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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 생명의 비밀 ㅣ 까치글방 199
제임스 왓슨 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 '전체를 알면 하나를 안다'. 나는 이 두 문구를 오랫동안 살펴봄으로써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 수도 있다. 하지만 백까지는 모를 수도 있다. 백을 알면 하나를 알 수도 있다. 하지만 백 중에 섞인 하나의 스파이는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한약을 통해, 이른바 '시너지 효과'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것은 '뭉쳐야 산다'는 속담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나'라는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얼굴, 팔, 다리, 몸통, 내 생각 모두가 있어야 하며, 머리만 갖고 '나'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나'의 머리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분자론적 시각을 확실히 비판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렇게 생각해 두기로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해진 점은, 우리의 유전자는 결코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남을 이용해 먹으면서 까지 자기 혼자 살기위해 벌버둥치는 것이, 어떻게 스스로 다양한 변이를 허용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유전자는 트랜스포존에 의해서, 이 책에서 나왔던 아그로박테리움 투마파키엔스에 의한 식물 유전자의 변형(자연적인 유전자 재조합 현상), 또는 복제 시기의 염색체 내에서 발생되는 무작위적 뒤섞임 현상 등에 의해서 꾸준히 변형되고 있다. 이는 recombinant DNA나, GMO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두려움을 종식시키는 증거도 될 것이다. 자기 몸을 온건히 유지하기 위해 남을 헐뜯고 남을 이용하면서 어떻게 자기 몸 하나 온건히 유지하지 못한단 말인가. 하지만 진정한 자기 승리를 위해서, 즉 우리 몸 속의 유전자의 최종 목표 '개체 수 늘리기'를 하기 위한 유연한 대처법으로 변형을 허락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종을 넘나드는 유전자간의 섞임도, 개체와는 무관한 유전자의 이기적인 심성을 잘 나타내주는 예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종을 넘나들면서 까지 서로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마당에, 싸우고 경쟁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넓히기에만 주력해야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모든 생물체는 유전자를 가진다. DNA형태든, RNA형태든 유전 정보를 가지지 않은 것은, 생명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예 종 간에, 또는 종 내에서도 '너'와 '나'간에 이 지구상에 차지하는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경쟁한다면 이해가 간다. 이것은 분자론적 생각이 절대 될 수 없다. 하지만 종 간에 심지어는 위의 예에서처럼 식물과 박테리아간에 유전자의 섞임이 일어나는 마당에 어디 누구와 경쟁하고, 따라서 어디 '유전자는 이기적이야'라는 입장을 펼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에 읽었던 '비열한 유전자'는 더 말이 안 된다. 개체와 유전자 간의 전쟁을 선포하다니. 유전자가 단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껍데기로 우리 몸을 만들었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와 맞서 싸워야 한다면, 결국 우리에게 승산이 더 있을 것 같다. 유전자는, 우리가 공상과학 소설 속의 인간을 공격하는 로봇 같이 만들어준 은혜도 모르고 진실을 알아버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실패한 계획이며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는 이기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유전자가 이기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게 내버려 둔 것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우리가 막연히 꺼려했던 GM식물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정도 해소가능한 문제인 듯 싶다. 동물의 유전자가 콩이나 옥수수 유전자에 삽입된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대단히 역겨운 일이라고만 치부해 버렸는데 자연적으로도 또는 과거 우리 조상들에 의해서도 이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고, 지금껏 우리는 멀쩡하게 살아있고 나름대로 생을 잘 연명하고 있으니, 그리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