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수업 시간의 문학론

 

 

 

문학은

시험으로 완성되지 않는, 늘

길 위의 발자국 같은 거라고, 가다가다

뒤돌아 보는 젖은 눈동자 같은 거라고

 

3학년 보충수업 현대문학 시간, 목에

핏대까지 올리며 폼나게 얘기해 보지만

 

문제집에 코를 박은 아이들은

끙 끄응 거리다 송글송글 맺힌

땀을 훔치며

 

이육사의 '광야'가, 윤동주의

'길'과 '담 너머'의 '나'가, 신경림의 '갈대'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글자의 시력 간의 거리를 재며

암호해독을 하느라 분주하다, 정신없다, 분명한

 

의미가 떨어져야만 이 시를 이해했다고, 이것이 은유고

저것이 대유고, 저 저 저것은 창조적 상징이라고

저 사방팔방의 자잘한 해설풀이가, 이

시대의 문학 교육이

 

자꾸만 마침표를 강요하는 교실,문학은

늘 길 위의 여정이라고, 문학은 시험으로

등수를 매길 수 없는 마라톤이라고

 

일등부터 꼴찌까지 다

박수치고 박수 받는 그런

멋진 과목이라고

 

 

--- 그저께 저와 일 년간 함께 웃고 울고 떠들고 공부하며 일 년을 동고동락했던 고3 어린벗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어떤 멋진 멘트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뜨거운 감정도 쉽사리 드러내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담담히 '열심히 살아라!', '험난하고 아픈 세상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라!' 정도의 지극히 모범적이고 뻔한 말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곤, 아이들이 다 떠난 교실... 어린벗들이 공부했던 책상을 하나 하나 열어 보았습니다. 졸업식 등의 행사로 이미 청소를 다 끝낸 교실이었었지만, 한 어린벗의 책상 속에서 언어영역 문제집 한 권이 생뚱맞게 튀어나옫군요.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문학 부분에 열심히 빨간색 볼펜으로 맞고 틀림을 표시한 부분들을 보다가... 아주 오래 전 고3 담임을 할 때 썼던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문학이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면... 문학은 애초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길 위의 길입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웃고 울고 기쁘고 슬프고 한없이 외로울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완벽한 의미 해석이라는 게 문학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문학의 영원한 화두인 삶에도... 사랑에도... 그렇겠지요.

 

  그래서 저는 학교란 공간에서 국어란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이 현실이 기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합니다. 입시를 위해 기획된 교과서나 각종 문제집에는 이미 경쟁과 위계와 서열이 구조화된 이 불행한 사회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질서는 늘 정답을 요구하면서 끊임없이 정답과 오답의 이분볍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기 마련이구요. 그래서 아이들은 문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더 문학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학선생으로서 단 한 가지 꿈이 있습니다. 어쩌면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내 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아니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고등학교 문학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졸업 후에 그 삶의 길이 어떻게 되었든, 동네의 작은 책방이었든 시내의 큰 서점이 되었든 

 

  저물 무렵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가든 혼자 터벅터벅 걸어서 가든

서점 한 귀퉁이의 시집 한 권 한 권을 꺼내어 살포시 책장을 넘기고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며 음미하기를... 그러다 마음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구절이 있으면 가난한 지갑을 열고 그 시집 한 권을 사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한 편 한 편 읽으며 따스하게 채워지는 마음으로 풍족한 밤길을 통과해 집으로 돌아오기를...

 

  우리네 삶에도... 그 삶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만남과 사랑에도... 결코

등급 따위는 매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제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살아내려는 지금 이 순간순간에

참 애쓴다고 고맙다고 참 사랑한다고 짝~ 짝~ 짝~!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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