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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의 위기
멜빈 코너 지음, 소의영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현대의학의 위기, 멜빈 코너>
직장 후배의 남친은 레지던트 1년차다. 소문대로 레지1년차 생활은 사람의 생활이 아니다. 30시간 근무 3시간 쪽잠, 밥을 먹으면서도 졸기 일쑤, 불규칙한 생활과 식습관은 온몸에 징후를 보여주고 있고, 그럼에도 우울한 환자의 일상은 그를 황폐화시키는 듯 했다.
그를 보며 궁금해졌다. 그토록 잠을 못 잘만큼 일이 많은 건지, 그래야만 하는 건지, 다른 방법은 없는 건지.
많은 사람들은 평소에 자신의 병을 방치해 놓았다가 죽기 직전 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만일, 당신의 어머니라면"의 강력기제가 발휘되어, 설령 예방접종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아이들의 운명이 있다 하더라도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절박한 마음만큼 현대 의학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생겨난다. 이런 것들이 때때로 구식의 값싼 방법에 비해 이점이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더 추가된 가치가 진료비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사나 환자나 모두가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가 "아마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로 교묘히 변하고, 또 "확실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로 바뀐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가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된다.
오슬러의 "병동에서 살라"의 경구 탓에 수련의사는 "레지던트"라 불려진다. - 현대 의학이 오슬러의 취향에서 출발한 관계로, 수련의들은 특정 장기에 대해서 극도로 전문화된 과학적인 이론과 문제들에만 촛점을 맞추는 전문의 밑에서 배우게 된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런 질병들이 발병하기 전에 발생을 억제하거나 질병 초기에 경과가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등의 1차적 혹은 2차적 예방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는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의료기관은 없다.
의학사의 대가인 토머스 맥퀸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주된 이유가 사회.경제적 변화와 생활 양식의 변화 및 백신과 같은 특정 질병의 예방법들 때문이라 한다. 즉, 현재의 의학체계가 고도의 전문화. 과학화 대신 1차, 2차 예방에 초점을 맞춘다면, 직장 후배의 남친은 전보다 훨씬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의사는 '환자와 보이지 않는 벽'을 가진 의사가 아니다. 환자에게 위안을 주고 가끔은 생명을 구하기도 하는 노력, 만나기 쉽고 친근하고 우리 주변에 있는 의사가 더 필요할 지 모른다.
지금 의사는 왜 환자와 '보이지 않는 벽'을 갖게 되었나?
"의과대학에 갓 들어간 신입생이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해부학 실습이다. 즉 그것은 의학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의학계의 가장 젊은 사람들조차도 외부 사람들과 격리시키는 방법이다. 그것은 처음으로 우리는 우리이고 그들은 그들임을 알게 하는 경험인 동시에, 의대생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다시는 그들과 같아질 수 없을 것임을 일깨우는 첫 사건이다. 교수와 학생 모두 이 과정이 극히 중요한 과정임을 알고 있다.
잠이 몹시 부족하고, 할 일은 산더미같이 쌓이고, 새로운 과학 지식은 계속 배워야 하고, 과중한 환자 수를 배당받는 등의 수련 과정은 점차적으로 자신의 생존 자체가 위태롭다는 관념을 젊은 의사들에게 불어넣는다.
자신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도 환자들이다.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죽어 가는 사람도 환자요, 그러한 노력에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는 것도 환자이다. 또 환자들은 병원에서 나가면 종종 병을 발생시킨 처음의 나쁜 버릇으로 되돌아간다.
수련이 끝난 후 의사가 자신의 환자를 직접 볼 때가 되면, 보통은 환자에 대한 부담도 적당해 지고 밤잠 없이 지내는 날도 거의 없어짐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자신과 환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다."
이렇게 전문화되어 진료가 점점 냉혹해지고 비인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의학 교육을 담당하고 의료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싫어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의미심장하며 문화인류학적이다. 그들은 변화시킬 수 없다. 위계 질서가 강한 조직에서는 어느 누구도, 제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더라도 그 조직이 운영되도록(혹은 실패하도록) 움직이는 힘을 자기 의지대로 거역할 수 없다. 의료 제도의 경우 이것을 움직이는 힘은 꾸준한 과학의 진보, 의학 수련의 문화적 전통(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사고 방식), 가난한 사람들의 보건을 수련의를 통해서라도 해결해야 할 국가적 필요성, 환자들보다 주식 투자자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험 회사들의 잘못된 의식, 의료보험의 의료비 지불의 왜곡된 패턴 및 그 결과에서 파생되는 의사들의 소득 불균형과 피상적인 의료의 전문화, 터무니없는 행정 비용의 낭비, 욕심과 기만, 그리고 나날이 늘어가는 의료 사고 소송이 의학적 판단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 등이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강력한 힘은 내가 제안한 "만일 당신의 어머니라면" 원리일 것이다"
한숨 나온다.
이 사회는 온통 문제점 투성이다. 정치, 교육 등도 모자라 의학계도 이렇다니!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단 말인가! 문제가 있어야만 당연한 것인가!
저자는 짙은 한숨을 내뿜고 있는 나에게 '위안이래봐야'의 수준을 제시하고 있다.
"결핵, 말라리아, 주협흡충, 어린아이가 있는 어머니, 여성이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문제 – 이 숫자는 여전히 전세계에 걸쳐 에이즈로 죽는 사람보다 많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유독 에이즈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질까?
간단히 말해 에이즈는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에이즈에 대한 관심은 전혀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공포심 때문이다."
"에이즈의 공포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부유층을 편안한 잠에서 깨워 그들의 멋진 지갑에서 푼돈을 끄집어내어 세계적으로 보건 의료의 위기가 지속되는 곳에 던져놓았다. 시스템과 같은 에이즈의 조절과 예방에 대한 체계, 전세계를 망라하는 새로운 연결망도 구축되고 있다.
그들이 옳다는 희망을 갖자. 우리 자신에 대한 두려움만이 돈을 꺼내게 하고, 질병으로 인한 수백만 명의 조기 사망에 대한 공포만이 우리 양심을 자극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희망을 갖자."
결국, 직장 후배 남친은 문화인류적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지금처럼 쪽잠을 자야한다.
세계의 99%인 우리는 부유층의 공포심에 기대어 개미 눈물만큼 희망을 가져야 한댄다.
이런, C B.

읽은 날 2011. 9. 7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