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더 이상 가슴 떨리는 단어가 아닙니다만, 연애소설은 재미있습니다.
프랑스 소설은 매우 관념적이고 고급스러운 지적 유희에 매몰돼 있다는 세간의 평을 한번에 뒤집은, 기욤 뮈소의 연애소설입니다. 사물의 세부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프랑스식 전통에 미국식 소설 기법, 즉 잔혹함, 빠른 전개, 영상미학의 감각적 요소가 잘 버무려져 있습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겠다는 꿈을 품은 채 뉴욕에 온 젊은 프랑스 여자 줄리에트와 아내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인생의 모든 꿈이 산산조각 난 의사 샘이 어느 날 운명처럼 만나 불꽃같은 사랑에 빠져들면서 소설이 시작됩니다.
여주인공 가브리엘의 인생에는 두 남자가 있습니다. 한 남자는 첫사랑, 한 남자는 아버지, 한 남자는 사명감 높은 경찰, 다른 한 남자는 신출귀몰하는 세계 최고의 도둑.
오래 전 가브리엘의 마음 속에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남기고 떠난 두 남자. 그들이 한 날, 한 시에 나타나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듭니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의사에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마크, 거듭되는 일탈 행위로 스캔들을 몰고 다니는 억만장자 상속녀 앨리슨, 복수를 꿈꾸며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는 소녀 에비, 지난 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해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커너. 이렇게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 깊은 상처와 고통이 있습니다.
기욤 뮈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저마다 지난 생애의 한 지점에서 비롯된 치유하기 힘든 상처와 고통을 안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상처를 받고, 어떤 이는 상처를 줍니다.
상처로 얼룩진 그들의 삶을 구원해주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하면서 화해와 용서를 통해 운명처럼 씌워진 고통을 극복하고 희망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처음 <구해줘>를 읽었을 때, 기존 독서 세상과 완.전.다.른. 새로운 재미에 흥분했었습니다. 연이어 기욤 뮈소의 소설 2권을 읽었는데요, 반복되는 패턴과 <구해줘>를 능가하지 못하는 재미 탓에 책장 구석진 곳으로 밀려났습니다.
반복된 패턴을 쓰는 작가를 보면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뛰어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하게 됩니다.
알랭 드 보통의 연애소설은 연애와 철학을 접목시킨, 상당히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위의 책은 보통의 연애소설 3종 셋트라 불립니다.
제가 보통을 처음 만난 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어요. 이 책이 '지식인의 책'에 자주 등장하길래 궁금해서 읽어봤드랬죠.
그리고선 미친 듯 줄을 그어가며 읽었습니다.
'이렇게 밑줄 긋게 하는 소설이 있다니, 처음이얏!!' 하면서요.
이렇게 보통과의 인연이 시작되어 연애소설 3종 셋트 외 <여행의 기술>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까지, 5권이나 읽었습니다.
저는 다양한 작가의 대표작 위주로 읽습니다. 2008년 이후 300여 권의 책을 읽었는데요, 이 중 시리즈 제외하고 3권 이상 읽은 작가는 공지영, 기욤 뮈소, 알랭 드 보통, 최재천 뿐입니다. 공지영, 기욤 뮈소, 최재천 모두 딱 3권인데, 알랭 드 보통만 유일하게 5권이니.... 제겐 좀 특별하긴 했습니다.
<너를 사랑한다는 건>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개정판으로 원제는 Kiss and Tell 입니다. 'Kiss and Tell'은 (보통 돈을 바라고 유명인과 과거에 맺었던) (성)관계를 공개하다, 폭로함, 비밀을 누설함, 믿음을 배신함...의 사전적 뜻을 갖고 있는데요,
대개 자기밖에 모른다는 비난을 받곤 하는 남자의 입장에서 씌여진 소설입니다.
그러다보니 3종 셋트 중에선 가장 공감하기 어려웠어요.
이와 반대로 <우리는 사랑일까>는 여성 입장에서 씌여진 소설입니다.
20대 중반의 여주인공이 꿈꾸는 낭만적 사랑과 그녀의 남자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사건을 통해 이상적 사랑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완성되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과 자존감 사이에서 사랑을 택할 것 같던 여주인공이 당당하게 홀로 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3종 셋트 중 가장 무난합니다.
인류 역사 상 가~~~~장 오래되고 진부한 것 중 하나인 남녀의 연애를 이보다 철학적으로 풀어낼 순 없을 거 같아요. '연애' '사랑' 뒤에 숨은 '철학'을 보고 싶다면, 괜찮습니다.
물론 재미도 있구요.
똑같은 제목의 소설을 남성, 여성 각각의 작가가 쓴 <냉정과 열정 사이>입니다.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란 작가가 2년에 걸쳐 실제 연애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릴레이 연애소설이에요.
소설의 설정은 10년 후에 재회하기로 한 헤어진 연인인데, 독자 성향마다 호불호가 다른거 같습니다. 전 에쿠니 가오리의 ROSSO편이 훨씬 더 좋았어요. 여주인공 아오이를 잊을 수가 없네요.
얼마 전 TV 드라마 <결혼의 여신>을 보고 필이 꽂혔는데, 갈수록 흥미가 떨어져 지금은 시큰둥합니다.
'연애'에 설레진 않지만, 재미있는 '연애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요.
혹, 당신이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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