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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 6
김은정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사실, 김은정이란 작가를 잘 알지 못했다. 순정도 그럭저럭 꿰는 편이고, 학원 무림물은 장담컨대 열 개중 여덟 개는 읽었고 나머지 두개 중 하나는 내가 못 읽은 것, 또 하나는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보다가 접은 것이다. 유혈이 낭자한, 칼부림에 피바다가 일상인 사무라이 물이나 무협물도 웬만하면 다 봤다고 자부하던 나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김은정이란 작가의 이름은 생각이 나질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 나는 이 작가가 신인인줄 알았다. 그리고, 큰 망신을 당했다. 그렇게 만화를 봤으면서, 어떻게 아직까지 이 작품을 읽지 않았냐고 말이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싸쥐고 바로 서점으로 달렸다. 빌려봐도 좋았을 것을,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사버렸다고 순간 후회했으나, 여섯 권을 두시간에 돌파한 지금, 가끔은 정신이 나가도 좋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마디로, 이건 대단한 만화였다. 지금까지 이렇게나 개그라는 장르에 충실했던, 이렇게나 자연스런 재미를 무더기로 뿌려대는 만화를 접하질 못했다. 대부분의 재미있는 코믹 만화라는 것은, 짜여진 스토리 안에서 재미있는 컷이나 대사를 사용한다던가, 혹은 그 스토리 자체가 재미있는 것이었는데 아스피린은 그게 아니다.
기본적인 스토리 자체를 조금 비추기는 했지만, 아직 그 가닥이 다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미지인 부분이 더 많지만 지금까지 나와있는 스토리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다만, 일관성이 좀 떨어진다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하지만 막대한 분량의 재미 앞에서 그런 작은 것은 그야말로 모래 속에서 바늘 찾기와 같이 느껴진다. 한 컷 한 컷 떼어내도 폭소 연발이고, 대사 한마디씩을 떼어내도 그대로 코미디 대본이다. 철저하고도 처절하게 웃겨준달까?
게다가 작가의 깔끔한 그림채도 만화의 인기에 한 몫 한다. 대개 소년 만화에 연재되는 만화들 중에는 뭔가 잘 구분되지 않는 그림채도 껴 있는데, 이 만화 아스피린은 그야말로 깔끔 그 자체다. 소년 만화로 구분되지만 소녀들에게도 충분히 어필되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미친듯이 웃기는 스토리와 깔끔한 그림채 역시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바로 캐릭터이다. 아스피린은 주요캐릭터 네명에 주연만큼이나 화려한 몇몇 조연을 축으로 삼는다. 온달이라는 이름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멍청함을 자랑하지만 남의 주머니 따는 솜씨와 돈 계산만큼은 특급을 자랑하는 온달. '걸지다'는 만화 속 대사처럼, 치마만 둘렀다 하면 바로 작업모드로 들어서는, 그러나 알고 보면 최강이라는 호칭을 붙여도 아깝지 않을 오만 불손한 해모수. 성별도 구분되지 않는 주제에 화면발과 옷발에만 신경 쓰는, 하지만 알고 보면 엄청난 마력과 정령술사의 기질이 출중한 데이빗.
이름 그대로 삼손과 같은 힘을 자랑하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며 '나이스 바디'라 외치는 엉터리 수녀 삼손. 화려하다 못해 알 수 없는 광채까지 뿌려대는 이 대단한 주연군단과 잔머리의 황제 단군, 잘못 걸리면 우울해 지는 평강, 애는 좀 덜떨어지지만 얼굴은 아이돌인 아돌등 주연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막강한 조연군단을 이끌고 이 만화는 끝없는 유쾌함과 폭소의 나락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외면하고 싶은 유혹의 손이었지만, 그 유혹의 손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결코 뿌리칠 수가 없는..! 아스피린이 먹고 싶을 만큼 머리가 아픈 사람이 있다면 이 책 아스피린을 던져주겠다. 울적한 고민 따위는 이 책을 여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