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창비아동문고 222
김남중 지음, 이형진 그림 / 창비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아이들 책을 읽을 때면 제일 신경쓰이는 게 과연 '아이들 시선'을 맞추고 있느냐다. 너무 어른스레 굴거나, 너무 도덕적으로 굴거나, 아이 답지 않음을 혹은 표현을 보여줄 때면 슬그머니 글을 쓴 '어른' - 시커무레 볕에 탄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며 원고지(혹은 모니터)에 글을 적는(또는 워드를 치는) 어른이 옅보이는 것이다. 그럴 때면 쩝쩝 입맛을 다시며 읽을 맛이 떨어져 슬그머니 책을 밀어넣게 된다. 물론 이 책은 그렇지 않으니 리뷰를 쓰고 있다만.

물병을 들고 끙끙대는 조그만 '계집아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여자아이의 삽화가 인상적인 이 동화책은 엄연한 주인공인 사람을 제쳐두고 존재감은 동물들에게 있다. 오리니 칠면조니 새를 키우는 집의 아이나 중풍 걸린 늙은 진돗개를 돌봐야 하는 아이나, 투덜거림과 무안함에 벌개지고 있으나 아이들의 감정을 따라가면 종착점은 동물이다.

'애완동물'이란 표현대신 '동거동물'이란 표현을 쓰자고 하는데 고기를 취할 목적으로 키우는 게 아닌 이상 살아있는 생명체를 가정에 들일 때는 분명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귀여운 새끼일 때는 어화둥둥이다가 반년도 안되어 훌쩍 커버리면 귀찮다고 에비에비, 버림받은 동물의 마음을 누가 알까. 사람들 감정을 대입시켜 생각하지 말라고도 하지만 귀엽다고 자꾸 만질 때 분명히 귀찮아하며 피하는 어린 강아지를 봐라.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한 대 때리려 손을 쳐들면 퍼득 놀라서 도망치는 닭을 봐라. 딴 소리로 빠졌지만 아직은 남을 위한 배려를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 시선으로 쓰여진 동물 이야기.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게 해달라는 둥 외동이가 많은 요즘의 아이들이 졸라댈 때, 혹은 기껏 사준 강아지를 나 몰라라 하는 아이에게 내밀어줄만한 책. 그리고 강아지는 사줬지만 아이가 돌보든 말든 관심이 없는 부모에게 내밀만한 책. 그도 아니면 나처럼 슬금 슬금 조카 읽어주려 아이들 책을 뒤적이는 사람. 그나저나 개인적으론 표지 그림이 썩 내키질 않는다. 물병을 들고 끙끙대는 계집아이를 표지로 내세웠다면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왔을 테건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들키고 싶은 비밀 신나는 책읽기 5
황선미 지음, 김유대 그림 / 창비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이런 경험 한번씩들은 있었을 것이다. 구멍가게에서 알사탕을 하나 슬쩍 집어들었거나 부모님 지갑에서 슬쩍 지폐 한 장 꺼내들었거나 아니면 언니 오빠 돼지저금통 입구를 억지로 벌려 동전을 꺼냈거나. 그게 나쁜 일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번으로 그치지 못하고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걸려서 오지게도 맞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의미있다. 누구나 한번쯤 어린 시절 겪었을 일을 부모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갈팡질팡하는 마음, 자신이 잘못하고서도 종내는 주위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마음, 그리고 가족간의 미묘한 위치와 관계들. 막상 내 아이에게 생기면 하늘이 노래지는 듯 하고 눈 앞이 캄캄하니 아득해져 오는 일이다. 한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가벼이 했다가 버릇이 들면 어쩌나도 싶고, 심하게 꾸짖었다가 아이가 가슴에 멍을 새기면 어쩌나도 싶을 일이다.

이 책은 가족이 함께 읽으면 정말 좋을 거라 생각한다. 부모는 부모대로 놀란 마음을 추스리며 '쟤가 뭐가 될라 저러나'라는 넋두리같은 한숨을 거둘 수 있을 거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한 듯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며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부모님께 향한 괜한 원망도 가라앉을 거다. 설령 이런 경험이 없다해도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을 탐해본 마음이 있다면 이 책이 아이의 마음에 들 것이다.

