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누군가 박은 못처럼
밖에서 들어와 박힌 것이 아니다
가시는
내 안의 뿌리에서 돋아난 것이다
--- 살아가는 일이 못 박고 못 박히는 일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비유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삶이 빛나는 환희보다는 아픔과 상처의 비망록이라는 걸 청춘의 이른 봄에 막연하게 느끼긴 느꼈었지만, 그 느낌은 과연 진정으로 믿을 만한 느낌이었던가요?
오래 전, 오래 고통받는 사람을 위무하는 이성복의 시들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낙원에서 영원히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죄의식을 뼈아프게 고백한 김종삼의 ‘라산스카’라는 시는 무엇 때문에 그리 내 마음을 오래도록 파고들었을까요? 섣부르게 희망하기 보다 완벽하게 절망하는 삶을 노래한 기형도의 시들은 과연 나에게 비천한 슬픔 그 이상일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들의 시를 어떤 느낌의 형식으로 그저 느꼈을 뿐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그 느낌은 결국 엄살과 아픔의 포즈로 구현되어 왔다는 슬픔을 동반하구요... 물론 후회는 없습니다만 숨길 수 없는 부끄러움이 빼곰히 고개를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누군가가 나에게 박은 못과 못자국에 대해서만 뒤돌아보고 들여다보려 했던 건 아니었는지... 타인의 고통과 상처에 손 내밀고 아파하려는 연민과 사랑의 순간들은 물론 아름다웠지만, 그 역시도 나에게 박힌 못의 상처를 숨기고 치유하려는 몸부림은 아니었는지... 곰곰 생각해 봅니다.
고백컨대
지금 온통 나를 뒤덮고 있는 이 뾰족한 가시들은
다른 누가 와서 나에게 박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싹 트고 서서히 뻗어 오르고 있었던 것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