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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양희진 옮김 / 문파랑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게 공선(1)
고바야시 다키지/양희진 역, <게 공선(蟹工船)>, 문파랑, 2008.08
1> 80년 전의 프롤레타리아가 오늘의 88만원 세대에게 말을 건다
무려 80년 전(1929년)에 발표된 이 ‘고전적인’ 프로소설이 작년부터 느닷없이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붐을 일으켰다. 열기는 올해까지 이어지고 TVㆍ여성지 등에까지 작품이 소개되면서, 무려 30만권이나 책이 팔렸나갔다 한다. 출판대국이라는 일본에서도 요즘은 워낙 책이 안 읽히기 때문에 이 정도 셀러도 대단한 수준이라 한다. <yahoo Japan>에 들어가보니, 아예 ‘蟹工船 ブーム(게공선 붐)’, ‘蟹工船 감상문’도 등록된 검색어가 되어 있다.
이 붐은 느닷없는 것이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 배경은 신자유주의가 일본의 청년 계층에 강요하는 고통이다. 일본의 ‘88만원 세대’인 ‘워킹푸어(working poor)’ 세대에게 80년 전에 씌어진 프롤레타리아 소설의 메시지가 ‘현실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 공산당도 이 붐에 크게 고무되어 있다. 마이니치 방송에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당수가 직접 나가서 당원이었던 고바야시 다키지와 일본 공산당의 인연을 강조하는가 하면, ‘게공선 붐’ 덕분에 작년 10월 이후 일본공산당에 무려 1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새로 입당했다 한다.
http://headlines.yahoo.co.jp/hl?a=20080831-00000011-maip-pol
그런데 이 붐을 위해서 진보적인 일본 근대문학 연구자들이 시간을 두고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쓴다.)
그러나 이런 정도만으로 역시 ‘붐’은 설명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지옥 같은 노동환경에서 목숨을 내놓은 채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 때문에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이 결국 투쟁에 나서고 패배한다는 서사는 보편적일 수 있다. 그러나 1920년대 캄차카 해에 떠 있는 게 가공선에서의 상황이 '2008년 현재'의 상황이 세부적으로 같을 리는 없다. 더구나 설정돼 있는 '바다'와 '선상파업'의 상황이란 그야말로 극한적이고, 또 노동자들을 둘러싼 정치와 이데올로기적 지형도 다르지 않을까?
또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없고(의도적으로 이렇게 창작되었다 한다. 구레하라 고레히토(藏原惟人)에게 고바야시가 보낸 편지의 일부가 작품해설에 인용돼 있음.), 많은 노동소설이 그러하듯이 서사는 (좋은 의미에서) 상당히 거칠다. '섬세한(?)' 일본 독자들이 이런 걸 어떻게 읽었는지도 의문이다. 참으로 중요하고 또 고무적인 수용 현상이 아닐 수 없다.
2> 독서와 한일 국제 연대
이런 붐을 타고 책이 서울에서 8월에 다시 번역되어 나왔다. 많은 기대를 갖고 읽었다.
명성으로만 듣던 고바야시 다키지의 소설은 훌륭했고, 새로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일본 자본주의와 ‘제국’이 한편 자국의 노동계급을 처절하게 착취하며 건설된 것이라는 점과 더불어, 1920년대 말 일본 노동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정세’가 어떤 것이었는지 새삼 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리얼리스트로서 고바야시는 고립된 게 가공선에서의 투쟁을 둘러싼 ‘총체’를 붙잡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노동자들의 목숨에 닥치는 일본 자본주의의 현재를 군국주의화 과정과 국제정세에 연관시킨 것이다. 시공간적 배경과 자연스럽게 결부된 미묘한 러시아니즘이나 국가주의 문제는 특히 흥미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 눈에 번쩍 뜨일 수밖에 없다.
