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까닭
내가 너를 마음에 품게 된 건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여린 풀꽃들을 쓰다듬는
너의 손 때문이다
키를 낮추고 등을 구부리며
바닥 가까이 다가가
이름모를 풀꽃들의 흔들림을 매만지던
너의 긴 손가락 때문이다
내가 너를 마음에 새기게 된 건
독백처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쓸쓸한 내 말들을
조용히 고요하게 들어주는
너의 귀 때문이다
지는 꽃의 신음과
저물 무렵 두물머리
흘러가는 강 위로 부서지는 햇살의 아픔을
오롯이 들어주는 네 귀 때문이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게 된 건
너의 눈 때문이다
순한 소처럼 맑은 눈동자로
병든 눈물을 걸러내는
만신창이 내 몸을 바라보며
외롭고 쓸쓸하게 그러나
오롯이 새기어
거울 안에서 거울 밖의
나를 들여다 보게 하는
너의 그 눈 때문이다
---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말해지고 떠도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더 멀리 있는 것만 같고 더 고독의 병을 앓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언어로 그려지고 표현할 수 없는 게 사랑일지라도... 나도 너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마음에 품게 되고 마음에 오롯이 새기게 되며 끝끝내 자신의 가슴 깊이 그 누군가의 영혼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 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목적지도 없고 종착역도 없는 이 길 위를 하루 하루 걷고 또 걸을 수 밖에 없는 게 바로 우리네 삶이고, 영원히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문장이 바로 사랑이니까요.
왜 너를 사랑하느냐구? 묻지 않고 그냥 사랑하는 게 사랑아니냐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그래도 사랑이 시작되고 깊어지는 길 위에서 한 번쯤 너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직나직이 고백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 여린 풀꽃들을 쓰다듬던 그 긴 손가락들을 만지고 싶습니다. 별 볼 일 없는 내 심심한 말들을 내 상처의 말들에 고요하게 귀기울이던 그 커다란 귀에 이젠 속삭이고 싶습니다. 맑고 고운 그 검은 눈동자로 병든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 보던 당신의 그 눈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