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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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이 쓴 인문학, 열풍에서 개념으로”(Vol.19 201405월호, 98~103)라는 글이 있다. 그 글에서 정희진은 우리 사회에서 보통 공부로 간주되는 행위를 세 가지로 든다. 첫째, 입시 공부로 대표되는 지식과 정보의 습득. 둘째, 평생교육, 교양인으로서 독서, 여행, 인간관계, 실연 등 폭넓은 인생 경험. 셋째, 생각하는 노동. 정희진은 세 번째 공부가 가장 생산적”인 공부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생님, 연구자, 학자라는 표현을 넘어 사상가’(thinker)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공부다. 사상이 거창한 것 같지만, 단어 그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스피노자, 푸코, 니체만이 사상가가 아니다. 자기만의 사유 방식체계입장을 추구하는 사람, 자신만의 렌즈로 현실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다. 실력, 콘텐츠가 있는 사람이다.”

 

정민 교수의 신간 책벌레와 메모광에 등장하는, 제목 그대로 책벌레와 메모광들은 정희진이 말한 생각하는 노동으로서의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 아닐까.(정희진의 글 전체의 취지에 비춰보면 의미가 조금 다를 수 있다.) ‘책벌레와 메모광들은 무엇보다도 몸이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어찌 보면 미련스러울 만큼 우직하고 부지런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생각도 꾸준히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교서(校書)는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아 교정해가며 읽는 것이다. 읽다가 궁금하거나 의문이 생기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관련 자료를 뒤져서 내용을 확인한다. 잘못된 부분이 나오면 이를 바로잡고 여백에 메모를 남긴다.”(115)

얼핏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독서법(공부법)이다. 제대로 꼼꼼하게 공부하려면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도 궁금한 것을 일일이 찾아서 확인하며 책을 읽기가 힘든데, 정보도 자료도 기술도 부족했던 조선 시대 사람들이야 오죽했을까.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지 싶다.

 

메모도 마찬가지다. 떠오르는 생각이나 보고 듣고 느낀 것, 일정 등을 메모하는 것이 유용한 줄 알면서도 막상 실천하기는 어렵다. 종이와 필기도구를 꺼내고 넣는 번거로움 때문만은 아니다. 스마트폰을 항상 들고 다니면서도 메모 기능을 잘 활용하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글쓴이의 말처럼 뭔가를 메모한다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 텐데, 찰나의 것을 글로 적는 행위 자체가 귀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모든 귀찮다는 생각을 이겨내는 부지런함이 있어야만 메모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역시나 공부는 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희진의 말처럼 생각하는 노동에서 강조점은 생각이 아니라 노동에 먼저 찍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몸으로 부지런히 읽고 써야 생각이 발전하고, 그걸 또 읽고 쓰며 확장하는 것이 공부 아닌가.

 

책벌레와 메모광에 등장하는 옛 사람들과 글쓴이가 책을 대하는 태도, 독서와 메모 방법, 공부 방법 등을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책벌레도 좋고 메모광도 좋다. 그들을 통해 공부란 무엇이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기에 또한 좋았다. 글쓴이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그대로 보인다”(238)고 했다. 옛 사람들과 글쓴이는 진정으로 책과 메모, 공부를 좋아했기 때문에 천천히 오래, 그래서 멀리”(246) 갈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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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7 0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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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7 0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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