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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 세상을 바꾼다 - 인간배아복제, 유전 형질 전환에 관한 논쟁
김훈기 지음 / 궁리 / 2004년 3월
평점 :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밝히면서 되도록 이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기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역시 유전자의 영향에 관한 기본적인 입장은 '인간게놈프로젝트 사업'과 동일함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유전자 연구로 인해 장미 빛 미래를 약속 받을 수 있고 현재의 많은 부작용들은 좀더 연구가 미미한 까닭이며 충분히 극복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많이 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므로 유전자 연구가 선사하는 많은 이점 외에 부정적인 측면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역시 게놈 연구를 통해 인간이라는 종의 특징을 알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 예가 바로 DNA칩의 이용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DNA칩을 통해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점이나 진화 과정과 고등 인식 기능의 발달 과정을 유전자적인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전자적 수준'이라는 단서는 달았으나 결국 이는 게놈 연구를 통해 한 종을 완벽하게 알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한 종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고 '어느 정도'이해한 상태에서 다른 종과 비교를 한다는 것은 오히려 많은 오류와 잘못된 정보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적어도 쉽게 '이기적인 유전자적 입장(유전자가 한 개체의 신체적, 정신적 모든 것을 통제, 관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 아니라면 DNA칩을 통해 유인원 같은 다른 종과 인간의 차이점을 분석할 수 있다라는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았어야했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저자는 많은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그 베이스는 어느 정도 '이기적인 유전자'적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또한, DNA칩을 통해 범인 용의자를 확인할 수 있다고도 하였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사람들 각각이 어느 정도는 다른 유전자적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각각 서로 구분할 수 있는 유전자 구조를 가진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의 유전자와 역시 유전자 구조가 서로 조금씩 차이가 날 유인원 중의 단 한 마리를 서로 비교해서 얼마나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그 차이가 미미하기 때문에 두 종에 대해 어떤 전반적인 지식은 얻을 수 있겠지만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맞춤 아기'에 대한 이야기가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다. '이기적인 유전자'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나 '생명공학에 대해 부정적 입장(윤리적, 종교적 이유 등을 들어 생명공학에 대해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결국 그러한 많은 것들을 법으로 금지시켜서 저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입장)'을 가지게 된 사람들 모두에게 한 방의 멋진 펀치를 날리는 이론(물론 아직 이론에 불과하지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맞춤 아기'의 실현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진 입장이었다. 아주 시원한 산들바람이 내 목을 타고 폐 속을 한 바퀴 휘도는, 오랜 고민의 체증이 풀리는 듯한 상쾌함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그 비판의 근거는, 생체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며 또한 같은 유전자라 해서 개개인에게 똑같은 효과를 나타내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원하는 개체를 얻을 수 있다고 낙관하는 사람들이나 그러한 것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이므로 반드시 커다란 문제점만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 허무해 지는 순간일 것이다.
만약 높은 지능 유전자를 주입한 아기가 있다면(게놈 연구에 대해 극단적 시각을 가진 두 입장 모두 동의하듯이 만약, 지능 결정에 유전자가 큰 역할을 한다면) 그 아이는 뛰어난 지능을 잘 발휘하기 위해 생체 에너지 중 많은 부분을 머리 쓰는 일에 소비할 것이다. 생체 에너지는 한정 되어 있으므로 따라서 자동적으로 뇌 외의 다른 부위에는 뭔가 이상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더 많이 먹어 생체 에너지를 더 불리면 될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 양은 많아져도 뇌로 가는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가는 에너지보다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부위는 허약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