해서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인이 아니라 어린이일 경우, 지배적 현실을 능가할 수 있는 권능에 대한 믿음을 교육 받지 못한다면, 자본주의적 경쟁과 비교, 부족의 관점이 프로그래밍 된 눈으로 자신의 처지와 세상을 바라보도록 길들여지게 될 소지가 커진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작금의 지배적 가치를 전수하고 대변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에게 창조영성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경쟁과 결핍이 아니라 나눔과 창조의 가치, 타자로부터 기여 받고 서로 기여한 것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넉넉한 삶의 자세를 생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 가족, 사회, 직장, 국가, 그 어느 곳에서도 한 개인의 원은 무시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배가치와 위계를 초월하는 근본원소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보호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제는 개인과 더불어 이웃과 ‘풍요의 원Circle of Abundance’을 짜는 것도 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창조영성의 의의와 재미는 기존 체제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는 악동과 같은 신의 아이들이 세상을 놀이터로 만든다는 데 있다. ‘피해자’, ‘피억압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을 때, 성폭력생존자가 수치스러워하거나 낙담하거나 고통에 절어있지 않고 체험을 유머로 변형시키고 호탕하게 웃어젖힐 때, 사람들은 그 모습의 낯설음과 이질성에 너무도 당혹스러워 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들은 울어야 하고, 우울해야 하며, 힘들어만 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 이다. 지배적 가치가 투영된 얼굴이 아니라 빛나는 얼굴을 스스로 빚는 기쁨은 결코 제압될 수 없고 엄연히 살아있다. 그 어떤 사람도 창조적일 때 웃는다. 아니 웃어서 세상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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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된 CEO -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편견을 뒤집어라
조한필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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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감대화’라는, 타자와의 비판단적인 연결을 지향하는 의사소통과정을 수행하고 가르치다 보니, 관계 속에서 심판하지 않는 관찰이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수월하게 알려줄 수 있는 참고자료를 찾고 있었다. 또 경영과 경제에 대한 앎을 보완하고 싶던 차, ‘개과 된 CEO’의 소개글과 목차를 접하곤, 이런 욕구에 부응할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가 들었다. 그러나 막상 책이 배달되고 난 후엔 책장에 꽂아두고 하얀 껍데기만 가끔 쳐다보고는 밀쳐두고 있었다. 나는 자기계발에 관심이 있고 그 쪽 방면 책도 꾸준히 읽지만, 아직도 자기계발 영역은 자본주의 하에서 성취에 매몰돼 있다는 저항감을 갖고 있던 탓이다. 그런데 추석 연휴에 책을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가는 동안, 저자의 노고에 깊이 몰입되고 교감할 수 있어서 재미 있었고, 읽고 나선 기대 이상으로 흡족하기까지 했다. 

  주인공은 ‘고대명’이라는 가상 인물이다. 잠 한 숨 자지 않고 중소 컴퓨터 업체에서 세계굴지의 기업으로 발돋움하고자 노력한 이 남자, 지방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쓰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게으르고 무능력하다며 그들을 가차 없이 해고하며,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경쟁 회사를 인수합병하면서 무자비하게 국내 컴퓨터 업계 3위권으로 회사를 진입시킨다. 그런데 어느 날, 부당해고에 농성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피해 엘리베이터로 뛰쳐들었을 때 그는 개로 변하고 만다. 그 후 순례하듯, 그는 자신의 편견이 직원들의 능력을 보지 못하는 장벽이었으며 회사마저 무너뜨리는 원인이었음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아집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며 회사를 회생시키고, 그 자신의 인생관과 사업관이 통째로 변모한다. 이 과정에서, 고대명으로부터 편견의 희생자가 된 타자들이 본래의 얼굴, 자질, 생활을 오롯이 드러낸다. 

 

  읽는 도중, 나는 종종, 책 껍데를 들춰보곤 했다. 거기엔, 학력, 경력, 나이, 성별, 얼굴도 알 수 없이 필명으로 예상되는 ‘조한필’이라는 지은이 이름과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등에서의 사회적 갈등을 통합하고 좀 더 풍요로운 우리의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3년여에 걸쳐 이 책을 준비했다. 이 책을 통해 지은이는 정신적인 장애로까지 분류되는 ’편견‘에 대한 길고도 유쾌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편견이 상호 간의 ’이해‘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작가의 말을 대신한 듯한 짤막한 책소개가 있었다.

