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 네루다 시집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 민음사 / 1989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아는 어떤 시인도 이런 식으로 시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네루다가 훌륭하고 뛰어난 시인인지 아니면 형편없는 시인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비교대상이 없기에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외국시를 또, 번역시를 접해 본 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네루다가 워낙 개성이 강해서 인지는 모르겠다.

또, 나는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잠깐 보았을 뿐 네루다의 배경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바가 없다. 영화에서의 그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물론 그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시골마을로 피신을 온 것을 보면 삶이 그렇게 평탄했던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네루다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이런 특이한 시가 어떤 사조에 속하는지, 이런 시를 쓴 이가 또 누가 있는지 모른다고 해서 불평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시에 대한 순수한 접근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중, 고등학교의 교과서에 나온 시들은 그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들은 나에게 하나의 예술작품이 아니라 국어 시험 지문의 대상들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시들은 한 번도 감상의 대상이 돼 본 적이 없다. '님의 침묵'에서 '님'이 가지는 몇 가지 의미들을 외우는 데에만 급급했을 따름이다. 나에게 김소월, 윤동주, 한용운의 시는 이미 시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네루다의 시는 나에게 숨겨져 있을 지 모르는 시적 감수성을 까발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의 시는 작품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고, 쓸데없이 시에서 시대적 배경을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네루다의 시는 그가 '詩'에서 말했듯이 영혼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시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이듯이 내가 그의 시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직관밖에는 없다. 예지를 발휘해야만 읽혀지는 것이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우리는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끼게' 된다. 네루다의 시는 그만큼 흡입력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 알고 있는 것들을 망각하고 그 안에 빨려 들어가야 한다. 그 시들과 일체되어 호흡하지 않는 한 그의 시는 말장난이나 유희로밖에 비쳐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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