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 월급사실주의
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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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선물받아 읽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월급사실주의' 소설을 좋아한다. 2023년 월급사실주의가 첫 발간된 후로, 매년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소설가 장강명이 월급사실주의를 시작하게 된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국소설이 드물다.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

나 또한 '우리나라에는 주인공이 소설가이거나, 대학 시간 강사이거나, 주부이거나 한 소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하며 지루해하던 중이었다. 세상엔 너무나 다양한 직업과 그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나라 소설가들은 너무 게을러서 자기 주변 이야기만 쓰는 구나....빈정거리던 차였다. 


그러던 중에, 다양한 일을 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노동현장에서 겪는 이야기들을 읽으니 너무 반갑고 너무 신선하고 너무 재미있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살려고 일정한 직업을 갖고, '먹고사니즘'의 고통과 환희 사이 어디쯤의 감정을 매일 매일 느끼며 산다. 그런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재미 없을 수가 없다.  


2023, 2024, 2025 년의 월급사실주의 소설집을 읽고 난 뒤, 올해 책이 나올 5월 1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월급사실주의 소설집은 매년 노동절에 나온다.)


그리고 얼마전 드디어 월급사실주의 2026_'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을 만났다. 


제목인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은 올해 월급사실주의 소설 당선작, 이태승 소설가의 '빈칸 채우기'에 나오는 대화 중 한 부분을 차용한 것이다.


"월급을 받으면서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이유나 차은우는 아니니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요즘 애들은 어디서 이런 걸 배워오기라도 하는지, 우문현답일 때가 많았다. (279쪽)

'빈칸 채우기'의 주인공 직업은 공무원이다. 승진 심사를 앞두고 갑자기 닥친 감사에 대비하기 위해, 철지난 보고서에 누락된 사인을 받으러 국토의 반을 헤집고 다니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그날의 미션에 성공하고, 승진했다는 문자를 받았으면서도 왠지 개운치 않은 감정에 휩싸인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알게 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불쑥 경고등 하나가 켜진 듯했다. 또 늦어버렸다고, 미래의 나는 생각할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293쪽)

출세에 대한 욕망이 불타는 것도, 부에 대한 욕심이 부풀어오르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 '무난하게' 살아가는 데도 이렇게 힘이 든다니. 그래....사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계급이 아닐까....


강보라, 권석, 김하율, 박연준, 성혜령, 정선임, 함윤이, 이태승 작가의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이책에 실린 이들의 소설들은 꽤 재미있었다. 이틀 만에 후딱 읽었다. 

강보라 작가의 '우리의 투어'는 나의 직업이기도 했던 잡지기자 이야기여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결국 사용자, 윗분, 경영자는 뒤로 숨어서 애꿎은 노동자, 아랫것들끼리 머리채를 잡고 싸우게 되는 걸까. 노동자들이 죽을 때까지 서로를 물어뜯는 베타 물고기가 되기를 그들은 바라고 있는 것일까.  노무사조차도 그 계급을 거스를 순 없는 현실...


권석 소설가의 '방송 사고 경위서'는 누구나 관심 있어할 만한 방송국, 그것도 예능의 무대 뒷편을 조금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이다. 작가가 MBC 예능PD라서 그런지 스토리가 핍진하다. 


대단한 것은 없지만 슬며시 미소 짓게 되는 프로그램. 처음부터 탄이 만들고 싶던 방송은 바로 이런 거였다. 탄은 다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경위서를 보내려 할 때마다 손가락을 붙잡던 힘의 정 체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건 부끄러움이었다.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대단하다고 믿었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며서도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다. 그리고 돌아보지 않으려 애썼다.(84쪽)

김하율의 '이모라는 직업'도 특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결혼식 도우미 '헬퍼'로 일하며 '이모'로 불리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도 아니면서 친근한 척 하고, 돈 문제로 넘어가서는 바로 정색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부르는 호칭 '이모'. 나도 평소에 '이모'라는 호칭이 왠지 어색하고 껄쩍지근했는데, 이 소설을 통해 그 이유 중 하나를 찾은 느낌. 


개의치 않은 척했지만, 한때는 경멸의 마음이 일었다. 이모라는 호칭에 대해.

내가 왜 네 이모야?

이렇게 묻고 싶었다. 선생님, 여사님, 헬퍼님(좀 이상하지만)이런 호칭들을 무시하고 그냥 이모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이모라는 단어는 뉘앙스에 따라 의미가 달라졌다. 유나 엄마가 이모오, 하고 끝을 길게 늘이면 친근하고 격의 없는 사이로 느껴졌지만 이모!하고 짧고 강하게 부르면 갑을의 관계를 인지하라는 무언의 경고처럼 들렸다.(106쪽)

박연준 소설가의 '경희와 경희 아닌 것' 은 영세 홍보회사에 다니는 주인공과 마트 판매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어머니의 이야기다.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주인공은 만족하는 삶을 욕망한다. 더 나은 것을 바라고, 아무도 자신을 함부로하지 못하는 미래를 꿈꾼다. 만족과 열망. 혹은 체념과 꿈에 관한 이야기.


이것 봐요. 난 비싼 인간이에요. 당신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요. 난 싸구려 가방은 들지 않아요. 이것 봐요. 난 흔치 않은 존재랍니다. 흔치 않다고요. 흔한 년이 아니라니까. 흔한 년. 흔한 년. 이게 내 칼이고 돈이고...경희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임실장의 가방을 꽉 움켜쥐었다. (142쪽)

성혜령 소설가의 '퇴직금 돌려받기'는 읽기가 좀 고통스러웠다. 열심히 일하고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소모되는 젊은 회사원들이 떠올라서. 소설의 주인공은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하면 일을 성실히, 열심히 하지만 결국은 그 때문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감봉과 경위서 작성 처분을 받는다. 그 이야기에 조금 망가진 사람 진해정이 끼어있다.


물론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잘못되어간다. 받아들여야 하니까. 우리가 삶을 바쳐서 돈을 버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증오하게 된다. 우리를 남김없이 발라먹으려는 상사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일을 너무 잘해서, 일을 너무 못해서,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말을 너무 안 해서. 이문은 그랬다. 언제나 누군가를 마음속에서 죽이고 있었다.....그러니 안 망가질 수 있나. 사람이.(172쪽)

나도 지난 십여년의 직장생활 속에 그렇게 내 속의 무언가를 망가뜨렸을까....소모시켰을까...


정선임 소설가의 '꾸밈없이 진심으로'는 생기부를 쓰는 기간제 교사가 주인공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를 관찰하는 '직업'을 가진 해원과 함께 지내는 잔잔한 에피소드들이 과연 '일'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생계유지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일인가 취미인가. 일을 하며 얻는 긍지와 자존감은 또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 


오래 일하려면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생각해서 해준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쉬엄쉬엄'이라는 말이 내심 서운했다. 자격지심이겠지만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고, 당신이 하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애쓰고 싶었다. 열심히 하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평생 수정할 수 없는 문장으로 남을 텐데.(209쪽)

함윤이 소설가의 '대타 세우기'가 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자전거로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 '메신저'로 일하는 쌍둥이가 나온다. 한 건의 배송이 삽화처럼 그려져있지만 그걸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기를 어려웠다.  


그래도 내년 4월이 되면 5월 첫날 나올 월급사실주의 2027을 또 다시 기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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