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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월
평점 :

우주라... 내게 '우주'는 태양을 시작으로 행성들이 이웃해 늘어선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미지가 전부이다. 나로호, 이소연…은 뚜렷이 각인되지 않아 골똘히 생각해야 떠오르는 것으로, 가늠할 수 없는 공간 크기만큼이나 일상과 격리된 일이다. 그나마 갖고 있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은 한 장의 종이 위에 모든 것을 그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속임수라 하니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 속임수가 어느 정도인지 보자.
"교과서에 여러 쪽을 펼칠 수 있는 면을 만들거나, 폭이 넓은 포스터용 종이를 사용하더라도 도저히 불가능하다. 상대적 크기를 고려한 태양계 그림에서, 지구를 팥알 정도로 나타낸다면 목성은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야만 하고, 명왕성은 2.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야만 한다. (더욱이 명왕성은 세균 정도의 크기로 표시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도 없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켄타우루스를 그린 그림에 나타내려면 1만 5천길로미터 바깥에 표시되어야만 한다. 목성을 이 문장 끝에 있는 마침표 정도로 표시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축소하면, 명왕성은 분자 정도의 크기가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10미터 떨어진 곳에 표시되어야만 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이 책은 저자가 1981년 11월부터 [중앙공론]지에 연재된 글을 1983년 1월 책으로 출간한 것으로, 170만 년에 이르는 인류 역사 가운데 겨우 100 여명 넘는 사람만이 지구 환경 밖으로 나간 경험을 쓴 것으로, 포털 상 분류는 '과학/공학'이나 내겐 '인문'학 책이다.
생각해보라. 170만년 중 겨우 100여명만이 했던 이 체험 – "잠재의식 하에서 시작된 변화가 본인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사람은 그것을 초래한 체험의 내적 의미를 해석하려고 의식적인 반성을 시작한다.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하는가는 오로지 그 사람의 성찰 능력에 달린 문제이다." 라고 말한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우주비행사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문학•정서적 분야보다 수학과 과학 즉 이성이 매우 발달한 이들이라 웬만하지 않고선 감동을 잘 안 받는다. 이러한 그들이 우주 공간에 진입하면서 본 지구의 광경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종종 그들의 인생 혹은 종교관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아마 시인이 그 광경을 봤다면 그 광경에 심취해 지구 귀환을 못 했을지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주 비행사 중 한명인 유진 서넌의 표현을 보자.
"그때의 광경은 각별하다. 인간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지구를 볼 수가 있다. 지구와 멀어짐에 따라 대륙과 대양이 한눈에 조망되었다가, 마침내 지구의 둥근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계가 한눈에 보인다. 전인류가 내 시야 속으로 들어와 버린다. 눈앞의 청색과 백색의 구체 위에서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현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감동적이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해 뜨는 지역과 해 지는 지역이 동시에 보이고, 지구가 회전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다. 살아 있는 세계가 조금씩 내 눈앞에서 그 생을 전개하고 있다. 나도 그 세계에 속한 일원이지만, 나는 여기에 있고 나머지 모든 세계는 나에게 보여지며 거기에 있다. 나는 사람이면서 눈만은 신의 눈을 가지고 체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구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지구는 점점 아름다워진다. 그 색깔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우리들은 며칠이나 걸려 초고속 로켓을 타고 겨우 달에 도착했다. 우주의 광경 중에서 변한 것은 지구의 크기뿐이고, 그 나머지 우주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우주도, 지구도, 인간도, 생명도 신이 창조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 존재가 단순히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우주 체험이 가져다 준 확신이다."
아! 나도 우주선을 타고 지구가 내 눈앞에서 점점 더 작아지는 광경을 볼 수만 있다면!
그 비용이 5억이란 소문에 그냥 바램으로만 남을 듯 싶다. -_-;
해보고 안 해본 것의 차이는 일상생활 어디서 볼 수 있지만, 우주 체험은 인간의 감각, 기존의 인식, 과학을 뛰어넘는 것이라 종종 종교적인 경험으로 나아간다. 다카시가 인터뷰한 우주비행사는 주로 미국인들인데, 미국은 '종교'를 적는 칸이 있다면 기독교를 전제하고 교파를 적을만큼 기독교가 생활 깊숙히 파고든 나라이다. 하여 (예외는 있으나) 종교적 체험으로 나아간 이 우주체험을 무신론자, 시인 등 예술인이 경험했다면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까 자못 궁금하다.
이 같은 신비 체험의 표현 불가능성, 전달 불가능성 -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연애 심리를 천만 단어를 쓴다 해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일텐데, 그들은 체험을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 줄까?
5억이 있다해도 감히 체험할 수 없는 우주체험을 간접적이나마 본 것에 감사하며, 내게 과학책이 아닌 인문, 에세이 혹은 여행책인 이 책의 여운 - '체험'의 내면화는 본인의 성찰능력에 달린 문제라는 저자의 말대로 하루하루 성찰의 힘이 길러지길 소원한다.

읽은 날 : 2011. 10. 24. by 책과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