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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된 CEO -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편견을 뒤집어라
조한필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공감대화’라는, 타자와의 비판단적인 연결을 지향하는 의사소통과정을 수행하고 가르치다 보니, 관계 속에서 심판하지 않는 관찰이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수월하게 알려줄 수 있는 참고자료를 찾고 있었다. 또 경영과 경제에 대한 앎을 보완하고 싶던 차, ‘개과 된 CEO’의 소개글과 목차를 접하곤, 이런 욕구에 부응할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가 들었다. 그러나 막상 책이 배달되고 난 후엔 책장에 꽂아두고 하얀 껍데기만 가끔 쳐다보고는 밀쳐두고 있었다. 나는 자기계발에 관심이 있고 그 쪽 방면 책도 꾸준히 읽지만, 아직도 자기계발 영역은 자본주의 하에서 성취에 매몰돼 있다는 저항감을 갖고 있던 탓이다. 그런데 추석 연휴에 책을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가는 동안, 저자의 노고에 깊이 몰입되고 교감할 수 있어서 재미 있었고, 읽고 나선 기대 이상으로 흡족하기까지 했다.
주인공은 ‘고대명’이라는 가상 인물이다. 잠 한 숨 자지 않고 중소 컴퓨터 업체에서 세계굴지의 기업으로 발돋움하고자 노력한 이 남자, 지방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쓰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게으르고 무능력하다며 그들을 가차 없이 해고하며,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경쟁 회사를 인수합병하면서 무자비하게 국내 컴퓨터 업계 3위권으로 회사를 진입시킨다. 그런데 어느 날, 부당해고에 농성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피해 엘리베이터로 뛰쳐들었을 때 그는 개로 변하고 만다. 그 후 순례하듯, 그는 자신의 편견이 직원들의 능력을 보지 못하는 장벽이었으며 회사마저 무너뜨리는 원인이었음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아집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며 회사를 회생시키고, 그 자신의 인생관과 사업관이 통째로 변모한다. 이 과정에서, 고대명으로부터 편견의 희생자가 된 타자들이 본래의 얼굴, 자질, 생활을 오롯이 드러낸다.
읽는 도중, 나는 종종, 책 껍데를 들춰보곤 했다. 거기엔, 학력, 경력, 나이, 성별, 얼굴도 알 수 없이 필명으로 예상되는 ‘조한필’이라는 지은이 이름과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등에서의 사회적 갈등을 통합하고 좀 더 풍요로운 우리의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3년여에 걸쳐 이 책을 준비했다. 이 책을 통해 지은이는 정신적인 장애로까지 분류되는 ’편견‘에 대한 길고도 유쾌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편견이 상호 간의 ’이해‘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작가의 말을 대신한 듯한 짤막한 책소개가 있었다.
나는 자기계발 영역이 표피적인 자기성취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경영계에서 성찰, 연민, 공생이라는 가치를 호소하는, 녹록치 않은 고민과 끊어진 것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를 접하며, 이 저자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어느 영역에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3%~10% 비율로, 타자에 대한 연민compassion을 유지하는 인간이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 중앙부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시장에서 권력관계에 알처럼 매달려 있는 기업가, 노동자, 직원, 외국인, 여성, 장애인 등, 서로에게 뭇 타자들인 각자의 가치와 욕구를 동시에 조망하며 헤아릴 수 있는 이런 사람의 시선이 귀하다. 저자의 3년간의 노고를 마음으로 축하하고 지원한다. 어느 영역에나 그 심층에서는, 인간애를 기억하고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으론 네 가지 면에서 가슴이 울렸다. 첫째, '조의지'라는 장애여성이 뛰어난 국내 스카우트가 되는 과정을 연설하던 중, 200번 이상 면접을 봤다는 대목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픽션이지만,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200번 퇴짜를 맞아도 200번 면접을 보면서 한계를 뚫고 면접관들의 가슴마저 터치하는 불굴의 의지에 동요된 것이다. 구조적인 차별은 언제나 숨 막히는 현실이고, 장애를 극복하는 신화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감상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지만, 구조적인 차별 너머로 하체를 내밀어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가 설 땅을 당당히 주장하는 사람들의 발성은 언제나 가슴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뜨겁고, 힘차며, 가슴 벅찬 것이다. 둘째, ‘나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라는 조언. 타자에게만 편견을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능력과 가능성, 존재 자체에 대해서조차 한계를 긋고 야단을 치기 십상인데, 자기가 자기에게, 공동체에서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향해 나아가도록 격려 받는 것 같아서 내심 자신감이 들었다. 셋째, 기업가들도 노력하고 있으며, 노조도 필요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는 협력자임을 부각하며, 기업 내 외모/성별/지역/종교 등이 지배하고 있음을 조목조목 소설적 장치를 통해 발언할 때마다, 낮음과 낯설음으로 시선을 전환하는, 연민 어린 정의를 느낄 수 있었다. 타자들이 서로 엮어 공동체를 일궈갈 때, 서로 힘을 북돋기empower 위해서는 겸손, 이해, 관심과 배려의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 넷째, 과거에 자신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증오를 받아 개가 된 또 다른 개가 소명을 일깨우며 넉넉히 살아가는 지혜를 들려주는 장면들. 실패가 새로운 삶의 가치로 변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내 가슴에 남아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고대명을 곁에서 돕고도 늘 2인자로 물러서야 했던, 그래서 억울함과 설움을 설욕하고자 인정투쟁을 벌였던 제갈 전무가 고대명으로부터 끝내 공감 받지 못한다는 점. 이 사람의 내적 과정은 지켜볼 수 있으나, 소설 안에서 그는 밀려난다.
마치 이 책은 자기계발의 불교적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 셋에게 용서를 구해야 개에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주술은 마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하고 회개하는 장면과 겹쳐진다. 타자를 편견과 선입견에 기반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서로가 바라는 것과 서로의 재능을 마주볼 수 있으며, 그 다름이 번영으로, 분리된 것들이 통합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꿈을 꾸고 있다. 어쩌면 이 자기계발서의 형식은 소설이었어야 했을 것이다. 현실 안에서, 현실이 아니나 지극히 현실이 되길 기다리는 공동의 비전을,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펼쳐내고 상상하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