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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대학에 입학했지만 생활은 고등학교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지루했는지도 모르겠다. 갓 입학한 새내기가 자발적으로 중앙도서관을 찾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별 다른 목적 없이 갔었기 때문에 여기 저기 배회하며 돌아다니다, 정말 우연히 일본문학이 꽂혀있는 책장 앞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왔던 작가의 이름, 요시모토 바나나. 바나나라는 작가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었지만 그 책은 하나도 읽지 않았었다. 왠지 모르게, 유명세를 타는 작가나 작품을 피하는 알지 못할 버릇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날은 이상할 만큼 바나나라는 이름에 신경이 쓰이는 바람에 가장 짧고도 작은 책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이 책 <하드보일드 하드 럭>이었다.
책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혹여나 내가 걱정했던 것처럼 책이 나와 맞지 않는다면, 되도록 짧은 책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번 펼친 책은, 여하튼 끝까지 읽어야 하는 성격이니까. 책은 두개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는데 첫 번째 이야기의 제목이 '하드보일드'였고 두 번째 이야기의 제목이 '하드럭'이었다. 담겨있는 소설의 제목 두 개를 붙여서 만들어낸 책의 제목. 작가의 필명만큼이나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하드보일드'는, 하룻밤에 있었던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하룻밤 안에 지구를 구한다든지 운명이 바뀌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밤에 가까운 저녁부터 그 다음날 아침나절까지의 이야기. 여행을 위해 찾은 낮선 마을에서 떠올리게 되는 옛 연인, 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옛 사람에 대해 떠올리게 되는 생각들과 그에 적당히 어울리는 기묘한 분위기로 채워진 이야기다. 기묘한 분위기라고 했지만 그것은 일본 영화 '기묘한 이야기'에서 주는 미스터리한 그런 것이 아니다. 바나나의 문체와 아주 작고 별 것 아닌 것들이 풍기는 그런 것이다.
'하드럭'은 그 상황이 특이하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언니를 대하는 나의 마음 혹은 나의 상황에 대한 것이지만, 소재의 음울함이 그대로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바나나 소설의 특징이라 할 만한 '따뜻한 시선'이 여기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처음 접해본 바나나의 소설이었는데, 바나나 소설의 매력을 단편적이고 조금 강하게 맛본 느낌이라 내 선택에 자연스레 박수를 쳐주었다. 아마, 이제 슬슬 바나나에 빠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