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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불명 야샤르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어제 한겨레기사에서 본 뉴스다.
부모 없이 살던 모씨와 연락이 끊긴 가족이 실종선고를 해 당시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모씨는 졸지에 사망자가 됐다. 그 후 출소한 "사망자"인 모씨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도둑질로 경찰에 불잡힐 때마다 경찰, 구청, 법원을 들낙거렸으나 그 어느 곳도 잘못된 사망선고를 바로잡아주지 않아 16년동안 "사망자"로 살다가 아홉번째 법정에서 드디어 사망자의 족쇄를 벗었다 한다.
이 기사를 보고 며칠 전에 읽은 "생사불명 야사르"가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
호적과 공무원의 실수로 일찍이 사망자가 된 야사르는 학교, 유산상속 등 권리를 누려야 할 때는 주민증이 없어 "넌 죽었어!" 라며 거부당하고 군대, 세금등 의무를 져야할 때는 "넌 살아있어!" 라며 알토란같이 그의 것을 쏙쏙 빼앗아감을 당한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야샤르의 이야기는 네신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오스만'이라는 노동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 책은 <최성일,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서 "내 책읽기 사상 최대의 요절복통이었다. 예의 네신의 다른 작품들처럼 웃음 뒤끝으로 서글픔이 밀려오지만, 여기선 즐거움이 주눅 들지 않는다" 는 평을 보고 읽게 된 책인데, 삐죽삐죽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어 실실거리다 급기야 빵빵 웃을 수 밖에 없다.
행정 모든 곳에서 "넌 죽었어!" "넌 살았어!" 하며 야샤르가 당하는 일도 그렇지만, 그가 유산상속을 받기 위해 구청에서 당하는 일은 그.야.말.로. 책임 떠넘기기, 나 몰라라, 내 잘못 아니야의 초절정판이다. 그깟 "번호" 하나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야사르에게 지나가는 사람 왈,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았냐, 나는 담당자 만나기 위해 일주일째 이러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내 잘못 아니야, 내 탓만 아니면 돼, 이 잘못은 다른 이에게 넘기기만 하면 돼, 어렵다면 굳이 해결하지 않아도 돼, 내 탓만 아니라면!"
내가 이런 끔찍한 관료주의를 만난 건 직장에서였다. 윗분이 나서서 책임을 아래직원에게 떠넘기는 모범을 보이사, 많은 직원들은 그를 따라 배우기 시작했고 배우지 않은 이들도 서서히 물들어 갔다.
그리고 "내 탓만 아니면 돼"의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제노비스 신드롬, 방관자 효과" 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와줄 확률은 낮아지고,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인데, 이렇듯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가리켜 심리학 용어로 '책임분산'이라고 한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그렇다고 "내 잘못 아니오" 를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만 돌릴 수 없다. 개인의 문제도 있으나 사회적인 문제도 매우 크다. 오늘도 누구는 "내 잘못 아닐껄?" 하며 시종일관 같은 태도를 보이고, 과도하게 "네 탓이야" 책망받던 누구는 그리 되셨고.
책임지는 시대가 되기 위해선 맨 위부터 그래야 한다. 국가면 국가, 기업이면 기업, 가정이면 가정. 곳곳에서 최고인 "그"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자발적으로 책임 지기 힘들다.
하여, "내 잘못 아니오" 그 말 뒤로 숨은 수많은 권력앞에 속절없이 희생당한 야샤르는 바로 우리,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읽은 날 : 2011. 10. 16. by 책과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