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 Work - 열심히 일하면 어디까지 올라갈까?
CrimethInc 지음, 박준호 옮김 / 마티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work, 워크, 열심히 일하면 어디까지 올라갈까, Crimethinc>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 한다.

이 책 <work, 워크>는 그런 점에서 좋은 책이지만, 그런 장점이 잠자고 있던 모든 무감각을

구석구석 명중시켜 그 아픔에 숨을 쉬기어렵다. '일', 현대인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의 속성 중 한 면만 부각시킨 이 책은 무척 읽기 힘들다.  무릇 양면을 골고루 보는 것이

옳은 일이나, 한 면을 깊게 보는 것이 때로는 우리 현실을 냉정하게 보게 할 것이다.  우리를

성장, 발전시키는 '일' 대신, 우리를 옭아매는 족새로서의 '일', 그 얘기를 들어보자.

 

우리는 일을 한다. 청년과 실업자들은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지금 일을 하는 사람은 계속 하기

를 원한다. 그러한 '일', 정확히 무엇을 생산할까?

'수십억 개의 일회용 젓가락, 2년 내에 버려질 노트북과 휴대폰, 방대한 쓰레기, 쌓여가는 클

로로플루오로카본....'을 더 싸게 생산한다. 그러한 일은 지구 상에 더 싼 인력을 발견하면 즉

시 공장을 닫게 한다. 이쪽 사람들은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다른 동네 쓰레기통은 차고 넘친다.

 

자연 파괴, 탐욕의 증진, 넘치는 쓰레기, 이렇게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우리는 일을 한다.

왜일까? 누구나 답을 알고 있다. 일하지 않고는 생존할 방법이 없고 우리는 사회에 섞여 살고

싶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일상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그건 바로 우리 삶이 죽을 때까지 계속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거다.

피고용자들이 임금협상에서 승리하면, 땅 주인들은 세를 올릴테고, 환경보호 법률이 제정되면

기업들은 다른 돈벌이를 찾아 나선다.  저항이 자츰 속도를 내면 이미 정황은 다르게 변질되고

저항의 원천은 말라버린다.

 

책 초반부터 낙관적 기대, 희망의 불씨에 한 양동이 차가운 물을 쏟아붓는 이 책은 룰렛이 연상

됐다. 룰렛 주위, 빈곤한 주머니에 어리숙한 눈알을 뒤루룩 굴리며 이번에는 되겠지 어설픈 기

대를 갖지만,  매번 바람을 가르는 현란한 기술에 깜짝 놀라고 내 가난한 양식을 스윽~ 강탈당

하는 것을 매번 모른다. 방금 뒤집어 쓴 차가운 물이 궁색하다.

 

'재벌'이라는 룰렛 카드를 내밀자 '대표가 이윤 추구를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는 순간, 그의 회사

는 즉시 더 잔혹한 경쟁자로 교체될 것이다' 파바바~팍팍 공중분해된 답이 쏟아진다.

'정치가들'이라는 룰렛 카드에 '좌파, 우파 좌우지간 둘 다 권력이 엘리트 손에 집중되는것일 뿐'

이라 한다.

음, 그래. 이 정도는 예상하는 바이다.

 

'교육'이라는 카드를 내민다.

"남아도는 인력을 어쩌면 좋은가? 한 가지 해결책은 그들이 노동시장으로 나오는 시점을 늦추는

것이다. 오늘날 야망 있는 노동자들은 더 공부하고 경력을 쌓고 이력서에 한 줄 더 쓰는 일에 어

느 때보다 열성적이다.  이런 현상은 해고와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교육을 더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부와 권력을 열망할수록 그럴 듯한 일자리에 어울리는 스펙을 갖추기 위해 수천 또는 수만 달러

를 써야만 한다. 이 올가미가 정교한 형태의 노예계약이다. 노동자들의 학력이 올라갈수록 고용

주는 더 까다로워진다.  경제가 죽 끓듯 바뀌니, 노동자들은 계속 학교를 들락거려야 한다. 오늘

날 모두들 학업은 투자라고들 말한다."

음, 그래. 나도 이 내용은 안다.

 

룰렛 위 보이지 않는 이가 어깨를 내밀며 말한다. 지금까지 버텼다고? 그래 한번 맛 좀 보라며.

 

"부자들은 설거지를 시키기 위해 하인을 고용했지만, 오늘날에는 그 자리를 식기세척기가 대신

하고 있다. 기술이 우리를 가치 없는 존재로 만들었기에, 우리는 경쟁력을 갖기 위해 더 싼 임금

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소외에 기반을 둔 사회시스템은 인간을 끊임없이 일하게 만든다.

