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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와 치아
사라 네틀턴 지음, 대한치과의사학회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치의학이라는 전문 분야를 다뤘다는 점에서, 또 치과의사 몇몇이 번역하고 토론했다는 점에서 언뜻 손이 가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치의학에 대해 인문학적 접근을 한 것이 아니라 치의학이라는 하나의 제재를 가지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 뒤에 어떤 권력관계가 감추어져 있는지를 낱낱이 밝혀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의학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 사회학책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물론 치과 진료실 의자에 누우면 누군가 내 입 속을 들여다보고 관찰한다는 것이 두렵고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푸코와 치아'라는 책을 읽고 나면 의학이라는 것이 특히 치의학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저자 '사라 네틀턴'은 이 책에서 푸코의 방식으로 치의학에 접근하고 있다. 푸코는 '서양의학은 몸을 관리하는 권력'이라는 그의 유명한 말대로 치의학을 일종의 권력 작용으로 본다. 19세기 중반부터 치의학은 구강과 치아를 최대한 감시하기 시작한다. 이제 치아는 통제와 분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치의학은 보건진료소, 학교 등에서 예방 보건 프로그램에서 출발하여 구강검진, 이 닦기 교습 등을 통해 구강과 치아 부위가 별도로 학습되고 내면화되었다. 구강보건교육은 단지 병 걸린 입을 치료하는 것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입, 몸, 사람과 사회적 관계를 감시하는 체계였다. 치의학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자연스럽게 탄생한 학문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구강을 규율하는 과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사회적으로 창조된 학문이라는 것이다.
1장은 기존의 치의학사를 다루고 2장에서는 기존의 치의학사에서 소홀히 하였던 치과의원 방문에 대한 세부 묘사를 하고 있다. 3장과 4장은 입과 치아를 만들게 해주는 조건을 살펴본다. 여기서 입은 감시의 대상이자 규율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5∼8장은 구강보건교육, 가정의 구강건강관리, 고통, 공포, 설탕 등 실제적인 논점들을 다루고 있다. 이런 논점들은 예전에는 몸에 한정되어 이해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심리학적, 사회학적 차원까지 고려하여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9장에서는 이런 논점들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10장은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인데 연구에 영향을 미친 푸코의 저서들을 소개하며 치의학이 어떻게 사람들이 자신을 지배하게 하고 또한 다른 사람에 의해 지배당하게 하는지 논의한다. 마지막 11장에서는 푸코의 작업이 의료사회학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푸코의 연구의 가치는 사회학의 영역 바깥에 놓여 있다고 여기던 것을 사회학적 탐구가 가능하도록 했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치의학을 보는 전통적 관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치의학은 단순히 병을 고치기 위해 탄생한 학문이 아니다. 치의학은 지식과 권력의 합작품인 것이다. 인본주의 정신이 의료의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기존의 생각 대신 치의학이 권력의 규율관계를 형성하고 치과의료까지도 감시관계의 확대를 위해 발전하고 분리되었다는 주장은 새겨 들을 만 하다. 의사들이 독점진료권을 무기로 파업을 하고, 의료보험 재정이 바닥난 요즘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치과의사들에게는 불리하고 기득권에 위협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나서서 이 책의 번역과 소개에 나선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물론 이 책은 치의학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적 활동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의료인들도 자신들의 의료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각 장마다 번역한 사람이 달라서 장과 장사이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몇 군데 눈에 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