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 날씨만큼 변화무쌍한 중년의 마음을 보듬다
한귀은 지음 / 웨일북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불혹과 지천명


이 책은 중년을 살아가는 이들이 공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흔 살을 불혹이라고 하고 쉰 살을 지천명이라고 한다. 불혹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기도 하고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천명은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뜻이다.


과연 40살, 50살이 넘으면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고 하늘의 명, 뜻을 알고 살 수 있을까? 온갖 입에 담지도 못할 극악 무도한 짓을 저지르는 나이는 20~30대 보다는 40~50대가 더 많게 느껴진다. 또한 열정과 패기로 가득 찬 젊은 청춘의 시절이 보내고 중장년의 시절이 왔건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저자는 50을 몇 해 앞둔 국어국문과 교수이다. 자녀를 키우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듯 하다. 남편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워킹맘에 싱글맘인 듯 하다. 그녀가 지나온 세월 속에 느꼈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 그리고 본인이 즐겨 읽었던 책을 통한 생각들을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온 몸이 아파서 누워 있다가도 자녀가 하교시간이 오자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힘으로 밥상을 차려주는 모습을 통해 자신은 엄마의 새끼고, 아들은 내 새끼이며 늘 어미는 새끼를 챙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늙어가는 딸을 늙은 엄마가 챙긴다. 그 늙어가는 딸은 제 새끼만 겨우 챙긴다. 비정하게 들리지만 엄연한 현실임을 알려주는 이러한 문구들이 책 속에 여럿 숨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큰 공감과 위로를 불러 일으킨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놀다가 30을 전후하여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고 자녀를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소원해진다. 이럴 때 더욱더 치열하게 삶을 영위해야만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생각에 앞만 보고 질주하기 십상이다. 청춘이 사라지는 때는, 멋쩍은 얘기지만 성욕이 사라지는 시점이라고 한다. 저자가 즐겨 보는 티비 프로그램인 <불타는 청춘>에서는 40~50대 중년들이 나와서 한 데 어울려 노는 모습이 있다. 특별한 게임과 토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들이 살아온 소소한 이야기에 서로 귀 기울여주고 웃고 울고 즐기는 것이다. 그것을 보는 동년배의 중년들은 같이 웃고 울고 즐기고 있다.


최신 가요를 안 들은 지 너무 오래 되었고 이틀 밤을 세도 끄덕 없던 체력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불 같은 성격도 다 사라지고 말았다. 큰 꿈과 야망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적이 있던가 반문하게 되는 시기도 아마 40~50대 일 것이다. 


고생도 많이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인생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너무 많이 있다. 그것을 젊은 시절에는 머리로만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현실적으로 체감적으로 알게 된다. 살아보니 행복은 추구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어떤 행동이나 사건의 부산물이었다. 추구해야 할 것은 행복이 아니라 가치였다.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거나 했을 때 행복이 슬쩍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몇 년 전부터 유행 하는 미니멀 라이프에 동의하지만 물건을 무조건 버리거나 정리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각 물건마다 사연이 있고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 서른 중반은 커리어가 쌓이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기 시작하고, 젊음은 여전히 있어서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라고들 하지만, 그 시기를 견뎌본 사람은 안다. 바로 그 이유들 때문에 더 불안하다는 것을, 거기다 일상의 문제가 산재해 있을 때, 다시 말해 자신에게 부과되는 역할들이 하나씩 쌓이지만 아무도 자신을 똑바로 봐주지 않을 때 누군가의 도움은 절실해진다.


공부를 하면 행복하지 않으니까 공부를 안 하고 싶은데, 공부를 안 하면 더 불행하다고 느껴져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어 라고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는 저자의 말은 모든 이들로 공감을 하게 한다. 자신이 꿈 꾸던 일을 현재 하고 있는가? 자신의 일에 만족과 자부심을 느끼는가? 라는 질문을 중장년들에게는 던질 수 없다. 그들의 얼굴과 표정이 이미 답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을 움켜주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위치가 되어 버린 현실 속에서 이러한 질문은 어린아이의 한낱 공상 같은 느낌을 줄 수 밖에 없다.


직면해야 할 때 직면하는 것, 회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거기서 상처받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진짜 문제를 내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것, 그것이 진짜 삶을 살게 하는 길이다.


마흔 이후부터는 잃는 친구가 더 많은 법임을 알게 된다. 끊임없는 다양한 모임과 관계 속에서 친구는 새로 생기지 않는다. 비즈니스 관계만 늘어나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역시나 어린 시절 아무런 조건 없이 알게 되고 지내온 친구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친구 마저 시간의 흐름 속에, 혹은 자신의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인해 하나 둘 씩 잃게 된다. 저자 또한 생각해보면 강가에서 친구를 잃은 것도, 어떤 모임에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된 이유도 모두 말 때문이라고 하면서 한편으로 인연이 그립다고 한다. 다만 억지로 부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고 싶지가 않을 뿐이다. 친구는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사람이지만 만나지 못하더라도 친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진정한 친구가 몹시 그리워 지지만 앞으로 새로운 친구가 쉽게 생기지 못할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중장년 시기인 듯 하다.


이 책에서는 무엇이 되라, 혹은 어떻게 해라 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50을 앞에 둔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하소연 하듯 하고 있다. 인생은 정답도 없고 지름길도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고 옆을 쳐다보게 되고 앞만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평균 수명이 80세임을 감안 해서 불혹을 맞이 했다면 이미 인생의 50%는 산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과연 남은 50%는 어떠한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제는 덜 읽고 더 살기로 했다고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되는 나이가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는 나이가 마흔 살이라고 한다. 특별한 변화를 주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이임은 틀림이 없는 듯 하다.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틀린 것인 아닐 것이다. 여태껏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꼰대만 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은퇴를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이다. 40~50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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