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역사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 배국원, 유지황 옮김 / 동연출판사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신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

 

이 책 제목을 보고 걱정했다. 이 책 <신의 역사>를 읽어야하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나는 세상 지식나무 가지에 달린 열매를 종류별로 가득 담고 싶어하는 채집가인데, 열매가 매달

려 있는 가지, 줄기, 뿌리까지  탐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골치 아픈 건 질색해

하는데, 탐스러운 열매에 대한 호기심이 간혹 이를 넘어서게 할 때가 있다.

 

유달승의 <중동은 불타고 있다>를 읽은 후  시온주의 주장의 근거와 서구가 갖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의 기원이 궁금해졌다.

근원적인 대답은 근원이 대답해줄 터, '골치 아파도 어쩔 수 없군' 하는 자포자기 마음으로 이 책

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명제로 정리된 종교적 '신념'과   그 명제들을 신뢰하게 만드는 '신앙'과는 구분되어야 한

다며 선을 긋고 시작한다. 시대와 변화를 초월하여 있는 그대로 표현 불가능한 신의 실재 그 자체

에 대한 역사가 아니라,  인류가 아브라함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

가에 대한 내용을 알려준다. 즉, 기원전 4천년전 문명의 발상지였던 유프테라스강 유역을 중심으

로 한 신에 대한 인간의 관념의 역사가 담겨있다.

 

이를 통해 어렸을 때 가끔 가졌던 신에 대한 의문이 유치원 수준에만 머물러 있었음을 세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 친구 손 잡고 다녔던 교회, 그 수준 말이다.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도록 종교가 유치원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건 종교와 생활과의 간격이 멀

어졌기 때문이다. 갈수록 우리의 대다수는 더 이상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둘러쌓여 살아가

고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발달된 과학과 소비시대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물질적, 육

체적 세계에만 관심의 촛점을 맞추라 한다.

내 수준이 이렇다보니, 이 책에서 알려주는 내용, 구절은 모두 몰랐던 내용이다.

 

가령,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한 뿌리라는 점, 기축시대 여러 사상들은 서로에게 영향

을 주고 받으며 생성, 발전되었는데 종교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이 그러했고, 종교를 둘러싼 쉼

없는 논의와 대립이 그러했다.

인간과 교류하지 않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신과 인간사에 개입하는 신의 이야기, 반인격신과 인격

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거대한 흐름이었다.

이 거대한  흐름을 쓴  저자 카렌 암스트롱은 17살 때,  옥스퍼드 입학 허가를 받아놓고  7년 동안

수녀가 되기 위해 엄격한 수도회의 규칙과 수련을 견디기도 했다. 비록 25세 경에 수녀원을 완전

히 떠나긴 했지만,  살만 루슈디와 함께 마호메트에 관한 전기를 펴내기도 한 그녀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교, 불교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편견 없는 자세가 으뜸이다.

 

그녀가 전하는 신에 대한 인간의 관념의 역사를 보자.

 

초기 종교적 신앙은 아름답지만 무시무시한 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험에서 필수적이면서 자연적

으로 시작됐다.

태초에 신들은  거룩한 무형질의 질퍽질퍽한 황무지로부터 둘씩 출현했으며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은 애초에 없었다. 그리고 신의 실체에서 최초의 인간을 창조했다.

 

'성서'에 보면, 유일신 종교의 시작은 기원전 20~19세기, 가나안에 정착했던 아브라함에서 연유

됐는데, 초기 인간과 친근했던 신과 달리 야웨는 이스라엘인에게 자신의 특별한 백성이 되어 특별

한 효율적인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음을 약속했다.  신과 인간의 계약이 시작됐고  신과 인간의 간극

이 벌어졌다.

 

그 후 기축시대의 새로운 세계관 속에서 야웨는 '유일한' 신으로 등극했다.  동서양을 막론한 새로

운 세계관 출현 속에서 이방종교에 흡수될 위험을 견디고 최초의 유일신, 유대교로 탄생한 것이다.

유대교 탄생에서 보여지는 키워드는 다른 신들에 대한 적개심과 기존 사고방식과의 단절이다.

선지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태도 즉, 다른 신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스라엘인에게 중동

의 신화적인 사고 방식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하고 당시 주류적 흐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갈

것을 종용했다.

유일신 종교 이전, 고대 다신교가 가진 관용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자리잡았건만, 그 후 다신교를 배

척했다니, 현재 기독교 모습이 세삼스럽다. 그들이 말하는 '우상 숭배'의 들키고 싶지 않은 한면을

본 거 같다.

반면, '주류적 흐름과 다른 방향'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이념, 철학으로서의 순기능으로 읽을 수 있

겠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겨졌다. 초기 기독교인은 예수를 새로운 모세, 새로운 여호

수아, 새로운 이스라엘의 창시자로 받아들였다.  붓다와 마찬가지로 예수는 그 시대 많은 사람의

가장 깊은 열망을 포착했고, 유대인들이 수세기 동안 꿈꾸었던 것을 실체화했던 것 같다.