 

이주노동자? 밀입국을 막을 권리가 없는 것일까?

헛소리다. 어디든 경제는 똑같다. 국경은 인간을 더 잘 착취하기 위해 작동한다. 죄수들의 유배

지로 시작한 호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고향땅이 식민주의자들에게 약탈당한 사람들이 또다시

약탈당하기 위해 식민주의자들의 집 앞으로 찾아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가사노동, 섹스산업, 군인, 경찰, 사설경비원, 감옥, 실업과 노숙, 생산, 소비, 미디어, 금융, 투자,

빚, 은행, 과세, 연구와 개발, 의약품, 종교, 정의, 공해, 지구온난화.....어떤 카드를 내밀어도 무

참하다.

'금융, 투자' 카드에는 <불편한 경제학>이, '의약품' 카드에는 <현대 의학의 위기>가, '정의'에는

<헌법의 풍경>, 그리고 <우리가 잘 못 산게 아니었어>...챕터마다 어느 책에서 읽었음직한 내용

이 거칠게 들어가있다. 아니라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이미 희망의 불씨는 꺼졌고 어떻게든

살리려는 노력은 무참할 뿐이다.

룰렛, 가진 종자돈, 1원짜리 동전, 모두 다 털렸다.

 

이렇게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출구마저 폐쇄시키는 그들은 누구인가? 국가의 수반? 재벌? 모두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경제'다. '경쟁자들이 자기 이익을 쫓아 행동했을 뿐인데,

집단으로 확대하면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무력화되는' 시스템이다.

수직적 협력과 수평적 갈등(또는 수평적 경쟁과 수직적 복종)을 통해 더 많은 권력자의 이익을

존중하는 반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경쟁하기 때문에 작동되는 구조다.

 

우리는 개인적 열망과 개성을 포기한 채 잠재적인 자본가가 우리의 미래인양 생각한다. 이 빈곤

한 삶이 우리 것이 아니라며, 그럴리가 없다며, 우리 비용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이익을 얻는 척

하기로 했다고? 설마! 그럴리가 없다며 머리를 흔들지만, 여전히 우리는 동료와 경쟁하고 상사

(혹은 상위 계급)과 갈등하며 일하고 있다.

협력적 경쟁을 하면 금빛 찬란한 미래가 우리 것이라는 말에 고개 끄덕이지만, 사실 그 미래는 '

자본', '경제'의 것이다. 숙주인 인간들을 옮겨 다니면서 세상을 지배하는 시스템의 것이다.

 

그 시스템은 자본가들, 착취당하는 자, 배제된 자로 구성되 있다. 자본은 부를 만들어 내지만 더

많은 가난도 만들어 낸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축적할 수 있는 부에는 한계가 없지만, 한 사람이

착취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상위 1% 억만장자 뒤에는 무수

히 많은 가난뱅이가 그림자처럼 있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독서, 답답한 가슴, 내가 있는 이 세상이 짐 캐리의 '트루먼 쇼'가 아니고 무

엇인가!

도대체 저자는 독자를 이렇게 답답하게 해놓고 어떻게 해주려는 것인지!

 

저자 Crimethinc는 자본주의 파국이 보인다며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저항하며 근본적인 변화 -

사유재산제를 부수라 권유하고 있다. 끊임없이 전략과 전술을 바꿔 사람들에게 널리 퍼질만한

싸움의 방식을 찾고, 긴 투쟁을 준비하자 얘기하지만 그저 답답해질 뿐이다.

나는 여전히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 트루먼 쇼의 짐 캐리다.

착취당하는 자, 배제당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 그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미국 비즈니스맨 : 하지만 당신네 사회는 비리 투성이 아니오? 매번 공무원들에게 뇌물 먹이

                         지 않소?

 

 중국 미즈니스맨 : 비리? 우리나 당신네나 시스템은 똑같지만, 우리가 더 민주적이오. 우리나

                         라에서는 누구든 필요에 맞게 '로비'를 할 수 있소. 당신 나라의 시스템은

                         관료적이라 엄청난 부자만이 정치적인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소?

                         내 장담컨대 로비 비중이 적어도 당신네 국내 총생산만큼은 될 것이오."

 

그들의 대화 속에 착취당하는 자, 배제된 자는 여전히 건재하다.

 

 

읽은 날  2012. 7. 1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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