 

  나는 자기계발 영역이 표피적인 자기성취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경영계에서 성찰, 연민, 공생이라는 가치를 호소하는, 녹록치 않은 고민과 끊어진 것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를 접하며, 이 저자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어느 영역에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3%~10% 비율로, 타자에 대한 연민compassion을 유지하는 인간이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 중앙부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시장에서 권력관계에 알처럼 매달려 있는 기업가, 노동자, 직원, 외국인, 여성, 장애인 등, 서로에게 뭇 타자들인 각자의 가치와 욕구를 동시에 조망하며 헤아릴 수 있는 이런 사람의 시선이 귀하다. 저자의 3년간의 노고를 마음으로 축하하고 지원한다. 어느 영역에나 그 심층에서는, 인간애를 기억하고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으론 네 가지 면에서 가슴이 울렸다. 첫째, '조의지'라는 장애여성이 뛰어난 국내 스카우트가 되는 과정을 연설하던 중, 200번 이상 면접을 봤다는 대목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픽션이지만,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200번 퇴짜를 맞아도 200번 면접을 보면서 한계를 뚫고 면접관들의 가슴마저 터치하는 불굴의 의지에 동요된 것이다. 구조적인 차별은 언제나 숨 막히는 현실이고, 장애를 극복하는 신화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감상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지만, 구조적인 차별 너머로 하체를 내밀어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가 설 땅을 당당히 주장하는 사람들의 발성은 언제나 가슴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뜨겁고, 힘차며, 가슴 벅찬 것이다. 둘째, ‘나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라는 조언. 타자에게만 편견을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능력과 가능성, 존재 자체에 대해서조차 한계를 긋고 야단을 치기 십상인데, 자기가 자기에게, 공동체에서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향해 나아가도록 격려 받는 것 같아서 내심 자신감이 들었다. 셋째, 기업가들도 노력하고 있으며, 노조도 필요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는 협력자임을 부각하며, 기업 내 외모/성별/지역/종교 등이 지배하고 있음을 조목조목 소설적 장치를 통해 발언할 때마다, 낮음과 낯설음으로 시선을 전환하는, 연민 어린 정의를 느낄 수 있었다. 타자들이 서로 엮어 공동체를 일궈갈 때, 서로 힘을 북돋기empower 위해서는 겸손, 이해, 관심과 배려의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 넷째, 과거에 자신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증오를 받아 개가 된 또 다른 개가 소명을 일깨우며 넉넉히 살아가는 지혜를 들려주는 장면들. 실패가 새로운 삶의 가치로 변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내 가슴에 남아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고대명을 곁에서 돕고도 늘 2인자로 물러서야 했던, 그래서 억울함과 설움을 설욕하고자 인정투쟁을 벌였던 제갈 전무가 고대명으로부터 끝내 공감 받지 못한다는 점. 이 사람의 내적 과정은 지켜볼 수 있으나, 소설 안에서 그는 밀려난다. 

 

  마치 이 책은 자기계발의 불교적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 셋에게 용서를 구해야 개에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주술은 마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하고 회개하는 장면과 겹쳐진다. 타자를 편견과 선입견에 기반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서로가 바라는 것과 서로의 재능을 마주볼 수 있으며, 그 다름이 번영으로, 분리된 것들이 통합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꿈을 꾸고 있다. 어쩌면 이 자기계발서의 형식은 소설이었어야 했을 것이다. 현실 안에서, 현실이 아니나 지극히 현실이 되길 기다리는 공동의 비전을,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펼쳐내고 상상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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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요즘 무슨 음악 듣고 계세요?
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판독 불능의 책
류수안 지음 / 문학아카데미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나선 한 구역. by 라라라.

  

 땅, 섬, 바다, 사막, 산, 모래, 이스터 섬과 피라미드와 메소포타미아와 같은 고대 유적지와 집, 신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무녀들, 파랑과 황금과 빨강, 시간과 밤과 낮, 어둠과 빛, 사자와 표범과 소와 호랑이와 고양이와 늑대, 소리와 말과 침묵과 음악, 달과 태양, 공간과 건축, 죽음, 배, 장미, 돌과 보석, 사람, 지향…………………………. 이런 키워드들이 나선형을 이루면서 어떤 곳을 향해 가고 또 먼 곳으로부터 되돌아온다. 무언가를 실어 나른다. 

