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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당신의 20대를 대표하는 문장이나 사물은 무엇인가요?
저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이였습니다.
무엇에 매료되는지 알 듯 모른 채 세월이 흘렀고, 이젠 과거의 일이 되버렸죠.
사람은 행동한 다음에 도덕적인 결정을 하거나, 합리적인 이유를 찾는다지요. 때론 그냥 묻어두기도 하구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20대의 저를 매혹한 원인을 찾는다는 건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야만 하는 과거의 '나' 였습니다. 꼭 만나지 않아도 되는데, 만나면 막상 후회할 것 같은 '첫사랑' 처럼요.
밀란 쿤데라는 우리의 삶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걸 배제한 채 우리에게 나타난다네요.
이로 인해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모순이 생깁니다.
삶은 가벼운 것인데, 무거운 것으로 위장한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이지요.
가령, 우연한 사건이 몇 번 겹치면 우리는 종종 필연으로 오해하는 것처럼요.
때론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요.
인생을 어깨에 짊어진 짐으로 종종 표현하면서, 견딘다거나 싸운다거나 하는 것처럼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무거운 인생을 가볍게 만들고 싶어합니다. 이와 달리 사비나라는 인물은, 가볍게 가볍게 살아요. 전혀 무겁지 않게요. 그러나 이런 사비나는 결국 공허를 느낍니다. 인생의 짐을 짊어지지 않고 가볍게 살았으나 그 끝이 공허라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사비나와 달리 무겁게 살았다면, 그 끝은 어떨까요. 아마 무겁게 살 필요 없었는데, 좀 더 가벼울 수도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하지 않을까요.
제 예상과 달리 소설 속 인물들은(무거운 인생을 가볍게 만들고 싶어했던) 가벼움으로의 동경과 소소한 시도만 한 채 사라집니다.
아, 예외적인 토마시라는 인물이 있군요!
토마시라는 인물은 무거운 인생을 가볍게 만들수 밖에 없었던 (혹은 만들었던) 밀란 쿤데라 자신이자, 체코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프라하의 유능한 외과의사에서 도시 외곽 병원의 허름한 의사로,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로, 급기야 시골의 트럭 운전수로, 한때 문제가 된 기사의 화두를 제공하기도 한 토마시에 체코의 역사가 투영됩니다. 2차 세계대전과 1963년 '프라하의 봄' 등 삶의 변절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거움과 가벼움, 삶의 일회성을 절절히 느낀 작가의 깊은 통찰이 느껴지더군요.
인생을 가볍게 만든 토마시나, 한없이 가볍게 살았던 사비나나, 무거운 인생을 가볍게 만들고 싶어 했던 테레자....이 모든 소설 속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작가의 가능성이라 밀란 쿤데라는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인물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네요. 왜냐면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작가가 우회하기만 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매혹적인 경계선을 뛰어넘은 인물을 통해 밀란 쿤데라가 말하려 한 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인생' 이지 않았을까요.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 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 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인생이 일회성이란 이유로 가벼운 것일까요.
아니면 가벼워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 답은 각자에게 있을 것입니다.
무거운 역사에서 가벼워지고 싶었던, 밀란 쿤데라의 답이 모두의 정답은 아닐테니까요.
20대의 저는 주의의 모든 것을 무.겁.게.만. 여겼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가벼움을 동경했고 시도하는 이들을 부러워했나 봅니다.
그래서 제목부터 남다른 이 책을 애정했던 거 같아요.
지금의 저는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가벼움에의 동경은 그닥 없지만, 제 자신 속 무거움은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꼭 가벼워지고 싶은 건 아니구요.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하나의 로망은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극과 극이 거의 닿을 정도로 서로 가까워져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천사와 파리, 신과 똥 사이에 더 이상 아무런 차이점이 없게 되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해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달려가 매달린, 스탈린의 아들...과 같은 죽음의 기회요.
뭐, 그런 기회가 오든 말든 한 마디 항변조차 하지 않을테지만요.
밀란 쿤데라가 '전쟁의 광범위한 바보짓 중 유일한 형이상학적 죽음'이라 치켜 세우든 말든, 왠지 폼나서 말이에요.
다시 읽은 날 2012.12.16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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