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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버트란드 러셀 지음 / 사회평론 / 2005년 10월
평점 :
얼마 전 <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에서 서구에 일상적인 종교로 인식된 기독교 부분을 읽다가 궁금증이 생겨 읽게 됐다. 그 정도로 일상화된 기독교임에도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대놓고 얘기하는 노철학자가 있다니, 그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날,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초1 딸과 얘기하던 중 우연히 다음의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학교 입학 후 바로는 아니지만 1학기 언제부터인가 매.일. "걸음마 성경"을 모두 같이 읽고 선생님이 진행하는 "골든벨"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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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학교에서 교사의 종교적 취향만으로 특정종교를 가르친다는 점.
초1,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범위가 좁은 아이에게 부모 동의는 커녕 부모도 인지못하는 상태에서 가르친다는 점.
일상적인 대화 속 종교이야기가 아닌,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점 - 가령, 반 아이들이 모두 같이 읽을 정도로 같은 책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지금 내 딸에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 날, (평소에 생각할 수 없는) 교장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OO초교 교장 OOO입니다"가 전화수신 멘트인 교장선생님과의 통화는 매우 고마웠다.
대부분 학부모들이 알고서도 말씀을 안 하는데 이렇게 알려주셔서 고맙다며 지금까지 진상파악도 못한 학교가 잘못했고 바로 시정하겠다고.
그 다음날 아이를 통해 확인해보니, 역.시. 바로 조치됐다.
러셀은 다각적 측면에서 시종일관 진지하고 철학적인 논조로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해 얘기한다. 제1원인론, 자연법칙론, 목적론, 신성을 위한 도덕론…
그 중에서 가장 많이 공감하는 것은 "종교의 일차적이고도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다.
아마도 무의식 중에 <미학 오디세이1권, 진중권> 을 통해 본 내용이 재차 합리화되는 부분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러셀은 1870~1970년으로 세대가 주는 문체 차이 탓인지 쉬 읽혀지지 않지만, 책 말미에 있는 철학자이자 신부인 코플스턴과의 대화가 가장 압축적으로 이 책을 설명한다.
그 둘의 대화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입장에 대해 얘기하며 평행선을 달리는데, 그것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과의 양보할 수 없는 차이인가 보다.
코플스턴 : 무엇인가가 분명 실재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설명하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며 그것은 우연 존재들의 연속 그 바깥에 있는 존재인 것.
러셀 : 실재하는 존재들은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므로 그것들의 실재를 설명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이미 내 생각은 종교는 이성이 아닌 감성적인 일이라 선을 긋고 있었던지라, 감성이 아닌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딱히 인상적이지 않다. (어쩌다 생긴 궁금증에 대한 적절한 책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역시 이성적, 논리적으로 종교인이 되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 했다.
읽은 날 : 2011. 11. 16. by 책과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