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여지껏 나는 단
한 번도 저 견고한
딱딱하게 굳어 버린
세계에, 울어 보지 못한 저
무표정한 얼굴에, 반성하지 않는 저
마음을 가둬버린 콘크리트에 저
뒤돌아보지 않는 애인의
흐릿한 실루엣에, 삐거덕 거리는 그
때늦은 기억에, 피고 지지 않는 저
화병의 꽃들에게, 문고리가 떨어진 저
벽같은 문짝에게, 기다려도 오지 않던
수취인 불명의 편지들에게, 옷을 더럽힌, 저
떠나가지 않는 이 마당의 비둘기에게, 예고없이
다가서는 침묵의 안개들에게, 날지 못하고
돌 속에 갇혀 버린 용두암의 용에게, 아 아파요 라고
말 한마디 못하고, 아니 들어주지 않아 죽어 버린
조로한 친구의 말없는 棺에게, 가던 길만 가서
곁눈질 할 줄 모르는 저 지루한 길에게도, 어김없이
손목의 시계를 지키며 다가 오는 저 커다란
303번 버스에게, 계엄령처럼 기상 나팔을 불어제끼는 저
우렁찬 알람시계에게,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는 저
답답한 은근의 달에게도, 기억을 잃어버린 저
가로수, 나이테가 없는 저
숨막히는 도로의 나무들에게도, 활자를 가두고
순정을 조롱하는 저 두터운 책들에게도, 눈물없이
울고 있는, 울고 있다고 착각하는 저 철없는
나에게도, 너에게도 손 한 번 잡아 준 적 없는
손에게도
작은 균열을, 퍼렇게 맺힌 멍자국 하나
새기지 못하고 어둡지만 뿌리를 찾아 그렇게
마음의 오체투지 한 번 못하고
녹슨 채로 뒹굴고 있는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