“넷, 그리고, ‘조직’, ‘투쟁’이라는, 이 위대한 경험을 처음으로 알게 된 어업노동자와 젊은 잡일꾼들이 경찰서의 문을 나서자, 다양한 노동계층 속으로 각각 파고들게 되었다는 것. / 이 한편의 글은 ‘식민지에 있어서 자본주의 침입사’의 한 페이지이다. (1929년 3월 30일)”
이 식민지란 당연히 조선과 대만이며 또한 홋카이도라는 내부 식민지이기도 하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오타루상고 출신이며 홋카이도 노동운동에 참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투쟁경력을 시작했다. 물론 조선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81) “내지에서는, 노동자의 힘이 커져서 무리하게 일을 시킬 수 없게 되었고, 시장도 대부분 개척해버리자, 자본가들은 ‘홋카이도, 사할린으로’ 갈고리 같은 손톱을 드러냈다. 그곳에서는 조선과 대만의 식민지와 똑같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노동자를 ‘혹사’시킬 수 있었다.”
82~3) “사람들은 아침에 어두컴컴할 때부터 일터로 내몰렸다. 그리고 곡괭이 끝이 힐끗힐끗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주위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했다. 근처에 세워져 있는 감옥에서 일하는 죄수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특히 조선인은 십장들에게도, 같은 동료 인부(일본인)들에게도, ‘짓밟히는’ 대우를 받았다.”
위의 두 단락은 식민지 시기 한일 노동자의 연대의 조건을 잘 정리해서 말한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일본과 한국의 ‘독서’의 교류는 구조화되어 있다.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일본 소설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으며, ‘문학’을 넘는 차원의 새로운 동시성과 문화‘교류’도 일상화되어 있다. 이는 국경을 넘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것이다.
교류는 연대의 기반이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자본주의적 동시성은 ‘연대’를 꿈꾸게 했었다. 1920년대의 조선 노동자와 청년들은 일본의 좌파와 노동운동가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반대로 그들이 일본 노동운동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 1920-30년대의 <게 공선> 독자 중에도 식민지 청년들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연대의 조건은 1920년대의 그것과는 다르다. 식민지-제국의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에서 노동자-청년들은 유사한 조건에 처해있다.
‘88만원 세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희망청>에서 한일 청년 단체들 사이에서 청년실업ㆍ비정규직 문제로 작은 연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본 여성들이 <대장금>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 때문에 한국(여성)에 국경을 넘는 연대감을 느꼈듯이, 이런 소설이 연대를 위한 상상력의 기반이 되면 좋겠다. 연대야말로 제국주의와 국가주의라는 지상(至上)의 악(惡)에 맞설 수 있는 힘이다.
진보적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나 문화산물이 교환되고, 그래서 '헌법 9조'든 ‘88만원세대(워킹푸어)'에 대해서든 한국과 일본의 청년세대가 공동의 전선을 설치하는 미래를 꿈꿔본다. 물론 1차적인 조건은 <게 공선>의 노동자들처럼 지옥 같은 상황에 맞서, 스스로 먼저 일어서는 일일 것이다. ‘당사자 운동’ 말이다. (*<게 공선> 붐에 대한 본격적인 자료와 논의는 다음 기회에 차차~.)
덧>
변형 문고판 200페이지 가량의 책이라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번역자와 편집자가 다 아마추어인지 악문과 졸문이 참으로 많다. 단어 선택, 구두점 사용도 그야말로 '초벌(또는 초보) 번역' 티를 못 벗었다. 이러면 책장을 못 넘긴다. ‘편집자주’나 책 말미에 붙은 작품 해설 자체에 악문과 졸문이 많아서, 안타까웠다.
편집자가 이 글을 보신다면, 다음 쇄를 찍을 때 반드시 전문적인 교정자의 도움을 받아서 전체 원고를 개정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오자와 어색한 문장을 바로잡고, 그대로 남아 있는 일본어식 문장도 고치기 바란다. ‘어업노동자’ ‘잡일꾼’ 등의 어휘 선택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많은 한국 젊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이 일본소설을 읽을 텐데, 지금 이대로는 정말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