예수가 죽은 후에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가 신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분명히 예수는 자신을 신이

라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기원전 6세기 붓다의 죽음은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쳐 4세기 경 '원죄'에 대한 개념이 도입됐고,

예수 안에 신이 성육했다는 삼위일체론이 만들어졌다.  성육신론은 언제나 유대인에게 경악스러

운 일이었다. 보수적인 로마인에게 기독교는 조상의 신앙으로부터 이탈한 불경건의 극악한 죄를

범한 광신자의 종교로 비쳐졌다.

 

기독교는 성육신을 믿으며  종교적 진리에 대한 배타적 개념을 지켜 왔다.  그러던 중 7세기경 새

로운 신 계시를 주장하고  경전을 만든 아랍인 예언자의 등장에  유대인처럼 경악하지 않을 수 없

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신이 성육신한 유일한 구원자임을 주장하는 기독교 세력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아랍 예언자에 의해 창시된 유일신교 '이슬람'은 놀라운 속도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

역으로 확산되었다.

신의 언어라 일컬어지는 경전, 꾸란 the qur'an(낭송)과  무함마드의 힘은 유대인이 다신교적 고

대 신앙과의 단절을 위해 700여 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을 단지 23년 만에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이슬람인을 신의 계시를 받지 못한 야만인이라고 조롱했는데,

그런 그들이 단기안에 이룩한 놀라운 업적에 대한 경외감, 두려움, 아마도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

지는 게 아닐까 싶다.

야만인이라 여겼던 이한테 받은 굴욕감과 두려움이 두고두고 그 원흉이 된 것이리라.

 

이슬람교는 경제적인 성공 속에서 공동체 이기주의와 탐욕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 생활을 중시

하는데서 시작했다. 어느 종교보다 정치적인 탄생이며, 그러한 경향은 지금까지 어이지고 있다.

 

9세기, 그리스 과학과 철학의 시대의 철학자들은 종교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다만 종교에 덧붙여

있는 원시적이고 편협한 요소를 제거하여 종교를 정화시키기를 원했다. 그들은 알라의 존재를 자

명한 것으로 믿었으며, 알라의 존재가 합리주의 철학 이념과 양립한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증명

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 동자'의 존재 증명을 수용해 세계 모든 존재는 발생 원인이 있으며, 그 발

생의 근원인 부동의 동자가 영원불멸의 완전한 존재 자체라 했고,

 

플라톤은,  세계는 신성한 이성을 표현하는 것이고,  인간은 자신의 이성적 능력을 정화하는 것에

의해 신성한 것에 참여하고, 일자 一者에게 돌아갈 수 있다며 유출의 논리에 집착했다.

 

이븐시나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신 이해와 <꾸란>의 계시적 신 이해 사이의 절충이 시

도되기도 했지만 결국,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철학적 신 이해는 신비주의적 종교

경험의 신 이해로 급격히 대체되었다.

알 가잘리가 말한   "종교 경험만이 인간의 이성과 지적 능력을 초월해 존재하는 신을 입증할 수

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았다."로.

 

또는, 신이 '존재'한다기보다는 '비존재'하며, '현명하기'보다는 '무지하지 않다'는 식으로.

또는, 신은 '무지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카렌 암스트롱이 전하는 책 한권으로 오랜 세월 인간이 신에 대해 가졌던 생각의 모든 흐름을 파

악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제법 굵직 굵직한 줄기를 볼 수 있다.

거대한 흐름을 관장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아마도 이 문구가 아닐까.

 

"만약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의 탁월한 신앙가들로부터 하늘 위에서 세상으로 강림하

는 신을 기다리는 대신 내 자신을 위하여 신에 대한 감각을 의식적으로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들었더라면, 신이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임을 일캐워 주었을 것이다.

신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 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실재라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불가지론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파이이야기>의 얀 마텔이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불가지론자다."

라고 했을 때, 뜨끔했다.

내가 불가지론자인가. 아닌가. 얀 마텔에게 참을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데.

 

나는 어쩌면 불가지론자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카렌 암스트롱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휴머니즘은 그 자체로서 신 없는 종교인 셈이다. - 물론 모든 종교가 유신론적인 것은 아니다.

현대의 윤리적이며 세속적인 이상은 지성과 감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르침을 가지고 있어서

보다 전통적인 종교들이 한때 가르쳐 주었던 인생의 궁극적 의미에 관한 믿음을 찾는 방법을

현대인에게 보여 주고 있다."

 

 

휴머니즘,인문주의,인본주의 그 위대한 시작인 르네상스

 

읽은 날  2012. 3. 19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