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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신공, 김용전>
신입사원 시절, 회사다니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주5일 근무가 아니었던 그 시절, 일요일 쉬는
게 불만이었고 수능시험으로 출근시간이 늦춰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장동료들이
늦춰진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세월이 흐르자 교과서가 세상인 줄 알았던 순진한 신입사원은 더 이상 출근이 즐거워지지 않았
다. 회사의 요구로 자신의 양심을 버린 결과가 되었던 어느 날, 양심이 찔려 식사를 못한 적도
있었지.
세월이 흘러 회사와 소비자 이익의 아슬아슬한 교차점, win-win 지점을 찾아내는 방법을 터득
하게 됐으나, 단어조차 생소한 검은 백조, 블랙 스완의 출현은 모든 것을 한방에 무너뜨렸다.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봐야 진면목을 안다고 했던가.
아,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다. 조직에게 인품, 아니 조품(組品)이란 있을 수 없다. 생존과 이익이
있을 뿐이다. 그 조직의 생존 앞에 조직원의 안위 따위는 명함을 내밀 수 없었다.
위기의 순간, 평소 열심히 일한 직원은 소비자의 민원에 편할 틈이 없었고, 평소 소박히 일한 직
원에게 위기는 딴나라 일인 법이다.
들락거린 법원과 경찰서, 오밤중과 새벽을 가리지 않는 4개월 문자협박,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
기 위해 구입한 호신용 gas 스프레이.
아마도 나는 '사기성'이 강한 사람인가보다.
아,마,도.
..............!!
또 세월이 흘러 큰 계기, 소소한 이유와 핑계가 켜켜히 쌓여, 과거야 어찌됐든 지금의 나는 '암반
수족'이다. 이 책,<직장신공>의 저자 김용전이 말하는 암반수족은 직장에 불만이나 힘든 일이 있
어도 바위 밑을 흐르는 물처럼 소리없이 참아내며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라 한다.
아니 어쩌면, '나토족' No Action, Talking Only 일지도, '다운시프트족' (자기가 처한 현실을
부정해봐도 소용없기 때문에 체념하고 받아들이려는)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말이다.
암반수족이든 나토족이든 다운시프트족이든, 내 상황이 '직장신공'이란 단어와 조화되지 않는
터라 오히려 더 읽어 보고 싶었다. 지금 내게 '직장신공'은 새로운 분야(?)니까.
이 책의 저자 김용전은 한 교육 기업의 단칸방 창립 멤버로 시작해 연매출 3,000억대의 대기업
을 만들며 30대 이사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어느 날 20여 년간 청춘과 인생을 바쳤던 회
사에서 이유도 모른 채 나이 쉰에 토사구팽 당한다. 그 후 '회사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아니라는
뼈아픈 깨달음을 얻고, 직장이라는 비정한 무림강호에서 홀로 싸우는 후배들을 위해 KBS라디오
에서 '직장인 성공학'의 인기코너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 코너의 100여회가 알차게 추려진 게
이 책이다.
이론과 실전, 어느 것하나 부족함 없는데다 수많은 상담사례까지 더해진 그의 입담은 속이 꽉꽉
찬 커다란 열매다. 베어무는 부위마다 다른 맛과 풍미를 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번지르르한
이론이나, 현실과 다른 실전이 아닌, 그야말로 맞춤형 '대한민국 직장인 생존비책'이다.
이 책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초식 진심직설 眞心直說 나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다 2초식 불가근불가원 不可近不可遠 상사의 오른팔은 안전핀이 아니다 3초식 청출어람 靑出於藍 부하는 그대 성공의 텃밭이다
4초식 오월동주 吳越同舟 경쟁하면서도 때로는 함께 가야 한다
5초식 도광양회 韜光養晦 이직 첫 계명, 333검법을 써라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불가근 불가원, 바로 상사와의 관계다.
상사 대하기 입사 연차별 맞춤형 전략, 내 할일 다 하는데 괴롭히는 상사, 무능하면서 자리만 차
지하는 상사, 총대메기 전략, 상사의 비리....대개 어느 직장에나 있음직한 내용이 빼곡하다.
그 중 지금 내게 가장 적합한 문구는,
"당신 앞에서는 비정하고 거대한 상사이지만, 그도 결국 똑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에게 엄한 척하지만 사실은 당신을 유심히 지켜보며, 당신의 성장을 속으로 기뻐하는 숨은
흑기사일 수도 있다." 이다.
회사 내 제법 센 권력과 카리스마, 그 뒤에 보여지는 '떼 쓰는 남자아이'가 바로 내 상사다. 상사
뒷담화 대상은 늘 '떼 쓰는 남자아이'인데, 이제는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권력과 카리스마를 유
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떼 쓰는 남자아이'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부하직원에게 유치한 떼를 써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그도 결국 같은 사람인 것이다.
설령, 비정하고 자기만 아는 상사라 하더라도 그를 같은 사람으로 보는 시각, 그 지점이 상사와
의 관계, 그 출발점이다.
산뜻한 출발로 상사와의 관계가 좋다면 불가근을 유념해야 한다. 상사는 부하에게 파악되면 안
되는 존재,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는 것이다. 가령,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부하가 파악한 상사의 진실은 완벽한 진모를 파악한 것이 아닐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반대로 위에서는 아래를 거의 완벽하게 읽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상사를 평하는 데서는 항상 겸손하고 신중하면서 말을 아껴야 한다. 그리고 가급
적 상사와 겨루는 일을 삼가라고 말하고 싶다. 부하는 대부분 총이 한 자루인데 반해 상사는 총이
두 자루일 뿐만 아니라, 서랍을 열면 거기서 미사일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현실성을 소개한다.
저자는 마지막 도광양회 부분에서 대기업 인턴과 중소기업을 고민하는 청년에게 중소기업의 장
점을 쫙~ 얘기해주고는 대기업 인턴으로 가라고 조언한다.
원론적인 내용과 실제 상황이 다르기도 하지만, 상담 요청자의 심리까지 감안한 현실적인 조언이
라는 점이 이 책의 최고장점이다.
길이 단단히 들어버린 나는야 암반수족.
계속 암반수족을 고집, 할까?
이 책은 고집쟁이를 고민하게 하고, 허공에 뜬 두 다리를 붙잡아 지상에 붙여놓는다.
언젠가 물길을 바꾸든, 물길을 확장하든, 물길이 메말라버리든 뭐, 언젠가 결딴이 나겠지.

읽은 날 2012. 7. 24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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