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해도 되었고. 오래간만에 집에 와서

옛 짐들을 정리하다보니. 예전에 썼던 일기장 뭉치가 보였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도 쓸 것이 많았던지. 몇 년 동안 쓴 것들이기는 하지만

꽤 두툼한- 몇 권의 노트에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더랬다.

몇 날 며칠을, 또 몇 밤을 그 일기장과 함께 하며, 그때의 나와 마주했다.

분명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어른스러운지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삶에, 사랑에 부딪치며 가슴아파했던 내가 거기 있었다.

그때는 사랑이 아니라고, 난 아직 인생을 모른다고 강변했지만

어쩌면 난, 그때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되고 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아니, 5년 전.

한창 교회를 다니고 있었던 나는,

새해를 맞아 기도문 아닌 기도문을 일기장에 써놓았더랬다.

'새해에는 / 이렇게 하게 하옵소서..' 로 시작하는, '자녀를 위한 기도문' 류의 아류라면 아류인

그 기도문은 일기장을 덮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도 사라져 실천한 적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문구는 꽤나 마음에 들었던지 이곳저곳에 기도문을 적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이 지나 그 기도문을 보니

새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 기도문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한번쯤은 시련을 주시어 /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닫게 해 주시옵고..."

 

내게 시련을 달라고. 감히 신에게.

내게 시련을 달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했다니

어린 날의 객기라고 보기엔, 너무도 당당해서.

지금의 내가, 어느 새 훌쩍 커버린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나는,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감히, 시련을 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내가,

힘들다고, 괴롭다고, 눈물난다고 칭얼대기만 하는 내가,

날이 갈수록 점점 유약해져만 가는 듯한 내가.

새삼, 새삼 부끄럽다.

내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산다는 것은, 죄를 쌓아가는 것이로구나.

 

 

#2.

내 동생님은, 나와 한 살 차이가 난다.

그 동생님은 내일, 소위 일류대학이라 불리는 모 대학교에 면접을 보러 가셨다.

나름 거사라면 거사이므로, 말을 아껴야 할 듯 하여

내일, 동생님이 면접을 끝내고 나서 묻어둔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이 일이 얼마나 내게 중요한 이야기인지는,

내가 그동안 어떠한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입에도 대지 않던, 과자와 아이스크림의 유혹에 넘어가려했다는것으로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

사랑하는데, 자존심이라는게, 밀고당기기라는게, 그때는 하나도 필요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복잡한건지

사랑한다면, 언제든 말걸어도 되는거 아닌가

왜, 여자는 먼저 말걸면 안된다고, 도도하게 굴어야 한다고.

누가 정해놓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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