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뭐랄까, 우리를 둘러싼 현실 중에서 어느 한 부분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책이자, 동시에 삶의 면면을 스케치하듯 묘사하는 책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승태의 노동에세이', 저자가 농장에서 겪은 경험담 정도겠지만.
책은 꽤 두툼한 편인데(총 460여 페이지)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말이야, 농장에서 일 좀 해봐서 말하는 건데…" 하는 태도가 거의 없다.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오히려 "내가 돌이켜 보니 그땐 이런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한심한 태도를 보였네."라며 성찰할 줄 안다. 특이한 점은 뭘 어떻게 하자는 혹은 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다는 거다. 아니,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야기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455쪽) 노력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정말 놀랍다.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음식 쓰레기를 좀 줄이자는 것도 아니고, 이익에만 눈이 멀어서 동물과 노동자의 고통을 나몰라라 하는 농장에 벌을 주자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불편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발언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9쪽)고 했는데, 그렇다면 저자의 발언은 내게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것 같다.
이 책을 한두 줄로 요약하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여러 부분들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고 마음을 헤집고 있다.
"나도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빨리 끝마치고 쉬고 싶다는 생각에 무시해버렸다."(226쪽)
"그러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라 이거야. 아, 개고기 못 먹게 해봐. 음식 쓰레기만 문제야? 농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많은 식당들 문 닫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실업자 되면 나라에서 감당할 수 있어? 지들도 그걸 생각해보니까 골치 아프거든.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두는 거야."(404쪽)
문제는 그런 거다.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하려니까 다른 문제가 나오고, 그 다른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하니까 또 다른 문제가 걸려 있고… 너무 복잡하고 골치 아프고 피곤하니까 그냥 내버려 두는 거다. 처음이랑 똑같다. 아니, 문제는 점점 악화된다.
이 책을 동물 보호의 차원에서 읽든 노동 환경의 차원에서 읽든 채식 동기 부여 차원에서 읽든 농장 현실을 탐구하는 차원에서 읽든, 어떤 시각으로 읽든 생각해 볼 지점이 다양한 책이다. 심지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