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이 간지러웠다. 귀후비개를 꺼내려고 침대 옆 탁상의 서랍을 열었다가 텅빈 서랍을 보고는 아차 싶었다. 지난 29일에 한국에 가기 위해 짐을 모두 다 쌓은 상태였으니 내 짐은 모조리 여행용 가방안에 들어있을 터였다. 비행기를 놓쳐 결국 택시비만 500페소 넘게 날리고 집에 돌아오긴 했지만 6일이라는 시간을 위해 짐을 모두 풀 수도 없는 일이니 집구석은 처음 이사왔을 때보다도 더 썰렁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6일 가량이나 더 지내야 하는데 생활하고 옷도 갈아입고 씻기도 해야하므로 여행가방을 고스란히 둘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황해서 여행가방을 반쯤 열어놓은 채 필요한 게 있을때마다 꺼내서 사용하고 있었다. 집은 횡하면서도 엉망이었고 짐은 푸르지 않았지만 결국 다시 떠야하는 4일 오전에 모두 끄집어 내고 차곡이 꾸리는 짓거리를 또 해야할 지경이다. 어쨌든 귓속이 간지러워 미치겠으므로 여행가방을 조금 뒤적거렸다. 분명 작은 박스안에 넣었을텐데 박스가 한두개라야지 도대체 어느 박스에 넣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휴대폰 박스에는 한국 휴대폰 충전기와 필리핀 휴대폰 충전기가 있을테였고 신발박스에는 화장지를 비롯한 빨래비누나 기타 잡것들이 들어있을 것이었고 택배박스엔 수첩이나 전자사전 케이스가 들어있을 것이었고 전자모기향 박스 안엔 다량의 포스트잇과 딱풀 같은 것들이 들어있을 것이었다. 휴대폰 박스는 없는게 분명하니 제껴두고라도 비행기를 타러 다시 가기 이틀전에 귀후비개를 찾자고 저 가방을 뒤집어 엎어 박스들을 모두 찾아 끄집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고막근처의 간지로움 때문에 오른쪽 손가락 신경세포까지 자극받아 상당히 예민해진 지금 귀라도 파야 조금 다시 정신을 차리고 멀쩡한 기분으로 하던 일을 마무리 질 수 있으니 그냥 귀를 놔둘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스물세살때 고막이 잠깐 맛이 갔던 이후로는 가끔 몸상태가 안좋을때 귀로 인해 상당히 고통을 겪는다. 비행기 내릴 때 가끔 고막이 찢어지는 고통에 울어야만 한다거나 몸이 너무 피곤할 때 밥을 먹거나 뭔가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오른쪽 귓구녕을 송곳으로 꾹꾹 찌르는 아픔에 손을 놔야 한다거나 지금처럼 이렇게 귀가 간지로운게 그냥 간지로운 수준을 넘어서 오른쪽 상반신까지 여파가 오는 경우다) 하는 수 없이 오른쪽 새끼 손가락으로 오른쪽 귓구녕을 막고 나머지 한 손으로 여행용 가방을 뒤적뒤적 하였다. 결론은 귀후비개는 신발가방 안에 들어있을텐데 그건 이미 배편으로 29일에 한국으로 보내버렸다는 점이었다. 아 제길 젠장 왜 비행기를 놓쳐서 이렇게 어설픈 상황으로 어설프게 지내면서 시간과 감정과 돈과 모든 것을 예정보다 더 소비해야 하는지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화가 나는데 얘기할 사람이 없었고 설령 얘기할 누군가 있다고 해도 남는건 깊은 허망감과 세상엔 나 혼자라는 점과 얘기할 건덕지도 안되는 사소한 귓구녕 간지러운 소리이므로 다시 이 곳을 찾았다. 그동안 내가 잃어갔던 것은 내 공간이었으며 내게 필요한 것 역시 나만의 공간이었던 것을 깨달은 이후로 이곳에 도메인을 부여하고 조금씩 자취를 만들 채비를 하고 있다. 솔직히 돌라디오를 부쉰 이후에는 내가 갈 곳이 없었다. 가게는 물론 내가 가는 곳이고 가야하는 곳이지만 내가 그곳에선 공인인데다가 정작 내 스트레스의 절반은 그 곳 인간들 때문인데 그 곳에다 그네들 얘기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돌라디오도 가게 애들이 어떻게 저렇게 넘어 넘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나중엔 내 스스로에게 유일하게 솔직하게 쓰고 표현할 수 있는 내 구멍이 막혀버려 또 인간들 신경써야 하고 그래서 결국은 없느니만 못한꼴이 되고 그래서 삭제해버렸지만 말이다. 어려서부터 양쪽 맏인데다가 내 자신이란걸 의식하게 된 이후로는 항상 무언가를 운영한 탓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쫒으면서도 그 안에서 참고 나를 양보하고 하고 싶은 데로 못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런게 잘못되었다거나 회의스럽다는 건 아니다. 내가 운영자의 위치일때는 운영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감수해야 하는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운영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게 나만의 공간은 필요하다. 그들은 알까, 그들의 그 작은 호기심들과 나를 알고 싶은 그 작은 충동들 하나하나가, 그네들 각기 하나하나가 내 입장에서는 무수한 사람들이 되고, 그네들의 나를 좀 더 알고싶은 욕구로 인한 개인적인 공간까지의 침해에 내 숨통이 점점 막혀간다는 사실을. 적당선은 고마움이지만 너무 정도가 심해지면 나는 설 곳이 없어진다. 그동안은 개인홈페이지도 만들고 싶은걸 그러면 가게에 너무 소홀해 질 것 같아서 계속 미루었는데 이젠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싶다. 내가 살아야 뭘 운영을 하던 뭘 하던 하는데 서로 좋자고 시작한 일이 왜 나의 맹목적인 희생으로 변화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받아처먹을 줄만 알고 받은 거 절반만큼도 줄 줄 모르는 그것들에게 정내미 떨어져 그곳을 위해 나의 중요한 여러 부분들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 더이상.

 

아, 주저리 거리는 동안 면봉을 찾았다. 아쉬우나마 저걸로 귀를 후비고 하던 작업이나 마저 해야겠다. 글을 쓰다보면 머릿속이 정리되고 복잡한 것들이 해결되는 걸 보면 역시 나란 녀석은 죽으나 사나 뭐가 되나 안되나 어쨌든 글이란 것을 끄적이며 살아야 하나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