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 빌 볼륨1(Kill Bll vol.1)

감독 : 퀜틴 타란티노
출연 : 우마 서먼, 루시 리우, 대릴 한나
(2003년)



 

 

 

 

액션영화의 클리셰.
그것은 악당과 주인공의 대결에서 반드시 주인공이 이긴다는 것이다.
둘째 악당:주인공의 유효타격 비율은 6:4~7:3정도라는 것이다. 즉
주인공이 악당보다 더 많이 얻어 터지고 약간은 위기도 맞이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결국에는 힘든 결투를
승리한다는 공식이다. 그러나 이것이 영화속에서 무수히 반복되고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진부한 표현양식이 되어버리고 난 후 그 누구도
악당에게 얻어터지고 결정적인 위기상황을 맞이하는 주인공을 보며
손에 땀을 쥐지 않는다. 결과가 뻔한 것이다.

스티븐 시걸의 미덕.
그의 영화는 솔직히 톡 까놓고 얘기하자 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어차피 주인공이 이길 게 뻔한 건, 너(보는 놈)나 나(만드는 놈)나 서로 뻔히 알고 있는
건데, 지루하고 따분한 주인공이 쥐어 터지는 연출이 뭐가 필요하냐.
그러느니 그 아까운 시간에 어차피 이길 게 뻔한 주인공이 얼마나 화려하게
악당을 쥐어 패는지를 보여주자는 발상. 이건 대단한 창조성이라고 나는 멋대로 생각한다.


영화 시작전 나오는 홍콩 쇼브라더스 로고 및 ‘이 영화를 후카사쿠 긴지 감독에게
헌정한다’고 하는 감독의 커멘트. 이들로 미루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아시아 폭력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알 수 있다.


 

 

 

 

 

 

타란티노 그가 확실히 아시아의 다양한 폭력영화를 많이 본 건 사실인 것같다.
영화 여기저기서 다종다양의 아시아표 폭력영화에 대한 오마쥬를 그는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유혈이 난자한 1대집단의 대난투극. 객잔에서의 대결.
일본도를 향한 카메라의 그 엄정하면서도 관능적인 시선 등). 그러나, 그가 제대로
된 스타일리스트로 서고자 한다면, 폭력을 그림으로 해서 자신의 미학이라는 걸
추구한다면, 최소한 스티븐 시걸과 같은 '참신함'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건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영화 킬빌의 결투장면 전개는 확실히 대단히 진부하다.
디스코장을 겸한 일본풍 '객잔'의 결투장면에서조차 주인공은 똘마니들은
허벌나게 쥐어 패면서, 얼굴에 가면 쓴 루시 리우의 왕똘마니에게만은
철저하게 위의 6:4 or 7:3 법칙에 따른 결투를 벌인다. 이건 너무나 작위적이며
자연스럽지 못하며, 게다가 이 영화가 초두에서 보여준 스산함에 대한 도발적
기대를 저버린다. 무론 스티븐 시걸식의 결투전개를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타란티노 지가 악동이고 잘난놈이면 잘난놈 답게 진부한 클리셰에 통쾌하게
한방 먹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아마도 내가 여지껏 본 영화중 가장 잔인한 영화였다.
잔인함의 수준은 액션영화의 경계를 넘어 거의 하드코어 호러영화의 수준
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끔찍스러움은 있었을
망정, 80년대 중반 오우삼이 보여준(아마도 그가 장철로부터 물려받은 것일 것인)
그 시뻘건, 피비린내나며, 스산하며, 처절하리만치 비장한 말로 잘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장면을 통해서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가.

추신 : 이 영화를 본 건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가 개봉되기  일본에서였고, 영화의 잔인성 때문에 소위 객잔의 결투장면은 일본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화면을 흑백처리해서 상영하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심의 때문에 몇장면 잘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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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소설의 나쁜 점 :
☆ 소설 뒷부분으로 갈 수록 내공이 떨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즉, 서두에서 보여준 서술 및 구성의 재기가 뒷부분으로 갈수록 기존소설들의 진부함을 답습한다.
☆ 주인공이 싸움을 너무 잘한다. 그는 적어도 작품안에서 맞짱떠서 진 이력이 없다. (아버지와의 권투시합에서 지지만 그건 맞짱이라 볼 수 없다)

이 소설의 좋은 점:
☆ 기존의 재일문학과 같이 아이덴티티의 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거기에 천착하지 않고 소설의 보편적 미학을 추구하고자 한점.
☆ 재일교포인 소설의 서술자(이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되어있다)는 일본인들과 동일한 한국에 대한 편견(오리엔탈리즘으로 환원해도 좋을)을 갖고 있다.(이 점은 주인공이 서울의 호텔앞에서 택시운전사를 때려눕히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그 편견이란 별건 아니다. 한국의 성리학적 전통에 대한 그들의 찬란한 오해. '유교'가 하나의 종교라는 착각. 모든 한국인들은 성리학, 소위 유교(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사상의 예학이라는 포션이 사람들에게 강요해왔고 강요하고 있는 구질구질한 프로세스들)가 한국의 자랑스럽고 찬란한 유산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하나의 도그마로 수용하고 있을 것이란 착각.

영화화되었다. 그 영화는 비록 원작에 충실하려 했지만 소설에 비하면 열나게 재미없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뒷부분으로 갈수록 더 재미없다. 유치찬란함이 대단하다. 가급적이면 소설을 읽기를.

