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블로거 다락방님의 책을 읽었다.

읽다 보니까 소설이 너무 읽고 싶어졌다. 소설은 잘 읽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랬다. 다락방 님 글은 가끔 읽었는데, 이 분 참 대단한 게, 적어도 내게 '소설을 읽고 싶다'고 느끼게 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읽게 만들었다는 거다!

 

소설이 읽고 싶어져서 책장을 훑었다. 소설책이 별로 없어서 고르고 말고 할 필요도 없었다. 최근에 알라딘 홈페이지를 보다가 구입한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왜 샀을까? 잘 모르겠다. 분명 뭔가에 끌려서 샀을 텐데, 그 뭔가가 뭔지를 모르겠다. 읽다 보니 멈출 수가 없어서 끝까지 읽었다. 읽는 내내 이것이 책에 대한 이야기인지, 책을 매개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내용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뭐랄까…. 내가 왜 책을 읽는 건지, 책이 무엇인지, 내가 그 동안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내 생애 최초의 책은 무엇이었는지, 어쩌다 책을 읽게 되었는지, 책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책을 읽고 받은 영향은 무엇이며 어느 정도인지 등등…. 그리고 책을 읽었던 장소며, 그때 내 기분, 책의 모양새, 냄새, 몇 가지 메모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주로, 아니 거의 집에서 책을 읽는다. 워낙 집순이이기도 하지만, 육아와 살림 탓에 어디 다니기가 마땅치 않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즘 어떤 책을 읽는지(이런 걸 가늠할 수 있는 건가 싶지만),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자세는 어떤지 따위를 알 수가 없다. 아니다. 책 읽는 사람을 마주친다는 것 자체가 좀 희귀해지지 않았나? 특히 종이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는 사람은 못 본 지가 꽤 된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은둔형이라 못 본 것 뿐일까. 카페에 앉아 책 읽는 사람들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뭔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멀리 갈 것도 없다. 내 주변 사람들도 책을 읽기는커녕 책 얘기조차 안 하니까. 그런 점은 참 아쉽다. 난 다락방님처럼 '책 전도사(독서 전도사? 소설 전도사?)' 자질이 없는 모양이다. 어쨌든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라니, 지하철을 안 타서 잘 모르겠지만 뭔가 근사하게 느껴져서 당장 지하철이 타고 싶을 지경이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든 누구든)를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그 사람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그게 가장 궁금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제목을 좀 보려고 애썼을 것 같다. 만약 제목을 알게 된다면, 그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그저 어떤 책을 읽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말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한다. 이건 오해의 여지가 있는데, 책 읽기를 좋아한다기보다 책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다. 아, 물론 읽는 것도 좋아한다. 그냥 책이 좋다. 다 읽지 못할 줄 알면서 잔뜩 사들일 때가 많은데, 책장에 꽂아두고 책등을 훑는 것만으로도 마치 읽은 것처럼 기분이 들뜬다. 읽지 않아서 들뜨는 건가. 여튼 그렇다. 왜 좋은지 잘 모르겠다. 지적 허영 같은 건가. 왠지 근사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책이 재미 있어서(그렇지 않은 책도 있지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게 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미묘하고 미세하게나마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다르다는 점이 좋기도 하다. 어떤 책은 결코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도록 쐐기를 박는다.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이런 얘기가 나오나? 내 착각인가?)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책이 독자를 선택하는 거라는, 그 비슷한 얘기. 그러니까 한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 데에는 뭔가 특별한 인연(우연? 힘? 불가사의?) 같은 것이 작용한다는 의미 같은데, 분명 그런 면이 있다. 그 만남이 좋았든 싫었든 그저 그랬든, 애초에 만남이란 게 있어야 하고, 모든 만남과 마찬가지로 책과의 만남도 엄청난 확률로 이루어 지는 거니까.

 

그래서 결론은, 뻔한 표현이지만 책은 참 요상한 물건이라는 거다.  

그 사람이 책에 독자를 골라줘야 해요. 관찰하고, 더 나아가 어떤 책이 필요한지 감이 올 때까지 독자를 쫓아가야 하죠. 착각하지 마세요, 이건 진짜 일입니다. 우리는 도발하려고, 일시적 변덕 때문에, 혹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선동하려는 의도로 책을 나눠 주는 게 아닙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아요. 나와 함께 일하는 훌륭한 전달자들은 큰 공감 능력을 가졌습니다. 상대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어떤 낙담과 원한들이 쌓여 있는지를 느낍니다. -48쪽
*여기서 말하는 ‘그 사람‘을 보고 다락방님이 떠올랐다. 왠지 어울린다.

책 제목. 그렇다, 그건 중요했다. 그녀는 욕조 안에서 로레트 노베쿠르의 『근질거림』을 읽었다. 그녀의 피부는 아직도 그 책을 기억한다. 그 책을 쥐자 은근히 근질거리는 느낌이 왼쪽 견갑골에서 시작해 어깨까지 거슬러 올라와, 그녀는 자기 몸을 긁고 심지어 할퀴기까지 했다. -61쪽
*이 대목에서 나도 머리를 긁었다.

남자를 얌전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이 중계되는 TV 앞 소파에 데려다 놓는 것이다. -65쪽
*그냥 TV 앞에만 데려다 놓아도 된다.

많은 단어들, 많은 이야기들, 인물들, 풍경들, 웃음, 울음, 갑작스러운 결정들, 공포와 희망.
이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거지? -70쪽

왜 책을 좋아하는지 설명하려면 너무나 길어지니까요. 그리고 저는 아직 그 이유를 정확히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냥 책들이 있었고, 그걸 읽었더니 어떤 느낌이 들었어요...... 마음속에서 뭔가가 움직였어요. 하지만 그걸 보여줄 순 없어요. 그러니까 이걸로 이야기가 된 거죠. 그냥 시도해보면 돼요.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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