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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빙허각 ㅣ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나의 유년 시절이 생각이 났다. 배경이 예스럽고 단조로워서 그런지 여유가 많이 느껴졌다. 물론 이 시대의 아녀자들은 요리하랴, 살림하랴, 논밭 매랴 정신이 없고, 규수들도 손님맞이 해야 하고 보이는 것이 중요해 함부로 나다니지도 못하였지만 아이들은 어른들 기에 눌리긴 하지만 비록 자유로워 보임이 부러웠고 나의 평화로웠던 초등학교 때의 옛 시절도 생각이 잠깐 났었다. 지금도 시대만 바뀌었지 여성들은 비슷하게 바쁘게 각자 맡은 일을 자기 위치에서 묵묵히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기 뜻대로 세상을 잘 살게 하고 싶은 게 나의 양육의 목표이다. 나도 마음속에는 무언가가 불꽃이 있었는데 마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불꽃이 사라졌다. 한동안 우울하게 지내다가 아이들과 열심히 아동책을 함께 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동심이 생겨 그런지 몰라도 작은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 책 또한 과거의 불꽃을 가진 나 자신이 회상되면서 마음을 다시 잡게 되고 열심히 내 뜻대로 살아야 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은 한편의 잔잔한 사극 드라마 한편을 관람하는 듯한 느낌으로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당시 여인들은 덕 있는 부인이라면 자신을 낮추고, 재능이 있더라도 감추고, 이름도 없는 듯이 살아야 마땅한 시대에 살아야 했던 힘없는 여성들을 그려냈지만 덕주라는 캐릭터로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준다.
규수였던 할머니가 은퇴 후 직접 연구해 보고 다 적어간 살림에 필요한 백과사전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덕주는 그 할머니가 써 내려간 백과사전 같은 규합총서를 누구나 보기 쉽게 언문으로 책을 옮겨 쓰는 것이 어떠하냐며 제시하고, 옮겨 적어 내려가며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하나의 작은 숨이 트이는 곳이자 희망인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면 책의 소중함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예전 여성들은 책도 가까이하지 못하고 그럴 시간도 없었는데 지금 우리는 원하면 많은 양의 책도 읽을 수 있고 직접 경험하고 연구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지 않은가?! 할머니가 만든 백과사전을 만드는 것은 내가 블로그로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답답한 현실속에서 나만의 숨 쉴 수 있는 작은 세계를 갖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도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책의 소중함을 조금이나마 느꼈을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할머니의 호가 너무 멋지다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조선시대 빙허각 이 씨의 호는 너무 멋진 것 같다. (기댈 빙에 허공 허, 집 각) 뜻을 풀자면 허공에 기댄다, 혹은 아무 데도 기대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도 후에 멋진 호를 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