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치콘티니가의 정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3
조르조 바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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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받아 읽고 솔직히 작성한 후기입니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을 펼치기 전, 나는 일단 심호흡을 했다. 제목에 어떤 집안의 이름이 들어간 소설들은 아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집안의 내력을 한참동안 읊기 마련이니까. 

익숙치 않은 외국어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 그 부분이 읽고 소화하는 데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소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도 역시 앞부분부터 핀치콘티니 집안의 내력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왔다. 다행히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일대기는 언제나 지루하고 읽기 어렵다. 1930년대의 이탈리아와, 이름 낯선 주인공들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꼼수를 썼다. 


일단 유튜브에서 이 소설의 배경 도시 '페라라'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 와우! 그림 같다! 소설의 배경인 80여 년 전 뿐 아니라 수백년 전에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 같은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대 도시 페라라!


이번엔 네오리얼리즘의 대가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1970년 영화 '핀치콘티니의 정원' 클립 영상을 보았다. 영화는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가능하면 영화 전체를 보고 싶었는데 내가 구독하느고 있는 ott엔 그 영화가 없었다. 그리고 클립도 한글자막 된 것을 못찾았다. (뒤의 역자 후기를 보니, 저자 조르조 바사니는 이 영화를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영화 클립 몇개를 보니 대충 주인공들의 얼굴이 그려졌다. 


그 다음에 책을 읽으니 더욱 내용이 더욱 생생하게 읽혀진다. 


때는 1930년대. 유럽에서는 파시즘의 광풍이 연일 거세지고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화약 냄새가 여기저기서 맡아지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페라라에 사는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아들로 '인종법' 때문에 점점 사회생활에서 배제되고 고립된다. 


유대인들이 테니스클럽에서마저 쫓겨나자 엄청난 재산과 땅, 큰 집을 소유한 유대인 귀족인 핀치콘티니가 저택의 테니스코트를 유대인 청년들에게 오픈한다. 이제 갓 사춘기를 벗어난 남자 주인공은 다른 청년들과 함께 테니스를 치러 핀치콘티니가를 들락거리면서 비슷한 또래의 미콜 핀치콘티니에게 점점 빠져든다. 


책을 읽으면서 전쟁의 포성이 점점 가까이 들리는 데, 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태연하게 테니스나 치고 있을 수 있는가. 그들의 나이브함에 어리둥절고 답답해서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장 증오할 만한 반유대주의는 이런 것이다.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고 불평하다가, 또 반대로 그들이 주변 환경에 거의 완벽하게 동화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 그러니까 평균적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이다.(202쪽)

하루하루 불안해하며 말라가느니(주인공의 아버지는 이런 편을 택했다) 아무일이 없는 것처럼 테니스 치고, 책 읽고 논문을 쓰고, 산책을 하고, 가족들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것처럼 일상의 행복과 존엄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다음날 갑자기 아우슈비츠 행 기차에 타게 될 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들도 내면에는 불안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다는 예감을 어쩌지 못한다. 주인공과 미콜이 비를 피해 마굿간으로 갔을 때 미콜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보트는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그뒤에 이어질 결과들을 받아들일 줄 알아. 사물들도 죽어, 친구. 그러니까 사물들도 죽어야 한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죽게 놔두는 게 더 나아. 무엇보다 그게 훨씬 멋있으니까. 안 그래? (142쪽)


극심한 공포 끝에 오는 체념. 이렇게 계속 괴로울 바에 빨리 끝이나 났으면 좋겠다는 절망도 엿보인다. 미콜의 아버지 에르만노 교수도 자신의 집을 자주 찾는 주인공을 의지하며 공포를 애써 잠재우려 한다. 문 하나로 연결된 두 방에서 각각 공부하고 독서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질문들을 던지면서.


몇 년 뒤, 1943년 봄, 내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늑대 입 같은 통풍구를 향해 크게 소리질러 이름 모르는 옆방 수인과 나누었던 대화들도 이런 종류였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고 살아 있음을 느껴야 할 필요 때문에 나눈 말들이었다. (218쪽)


아름다운 풍경과 부유한 환경 묘사와 지극한 대비를 이루는 미친 파시즘의 시대, 질풍노도의 청춘, 손과 발이 묶인 채로도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 본성의 뜨거움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휘저었다.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질지 이루어지지 않을지는 책을 통해서 확인하시기를.


언제든 내 편에서 마음대로 현재를 사랑하고 응시할 수 있기에 현재가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나의 불안감은, 그녀의 불안감이기도 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악습이었다. 즉 앞으로 나아가면서 항상 고개는 뒤를 향해 있는 것. 그렇지 않은가?(267쪽)

다만, 유럽인이 아니라서, 혹은 역사 공부를 깊이 하지 않아서 시대상과 역사 분위기를 제대로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웠다. 하지만 충실한 각주들 덕분에 구글검색의 도움 없이도 책장을 넘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해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치와 파시즘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목숨을 빼앗긴 끔찍한 일을 떠올리게 될 때마다 감정적인 저항이 있었다. 


저자 조르조 바사니는 책의 주인공처럼 부유한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유년기와 청년기를 페라라에서 보냈다고 한다. 반파시스트 활동을 하다 투옥된 경험도 있으며 무솔리니 실각 후 로마에 정착해 '페라라'와 '유대인'을 주제로 한 여러 소설을 펴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자전적인 소설이고, 그만큼 내용이 매우 핍진하다.


페라라 유대인 공동체의 증인이자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대표 작가라는 저자 조르조 바사니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책을 덮자 그의 다른 책도 만나고 싶었지만 아름다운 르네상스 도시 페라라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그것보다 더 컸다. 꼭 가 볼 수 있기를. 그 도시에서 이 책을 다시 되새길 수 있게 되기를. 


그녀는 미래를 증오했고 미래보다는 "순결하고 강인하고 아름다운 오늘"을, 그리고 과거를, '친근하고 달콤하고 성스러운 과거'를 훨신 더 사랑했으니....그리고 바로 이 몇 마디 말, 내가 알다시피, 오직 진정한 입맞춤만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흔하디흔한 속임수와 절망이 담겨 있는 이 몇 마디를 막을 수 있었기에, 다른 단어들이 아니라 바로 이 단어들로 여기서 가슴이 간직한 얼마 안 되는 기억을 봉인하려 한다.(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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