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스페셜 에디션) 신카이 마코토 소설 시리즈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연약한 소년 소녀들이 바꿔놓은 세상의 형태, 사랑의 기적. 날씨의 아이’>

 

애당초 날씨란 건 하늘의 기분이야.” (p. 162)

 

<날씨>라는 소재로 신카이 마코토가 풀어낸 마법 같은 이야기 날씨의 아이는 탄탄한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는 먼저 영화로 접했고 첫 회차 관람 때 느낀 감정은 조금 복잡했다. 감독이 뭘 말하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다 자라버린 어른으로서, 남자 주인공 호다카의 범죄(?)가 납득이 안 되었고, 피도 안 마른 청소년들인 그들이 느끼는 절절한 감정이나 느와르 풍의 비장함 등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음악과 작화는 참 좋았다!

 

두 번째 보았을 땐 뭔가 느낌이 달랐다. 대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끝부분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감정들이 가슴에 꽂히기 시작하면서 나는 날씨의 아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후 두 번을 더 관람하고, 스페셜 굿즈 등을 사고, 이렇게 소설까지 읽으며 좀 더 깊이 작품을 마주해본다.

 

<날씨의 아이> 소설은 신카이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따라서 기본 뼈대는 영화와 동일하다. 다만 감독이 후기에 썼듯이, 글은 영상물과는 달리 색과 음악을 배제한 채 오직 단어와 문장으로 그려내기 때문에, 감독이 빚어내는 글은 그의 작화만큼이나 영롱하고 섬세하게 직조되어 있다. 

 

그가 단지 훌륭한 애니메이션 감독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면모도 매우 뛰어나다는 것은 아마 소설을 읽어본 이들은 다 알 것이다. 나오키 상 수상작에 버금갈 만큼 매우 유려하고 감성적인 필체로 그의 영화를 보듯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것을.

 

어떤 이는 <날씨의 아이>의 플롯이 그의 흥행작 <너의이름은>만 못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의이름을>을 갱신한 작품이라고 믿는다. 대기학, 기상학, 일본의 신화와 전설, 운명,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한데 펼쳐 놓은 감독의 팔레트는 저마다의 명암을 개성있고 다채롭게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날씨의 아이>는 호다카라는 소년이 페리에 올라 도쿄로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호다카는 2년 전에 이미 도쿄에 다녀왔고, 거기서 아주 특별한 일을 경험했다. 그안에 소중히 간직된 한 소녀와의 기억이 그에게 소용돌이친다.

 

생각해둬야 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뭘 선택했는지. 그리고 나는 앞으로 그녀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하는지.

모든 것은-그래. 분명 그날 시작됐다.“ (p.12)

 

모든 것이 시작된 그날은 바로 소녀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소녀는 병든 어머니 곁을 간호하며 창 너머의 건물 옥상에서 빛웅덩이같은 것을 본다. 그 빛에 이끌려, 다시 푸른 하늘 아래에서 엄마와 함께 걷고 싶다는 소망을 안고 옥상에 세워진 신전 토리이를 지나간다.

 

그녀는 그 토리이를 통과하며 기이한 경험을 한다.

 

자신은 바람이자 물이며, 푸르름이자 순백이고, 마음이자 기도였다. 기묘한 행복과 애절함이 온몸에 퍼졌다. 그리고 천천히, 이불에 푹 잠기듯 의식이 사라졌다.” (p. 18)

 

호다카는 그녀와 함께 보낸 그 여름을, 그녀와 세계의 형태를 바꾼 날들이라 믿는다.

 

2년 전 호다카는 아버지의 구타로 섬을 떠난다. 상처난 얼굴로 그가 늘 눈을 든 곳은 빛웅덩이처럼 흩뿌려진 빛 속의 도쿄였다. “언젠가 저 빛 속으로 가자.” (p.42) 그는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무서운 도쿄에서 버려진 고양이처럼 온갖 고생을 다하며 굶고 있던 그에게 제일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그녀였다. 

 

"너 사흘 내내 그 수프가 저녁밥이잖아.“ (p. 43)

 

소년의 16년 인생에 제일 맛있는 햄버거를 선물해 준 소녀.

 

힘들게 도쿄에 왔는데 계속 비만 오네. , 이제부터 맑아질 거야.” (p. 90 - p. 91)

 

소년을 위로하듯 밝은 하늘을 선물해 준 소녀.

 

도쿄에 오니 어때?”

 

소녀는 묻는다.

 

그러고보니 이젠 숨막히지 않아요.”

 

그래! 왠지 내가 더 기쁘네. , 어서 먹어.”

 

호다카의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경험을, 지난 한 달 동안 두 번이나 갱신한 것, 그리고 두 번 모두 같은 소녀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 (p. 114)은 어쩌면 하늘이 이어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호다카는 기도하는 순간 하늘이 맑아지는 일명 맑은 소녀인 히나와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주기 시작한다. 의뢰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바람이나 기도같은 것에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지 않을까... 나는 말이야, 그 여자아이의 능력이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받아 세상에 전하는,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지.” (p. 135-136)

 

히나는 맑음 소녀의 일을 맡으며 자신의 삶을 기뻐하고 긍지를 갖게 된다.

