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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07년 상반기, 나름 따기 어렵다 소문이 난 금융부분 자격증 하나를 취득한 후 2005년부터 진행중이던 금융 버블 속을 신나게 질주했었다. 거침없었다. 실물과 금융 모두 호황을 누렸으며 게다가 이론까지 겸비하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만났고 2009.1월, 관계사에서 받은 이 책을 우연히 펼쳐본 후 나는 완.전. 절망하여 이 후 몇개월 동안 독서도 끊었다.
이 책은, 백조는 당연히 흰색이며 검은 백조(블랙 스완)가 없다는 과거의 경험이 행동의 준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자신의 견해를 더욱 정당화하는 역설을 만들어내곤 하는데, 이는 화살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 탓으로 이야기 짓기의 오류를 통해 더 드러난다 한다. 그 결과 우리의 이해는 목표를 벗어난 화살이 되기 십상이며 이는 '학습의 저주'를 받은 헛똑똑이(지나치게 틀에 잡혀 생각하는 사람)를 양산해 낸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은 "정규분포곡선, 그 거대한 지적 사기" 이다.
그 당시 내가 하는 일이란 게 정규분포곡선에 근거에 상관계수, 표준편차 운운하며 투자자산 조합(포트폴리오)의 합리성을 설파하는 일이었는데, 그것이 "사기"라니! 그저 사기에 불과한 것을 모른 채 예쁘게 포장하고 합리화해 최신 무기인 양 남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규분포곡선, 상관계수, 표준편차 - 과거 자료를 수집하여 미래를 예측하던 나는 호되게 당했다. 절망스러웠다. 처참하게 당할 것도 모른채 그 공부를 했다고 자랑스러워한 자신이 부끄러웠고, 굉장한 것인양 떠들어댔던 내 모습이 수치스러웠다.
수치가 조금만 변해도 복리 효과탓에 미래의 모든 숫자가 변하는 것인데, 그 수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알았다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당장 눈 앞의 것도 예측 못 할진대, 좀 더 먼 미래의 것을 예측하겠다며 나대다니, 이럴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빈껍데기 전문가 - 오류가 크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측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로 심각한 문제 -일 뿐이었다.
자산관리의 제1원칙이 자산배분인데, 상관계수와 표준편차로 위장한 투자자산 세계 안에서의 배분이 그것인 줄 착각한 것 또한 너무 괴로웠다. 은행예금 (혹은 국공채)과 투자자산 간의 배분이었어야 했는데 투자자산 내에서 상관계수 낮은 것들끼리 아무리 엮어봐야 무너질 때 한방이었던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을 그 당시는 너무 몰랐다.
직장 내 위치에 떠밀려 자산관리 제1원칙을 모른 척 해야했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위안이 되지 않았다.
괴로웠다.
그리고 약도 올랐다.
저자는 진작에 '블랙 스완' 출현을 알고 대비했기에 떠나는 기차를 쫓아가지 않게 되면서 우아하고 미학적인 행동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다며, 은근히 뻐기는 자세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아니꼬왔다. (아, 그 당시 난 그렇게 봤다) 아니, 그럴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저자가 알려준 '블랙 스완'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 기르기를 포기했기에.(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인생을 좌우할 사건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행운이며 희귀 사건이며 엄청나게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다."
며 끝을 맺는 이 책을 지옥에나 던져버리고픈 심정이었다.
"너희는 이렇게 살았쟎아? 난 이렇게 살아! 나처럼 하고 싶다고? ㅋㅋ 그냥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행운이고 블랙 스완이니 그냥 감사해~!"
으... 뼈아픈 자책과 반항할 기운도 없는 감정의 훼손을 당한 나는, 지식을 쌓고 책을 읽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로 발전하여 한동안 책을 쉬었다. 도대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와 책을 읽은다한들 나아진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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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을 집어들고 나서도 굉장히 오랫동안 이 책은 내게 불쾌한 책으로 남아 있다가 최근 들어 아주 조금씩 복권되고 있다.
"예측하려 애쓰지 말고, 다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라.
과거의 오류에서 배우기보다는 감정에 쏠려 미래를 투사하는 정신적 장애와 왜곡이 우리에게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나약한 투자자일 뿐임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감정은 회복 되어 갔고 '블랙 스완'을 통찰하기 보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자세를 기르게 되면서 이 책이 그저 불쾌한 책으로만 기억되지 않게 됐다.

읽은 날 : 2009. 1. 21. by 책과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