  <판독불능의 책> 표지에 있는, ‘환상으로 봉인된 108편의 엽편소설’이라는 문구는 이 책의 장르를 규정해주는데, 나는 신화와 형이상학, 상상력이 교통한 류수안 시인의 아니무스가 들려주는 사상을 접한다. 겉으로 보기엔 재미없고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5분을 읽어도 마치 50분을 읽는 것처럼, 시간이 정지하고 영원에 머문다. 그리고 어떤 따뜻한, 존재를 스미는 심원한 재미. 인식의 단맛이 난다. 나는 한 편씩 읽을 적마다 자주 괘종시계를 쳐다보곤 하였다.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고작 몇 분만이 지났을 뿐인 신비. 이 사람, 시간을 이렇게 부리다니, 능력이 대단한데? 나는 자주 겉날개 안쪽을 펼쳐 류수안 시인의 사진 속 얼굴에 눈길을 두고 그녀를 망연히 들여다보곤 했다. 수원에 살면서 날마다 시립도서관에 방문해 책을 읽는다지? 이런 저런 저서들을 독파하고, 눈을 내리깔아 허공에 명상하듯 머물고 걸으며, 비록처럼 우주를 담아 한 땀 한 땀 기록했겠지? 108 번뇌를 탈하듯 108편의 경을. 이 책의 장르를 두고 저자는 ‘미니픽션’이라고 칭했으나, 시, 희곡의 형태를 갖춘 글들도 함께 실려 있다. 목소리는 장르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장르를 낳고 그것을 휘돌아 거쳐 간다. 

  목소리에 몰입하다가 나는 두어 번 놀란 적이 있다. 어느 순간, 문자 너머에서, 공기가 기하학적으로 구겨지고, 어떤 이미지에서는 똑똑 물방울이 육체에 떨어지는 선득함을 체험한 것이다. 잎사귀처럼 돋아 공간을 점유하는 무음의 음. 에테르에서 벌어지는 일일까? 그것을 혼의 종이접기와 실험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아주 오랜만에 문 열리는 대면과 소통. 나는 문자가 들려주는 내용에는 무관심하다. 나는 그 문자를 타고 오는 파동을 통해 문자가 저 스스로 지워지면서 혼과 닿을 때 나직하게 행복하다. 그것은 직접적인 혼연이다. 

  ……그녀에게서는 현실에 다가가는 데 어떤 머뭇거림과 주저함이 감지된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어떤 불안한, 연속적인 불연속성과 거리. 하지만 그녀에게 여성은 감청색과 파란 색 치마를 입고 지상에 온 범속하면서 신성한 절대이기도 하다. 낮에, 사체로, 만천하에 충격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해도, 인류가 늘 기억하고 매혹되는 원시적인 창조주의 현현으로서. 또 살아서는, 성적인 대상물인 냥 남성들의 시선과 그 시선으로부터 무시된 그러나 주목 받고 싶은 여성들의 질시를 받더라도, 적나라하게 알몸으로 자유의 화신으로서 유유하게 만찬의 중심에 앉는다. 숲, 대낮에! 아마도, 이 모든 광경은 만다라일 것이다.     

  그녀의 발화는 뚝뚝 걷다 멈추는 절름발이 같다. 어쩌면 판독불능인 그것을 말과 침묵으로 이중창 하느라 그저 지나가는 리듬과 단속하고, 혹은 시에서 시적인 산문의 세계로 이주하느라 과도기적으로 어설퍼서인지도. 그러나 돌이자 뼈인 보석들이 반쯤 지상에 돌출하는 것을 목격할 적마다, 우뚝 멈춰 서, 그 빛을 빤히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죽을 때마다 무한의 뼈마디 한 척씩 생을 띠며 융기하는 거. 결국, 서로 못 알아듣고 어긋나는 시간 안에서, 진흙 속에서, 이웃과 땅과 친화하며, 온몸으로 뒹굴면서, 의사소통하는 법을 탐구한다. 

  이 책에서 불만족스러운 점은, 책 만드는 사람들의 노고와 현실, 진정성을 존중하면서도, 편집과 디자인, 삽화가 단조롭고, 교정이 더 온전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뛰어난 작품이 그 본연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시각적인 장치가 뒷받침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글 내부만으로 한정하면, 과연 그 어떤 형상이 이 심연, 이 우주에 어울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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