책의 서문부터 마음에 들어 읽기도 전에 마음에 들어버린 책.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조카와 방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도란도란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귀여운 조카가 어떤 눈을 할런지, 마음에 응어리가 있다면, 그늘이 남아있다면, 조카가 털어버리고 밝은 마음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에서 영업중 X - 번외편
이시영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이시영은 아마츄어 동호회 시절부터 좋아했는데 아마츄어 때의 파워로도 프로라는 이질적인 세계를 뚫기 어려워하던 초기의 버거움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성공(?)이 독자로서 기쁘다. 나 외에 이 작가를 알아보고 좋아해주고 즐겨주는 독자들이 많아져서 작가가 기쁘게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즐겁다. 본편의 많은 팬들이 많은 리뷰를 올렸을테니 그건 접고, 개인적으로 이번 번외편을 보고 느꼈던 점을 짧게. (과연 짧을까?;;)

기다렸던 책이라 신나서 래핑을 뜯고 펼쳤는데 그림을 본 내 감상은 '어.....? 얘네들... 좀 얼굴이 시니컬해졌...잔하?' 였다. 원래 약간 건들건들하니 후카시란 후카시는 있는데로 다 잡으면서 목에 힘 팍팍 주고 어깨에 힘 팍팍 주고 눈에서 레이저빔을 쾅쾅 쏴대는 캐릭터들이긴 했다. 캐릭터들이 변했다는 게 아니고, 작가의 그림체가 변해서 전체적으로 어떤 인물을 그리던 눈가와 입매가 시니컬해졌다는 거다. 왕단순빵의 타오조차도 백치미에 가까운 눈매로 슬그머니 변하면서- 백치미 특유의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나 자신의 것도 아냐'라는 무표정이 되어 있다. 작가의 그림체가 변하여, 이전보다 턱선이 더 날카로워진 것이, 아이들이 단체로 극기훈련이라도 한 양 원래보다 -4kg 가량 감량된 얼굴선이다.

시니컬의 최고는 원래 포커페이스라는 오리지널 린이다. 번외편에서의 오리지널 린은 그야말로 냉소와 독기와 황폐함과... 등등 가져다 붙일 단어들은 다 끌어모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보는 나야 시니컬한 (마른)미청년이 즐겁지만 갑작스레 변한 작가의 그림체가 의아하다. 갑자기 이시영님, 취향이 바뀌셨습니까?;;; 인기절정이신 분이 인생사 아픈 일 겪으신 듯 합니다;;;

길고 긴 연재를 마치고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번외편까지 내시게 된 걸,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앞으로도 칼있으마 만땅인 캐릭터들을 많이 많이 선보여서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시고 어느새 입가에 침이 고여 스읍- 닥게끔 해주시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의 마지막 장미 - 단편
후지 타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이 꽃이 이 여름의 마지막 장미라면, 나는 이걸 나 자신에게 보내겠어. 기꺼이 선물하는 나를 보며 너는 분명 웃어줄 거야.

 

그러니까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게 어느새 10년이 다 되어간다. 마지못해 만나야 하는 거래처 사람을 대하듯 조금 뻣뻣하고 어정쩡하니 이 작가의 다른 만화들을 봐왔었다. 무언가 마음에 걸려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Y물이라서가 아니라, 인물 내면이 드러났을 때 숨막힘이 싫었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이 작가가 나를 불편하게 만드니 하나같이 싫었다. 하지만 종이 한장 차이라 하나, 10년이 채 안되어 어느 순간 그의 작품들이 불편하지 않아졌다.

동성애 코드를 뺀 이 만화를 읽고나니 오히려 단순해졌다, 내가 이 작가를 격렬하게 싫어하는 것도 아니면서 내내 불편해하고 있었더란 것. 하지만 이젠 좋아할 수 있다는 것.

장미는 값에 따라 아름다움에도 차이가 난다. 1송이에 몇 만원을 호가하는 장미는 조심스레 호흡을 가다듬어야할 정도로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그리고 길가의 다발에 2천원 하는 장미는 일견 조악하면서도 앙증맞은 구석이 있어 예쁘다. 꽃 중 꽃인 장미라선지 좋아하는 대상에게 바칠 때면 여지없이 등장한다.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도 있잖은가. 거기서 예쁘다 해도 백합이나 아이리스나 라일락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니 여름의 마지막 꽃이라면 장미.

아니, 물론 이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켜는 바이올린 곡 제목이다마는, 언듯 작가가 이 곡명을 듣는 순간 그의 머리 속을 꿰뚫듯 파고든 영상이 잡히지 않는가. 무더운 여름 매혹적인 짙은 장미향, 그래 그리고 그 장미향 짙은 여름날 오후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만큼 싱그러운 소년들의 이야기,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이올린을 켜는, 음악에 대한 열정에 들떠있는 순진무구한 소년과 그의 친구이자 바이올린 제작을 공부하는 소년. 그리고 비밀을 감추고 있는 형의 친구와 엄격한 바이올린 선생님, 그들의 비밀을 들려주는 음악잡지 기자와 베일에 가려진 죽은 형.