재일교포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아이덴티티의 문제이다.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어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생활의 모든 감정과 기억들을 그들과 공유한다. 즉 일본인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서류상으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다. 80년대 이슈가 되었던 지문날인 문제의 두가지 쟁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지문을 국가 공공기관에서 채취하여 기록으로 관리하는 문제의 비인권성이며, 또하나는 바로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들과 함께 일하고 세금내며 사는 사람들이 보통 외국인과 같은 대우를 받는 점에 대한 부당함인 것이다.

이양지의 '유희'는 이질적인 '모국어'를 내면에서 거부하는 유희의 고뇌와 좌절을 통해서 그들의 아이덴티티문제를 형상화하였다. <GO>는 나름대로 그들이 처한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국적이란 근대가 만들어낸 개념에 대한 냉소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인들의 피를 '더럽다'고 생각하는 소위 자칭 코스모폴리타니스트를 그림으로써...(물론 그런 일본인들이 있다고 흥분하지 말지어다. 이는 동시에 우리모두의 모습이기도 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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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용기 옮김 / 책사랑(도서출판)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일본 문학의 명실상부한 대가. 문호의 대표적 작품. 작가는 일생을 통하여 여성의 요요한 미(美)와 그에 이끌리어 서서히 무너져 가는 자의 행복한 파멸을 탐미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남편과 아내의 일기만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 이르러서 그가 추구해온 파멸의 미학은 휴머니즘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최고 걸작 '풍전노인일기'로 가는 이정표적인 작품

훔쳐보기의 괴씸한 즐거움. 말로 표현하지 않고 희미한 단서로만 서로 주고 받는 은밀한 게임. 글로 쓰지 않으면서도 보여주기 등등 다니자키 미학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과 쾌락과 감동은 그지 없다. 모든이들에게 읽독을 권하는 바이다.

蛇足 : 참고로 이 소설은 틴토 브라스에 의하여 1984년에 영화화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디오로도 불시된 바 있는 이 영화에서 틴토 브라스는 다니자키의 이 통쾌하고도 아름다운 소설을 한편의 저질 에로영화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보고 너무나 즐거웠다. 왜? 틴토 브라스의 저질스러움은 너무나도 유쾌한 저질스러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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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서점 그라피티 - 교토 오사카 고베편
이케가야 이사오 지음, 박노인 옮김 / 신한미디어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번역문이라면 시중에 내어놓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은 분들은 문장의 내용을 이해하실 수 있는가! 더구나 안타까운 점은 이책에 소개된 책방까지 가는 방법에 대한 소개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본래 없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실질적 정보서로서라기 보다 (어차피 일본에 있는 고서점 이야기인만큼) 단순히 읽히기 위해서 펴낸 책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된 것이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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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안동림 지음 / 현암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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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Penguine Gude나 Gramophone Guide와 같은 성격의 고전음악 음반 안내서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안동림 교수 개인의 고전음악 음반 편력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안동림 교수의 음반취향은 철저하게 50년대 소위 '거장들의 시대'에 나온 음반들에 집중되어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모두 푸르트뱅글러요, 부르크너는 크나퍼츠부슈 일색..뭐 이런 식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일반적인 음반소개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클래식 음악 입문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좋은 '안내서'로 권하기는 어렵다. 음반안내서로서 갖추어야 할 제1의 성품이란 그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함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테제로부터 자유로운 음반 안내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Gramophone Guide를 읽어보면 리뷰어들의 영국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애착이 읽히며 Penguine Gude 또한 나름대로의 방향성(=편향성)이 있다. 라고는 하나 이 책은 명백히 안교수 개인의 음반과 음반에 관한 고고한 에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음악을 한없이 사랑하는 한 한자의 음악과 음반에 관한 에세이로 읽는다면, 이 책은 단연코 추천순위 제1위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안교수의 소장음반을 중심으로 쓰여진 탓인지 소개된 음반은 기본적으로 LP가 중심이 되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현재 구입이 대단히 어려운 음반도 많다. 이 책에는 음반의 소개와 아울러 곡에 대한 상세한 해설이 실려 있는데, 안동림교수의 해박한 음악지식과 깊은 내공에서 나오는 그 멋은 저절로 그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들고 만다.

蛇足 : 안동림 교수의 외국어 한글 표기는 안 교수만의 아주 독특한 표기철학에 의거하고 있다. 즉, 관용적으로 통용되는 표기를 지양하고 현지음을 살려서(또는 원어의 표기를 최대한 살려서) 적자는 것이라 보인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도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라흐마니노브'. 러시아어에서 유성음이 단어 끝자리에 오면 무성음이 되므로 Rachmaninov의 v는 사실 발음은 f가 되므로 '브'보다는 '프' 또는 '흐'를 쓰는 것이 타당하리라 보여지는데...'차이코브스키'도 마찬가지이다.

유성음과 무성음, 또는 무성음과 유성음이 만나면 뒤에 위치하는 자음의 영향을 받아서 앞에 위치한 자음이 바뀐다.(우리말 문법용어로 말하면 역행동화) 즉 유성음+무성음의 경우 앞의 유성음은 무성음이 되고, 무성음+유성음의 경우 앞의 무성음은 유성음이 된다. 'Tchaikovskii'의 경우 v+s이므로 앞의 유성음 v는 뒤의 무성음 s의 영향으로 무성음 f가 된다.

아마도 안교수께서는 현재 한국의 외국어 인명,지명 표기가 제법 현지어 소리를 존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argentina는 아르젠티나가 아닌 아르헨티나라 하며, Benezuela를 베네주엘라가 아닌 베네수엘라라 하고 있지 않은가. 근데 왜 이상하게 Mexico는 메히코라고 하지 않고 멕시코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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