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양육자 -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의 기준을 바꾸다
이승훈 지음 / 트랙원(track1)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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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에 대해 가끔 고민하고는 한다. 대체로 아이는 잘 크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다가올 사춘기를 미리 상상하며 마음의 채비를 하기도 한다.
저자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서 활동하며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여러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아이를 양육하는 데는 교육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알파의 자리에는 관심, 사랑, 너그러움, 환대, 기다림 등의 단어를 집어넣을 수 있겠다.
저자는 요즘의 양육이 양육이라기보다 소비 행태에 더 가깝다고 진단한다. 각종 경험을 해야 할 아이들에게 일회성 ‘체험’을 소비하게 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전문가들에게 문제를 맡겨버리는 식이다. (물론 그것도 쉽지 않지만) 이렇듯 손쉽게 소비자로 전락해버린 요즘의 양육에 대해 저자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따뜻한 양육자로서 아이를 길러낼 수 없을까?
책에는 아이에 대한 믿음과 환대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아이가 무조건적으로 믿고 실패(?)나 실수에도 혼나지 않을 믿을 만한 장소와 어른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키즈존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환대를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었다. 아이들은 무조건 어리고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자신을 돌보고 키워낼 힘이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저출생 고령화를 염려하지만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환대 속에서 잘 크도록 하는 게 우선해야 할 일 아닌가. 아이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살아가기에, 또 아이들을 키워내기에 충분히 좋은 사회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대가 필요하고, 아이들을 무한경쟁 속으로 밀어넣을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탐구심을 키워줄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열심히 살면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않으면, 마치 공부하지 않아서 벌받은 것처럼 여전히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다.(104쪽)”는 저자의 지적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아이들의 배움과 삶을 분리시키는 교육을 이제는 지양하자. 앎이 삶을 변화시키고, 삶 속에서 발견한 호기심이 새로운 배움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의 생각과 힘과 지식을 통하여 작고 구체적인 경험을 지속해서 만들어나간다면 아이는 교실과 학교를 넘어서 탐구자가 되는 더 큰 배움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199쪽)라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문제는 그와 같은 문화와 그 문화를 가꾸어나갈 공간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냐는 것이다. “아이들이 주도하는 공간과 문화가 있어야 한다. 양육자와 지도자의 역할은 안전한 판을 벌리고, 아이를 초대하고, 연결해서, 자발적인 실천을 돕는 데 있다. 지도자는 아이가 자발적으로 시도를 한 것을 축하하고, 마지막에는 아이가 스스로 만든 작은 변화와 결과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224쪽)고 말한다. 저자가 일하고 있는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처럼 그러한 공간이 마을 곳곳에 설치된다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학교를 매개로 양육자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도 추천하고 있는데, 내 경험상 학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까지 비교의 한복판으로 내모는 장소인 것만 같아서 왠지 좀 꺼려진다.
어쨌든 핵심은, “당장에 출생율을 높이려고 젊은 미혼자에게 금전적 지원으로 짐을 덜어주려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출생한 아이들을 사회가 따뜻한 환대로 맞이하며 함께 키우는 사회적 양육구조를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297쪽)는 것이다. 내가 나서서 마을의 양육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힘에 부치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집에서 만이라도 소비가 아니라 양육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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