 

불가사의한 일체감이 온몸을 채웠다. 나의 경계가 세상으로 녹아들었다. 자신은 바람이자 물이고, 비는 사고이자 마음이었다. 나는 기도이자 메아리였고 나는 나를 둘러싼 공기였다. 기묘한 행복과 간절함이 온몸에 퍼졌다.” (p.142)

 

사람들의 행복과 바람을 위하여 히나는 날씨가 맑아지길 기도하는 무녀가 되어 호다카와 의뢰들을 수행해 나간다.

 

특히, 진구가이엔 불꽃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게 날씨를 바꾼 히나는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진심으로 이 일에 감격하고, 호다카에게 고마워한다. 호다카는 생각한다.

 

날씨는 참 신기하다, 나는 생각했다. 그저 하늘의 상태일 뿐인데 이렇게나 사람들의 감정이 움직이다니. 히나 씨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다. (p. 145)

 

하지만 날씨의 무녀는 스스로가 제물이 된다는 슬픈 운명을 떠안고 있었다. 하늘과 사람을 잇는 가느다란 실인 무녀는 인간의 간절한 소원을 받아 하늘에 전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목숨으로 값을 치루어야 했다.

 

진실을 마주하면서 두 소년 소녀는 절박해진다. 함께하는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한 것이다.

 

만약 신이 계신다면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더 필요한 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그 무엇도 더 주지 마시고 그 무엇도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신이시여. 제발 이렇게 빕니다.

우리를 조금만 더 이대로 있게 해 주세요. (226)“

 

이 대목이 영화에도 음악과 함께 흐르는데, 눈물이 났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가난하고 연약한 소년 소녀들이 이제야 서로를 만나 구원 받았는데 그것조차 허락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팠다.

 

히나는 묻는다. “이 비가 그쳤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녀는 사라진다.

 

호다카는 사랑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믿으며 그녀를 찾아 뛰어 나간다.

 

당신이 내게 준 것은, 그게 희망이든 동경이든 인연이든, 어쨌든 그것은 이전의 내게는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 당신이 준 용기가 지금 나를 이렇게 달리게 하고 있었다.” (p. 280)

 

 

가시 철조망에 얼굴이 찔리고 위험한 선로를 내달리고 경찰들의 포위를 뚫으면서까지 호다카는 그녀를 찾아야만 했다.

 

이제는 그녀 자신을 위해 기도하도록, 함께 살아가도록, 만들어야만 했기에.

 

<날씨의 아이>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품고 있다. 신카이 감독 초청 특별 상영회 때는 감독님이 샤이니의 종현을 언급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희생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체주의가 강한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도 보인다. 연약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힘과 용기도 보인다. 원래 세상은 이런 것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따뜻함도 보인다.

 

소설에는 영화에는 다루지 않은 성인들, 호다카의 말에 의하면 공평한 어른들인 나쓰미나 스가의 내면이 좀 더 다뤄져서 흥미로웠다. 스가는 마흔 살이 넘은 중년으로 세상의 이치를 이미 알고 살아가는 영민한 인간이다. 그는 무엇이 소중한지 알고 있지만 순서를 바꾸지 못하는 별수 없는 어른. 그러나 호다카라는 소년을 만나며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순수한 양심을 깨우며 다시 한 번 맥동한다.

 

나쓰미는 현재 일본 청년을 대변한다. 취업을 앞두고 있으나 사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 그녀도 호다카를 만나며 소년이 보여주는 용기와 열정에 도전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소년, 내가 먼저 어른이 되어 있을게. 너와 히나가 동경해 마지않는 어른이. 아아, 빨리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어른이. 엄청나게 멋진, 케이 짱 같은 사람은 성에 차지도 않을, 아직 아무도 본 적 없는 슈퍼 어른이. 그러니까 너희는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해.” (p. 274)

 

비단 나쓰미뿐일까.

 

나 또한 호다카와 히나에게서 위로받았다. 그들로 인해 극장에서 펑펑 흘린 눈물은 꼭 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서, 또 이 미쳐버린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비만 내리는 미래의 세상에 두려워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할 수 있길 위해서.

 

그럼에도 이 세상은 여전히 근사하고 빛으로 가득해 있다.

 

이것이 날씨의 아이가 우리에게 전한 희망의 일기예보다.

    

 

 

    

 

    

만약 신이 계신다면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더 필요한 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그 무엇도 더 주지 마시고 그 무엇도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신이시여. 제발 이렇게 빕니다.
우리를 조금만 더 이대로 있게 해 주세요. (p. 226)

소년, 내가 먼저 어른이 되어 있을게. 너와 히나가 동경해 마지않는 어른이. 아아, 빨리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어른이. 엄청나게 멋진, 케이 짱 같은 사람은 성에 차지도 않을, 아직 아무도 본 적 없는 슈퍼 어른이. 그러니까 너희는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해. (p. 274)

당신이 내게 준 것은, 그게 희망이든 동경이든 인연이든, 어쨌든 그것은 이전의 내게는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 당신이 준 용기가 지금 나를 이렇게 달리게 하고 있었다. (p.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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