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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1
이시키 마코토 지음, 유은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터넷에서 만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고 읽게된 책이다. 취향이 비슷하고, 나름의 만화 보는 눈이 정확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서 굳게 믿었던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었다. 책은, 기대를 꺾지 않을 만큼, 아니 수작이라고 까지 평가하게 하는 그런 재미와 감동과 그리고 뭔지 모를 대단함이 숨어있었다.
이찌노세 카이는, 창녀의 아들이다. 그 창녀촌은 마을과는 좀 분리되어 있는데, 숲의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창녀촌을 비롯하여 그렇고 그런 3류 인생, 아니 5류 인생들이 모여있는 '숲의 가장자리'출신인 카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창녀의 아들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자란다. 아마미아 슈우헤이는 카이의 유일한 친구이며 카이의 라이벌이기도 하다. 카이와는 달리 아주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아들로서 나름의 '명문'과도 같은 '유복'한 집에서 성장한, 도련님과도 같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피아노를 친다.
숲에 버려져 있던 낡은 그랜드 피아노를 치는 카이는, 피아노를 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삭히기도 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비록, 슈우헤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악보도 볼 줄 몰랐지만 말이다. 슈우헤이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피아노를 친다. 뭐든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감정으로 악보를 해석해내는 카이와는 달리 슈우헤이는 악보에 정직하다. 정확한 음과 정확한 박자로 악보를 있는 그대로 읽어나간다. 여기까지, 간단한 설명이지만 캐릭터의 특징을 읽어내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카이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이고, 이와 비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슈우헤이는 분명 노력으로 실력을 쌓아올린, 노력의 '천재'라는 것. 흡사 모차르트와 그를 질투하면서도 그의 피아노를 사랑했던 살리에르를 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영화 아마데우스와는 달리, 여기에서의 모차르트 - 카이는 절망적인 상황을 아주 여러 번 맛본다.
태어나는 환경부터 시작하여 그 모든 것이. '고난'을 이겨내며 성장해 가는 카이와는 달리, 슈우헤이는 '고뇌'를 이겨내며 성장한다. 카이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과 질투, 그리고 자신의 피아노에 대한 애정과 음악에 대한 열정 등, 그 모든 것에서 고뇌를 느끼는 슈우헤이는 그러나 카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으로 삼는다. 그 모든 것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로부터 5년 - 이제는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두 사람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벌써 9권을 읽었지만, 나는 아직도 이 책을 들춰 볼 때면 늘 지금 시작하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성장이 아직도 한참인 것처럼 이 만화 역시 아직도 한참이기 때문이다.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연들 역시, 두 주인공의 빛을 반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조금씩 빛을 내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흔해 빠진 '재능 있는 꼬마의 성장만화'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때로는, 그저 생각하고 듣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유령의 소리라고 생각했던, 그 숲의 피아노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감동을 눈물로 만들어 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