연주는 못하지만 피아노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 바이올린이란 악기의 매력은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싱그러운 소년시대 이야기라면 풋풋한 눈물이 묻어있더라도 끌리기 마련이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아니 사실 무엇에 대한 이야기라도 결국 사람 이야기가 되듯이, 이 만화 역시 사람 이야기이다. 그리고 재능을 갈구하며 열정을, 마치 장미꽃을 바치듯 이상을 향해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한 권이란 짧다면 짧은 분량 속에 지나쳐온 아스라한 10대의 회상을 잠시 가져보는 것도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들꽃 이야기 1
박연 지음 / 허브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중학생 때 '르네상스'라는 한국 최초의 순정만화 전문 월간지를 접하고 만화에 빠져 근방의 만화가게란 만화가게는 다 훑고 다녔었다. 그때의 순례가 가끔 꿈에 나와 그리움에 몸부림치게 되곤 한다. 김진의 초기작 '내 이름은 데이빗'이나 두 권짜리 '짝궁'이나, 도통 애장판이 안나와 눈물짓게 만드는 '1815'도 그렇고. 이정애가 원고를 태워버렸다던 데뷔작 '헤르티아의 일곱기둥'도 여기서 보았고 김미림의 '르나르에게'라는 신선한 작품도. 오경아의 '청회색의 파리'나 '최고의 친구',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도.

...아, 쓰다보니 다시 그리움에 몸부림을 치게 되는고나. 한바탕 몸부림!

이때 만났던 작가 중 한명이 박연이었다. '세실의 장원'을 비롯해 제목도 잘 기억안나는 초기작들을 모두 섭렵했었다. 우울한 분위기, 지독한 성장통의 이야기를 짓던 작가가 '르네상스'에선 '발바닥만큼 한 이야기'라는 소박하지만 탐스럽게 주렁주렁 알이 달린 감자같은 이야길 지어냈으니, 그 엄청난 거리감이 박연이란 작가에게 애정을 갖게 만들었다.

'르네상스'에 실린 작가 인터뷰를 보노라면 이야기꾼으로서 변화된 이유와 과정이 따듯하게 나온다. 서울 생활에 치이고 작가로서의 고민에도 치여 고향에 돌아와 그간 지나쳤던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변화되었노라고. 자연으로 치유받았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작가로서 그걸 소화해내기란, 그것도 박연처럼 탐스런 감자알같은 작품으로 소화해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발바닥만큼 한 이야기'나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등등의 작품은 자연 자체를 소재로 한 것은 아니다. 도심에서 약간 비껴난, 혹은 도심 속에서 어느새 이야기의 소재로 다뤄지지 않게된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소재였다. 하지만 그 속엔 분명 검고 보드라운 흙냄세가 얼핏 묻어난다. 식물이 자라나기 충분한 영양과 산소가 가득차있는 검은 흙. 그 흙을 바탕으로 자라날 것이 꼭 장미여야할 필요는 없는 거다.

박연은 결국 '들꽃 이야기'를 통해 애정어린 자연 이야길 풀어놓았다. 연재하고 있는 지면 '허브 HERB'에 꾸준히 실린 것이 어느새 한권 분량이 되었다. 애초에 발행일은 작년 10월이었으나 허브는 보다 내실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이 준비해서 지금의 책을 냈다. 용케 이 책을 구한 뒤 온라인 서점에선 일시품절이 된 걸 보니 많은 독자들이 제 때에 이 책을 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품절이 풀리는데로 꼭 구해보셨으면 한다.

연재될 때에는 없던, 작가가 손수 찍은 어여쁜 들꽃 사진이 실려있고, 컬러링 작업을 해서 흑백원고이던 잡지 때와 달라졌다. 작가가 직접 조근조근 적어둔 각 꽃과 풀의 이름 및 옛 사람들의 활용법들도 재밌다. 물론 원고 자체의 재미도 있다. 아웅다웅하는 단비네 부모님들 이야긴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시골에 교사 발령이 난 남편이 집 앞 텃밭에 심은 수박이 풍년이라며 친구들을 죄 모아 퍼주자, 수박귀신인 부인이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펑펑 울어버린다. 남편이 어떻게 했을까? 한 개도 안남은 수박에 미안해서 옆집 수박을 몰래 서리해다 부인에게 바친다. 부인은 그런 줄도 모르고 남편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수박이라며 기뻐하는데... 노인들 밖에 남지 않은 마을은, 찾아오는 이웃들을 할머니 할아버지로 그리면서 슬그머니 묘사해두는 작가. 자연 이야기와 사람 이야기를 작가는 푹 고은 곰탕 마냥 끓여담았다.

요즘 선물하면 좋을 만화책들이 많이 나오는 중이라, 만화전도사를 꿈꾸는 나같은 독자에겐 선택의 폭이 넓다. 이 책은 결혼한 친구들이나 식물을 좋아하는 회사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좋다. 또 초등학교부터 중, 고등학교 사촌동생이나 조카에게 선물하기에도 좋다. 물론 내 몫의 한 권을 빼놓아선 안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