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누가 빨갱이인가
이 책은 일제시대와 6.25전쟁 한가운데 있던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정찬우’는 실존 인물로써 1929년에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1970년까지 산 인물이다. 그는 북한 노동당 청년간부로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포로로 잡혀 10년간의 수용소, 감옥 생활을 겪은 실존인물로써 일대기를 그려내고 있다.
지방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나라 보수측은 북한을 압박하고 가장 큰 적으로 생각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진보측은 북한을 대화를 통해 협력이 가능한 대상으로 보기에 이 둘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햇볕정책에 대한 공과는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친일이라는 평가는 받는 보수쪽과 종북이라는 평가는 받는 진보쪽 이 둘 모두 정치에 무관심한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더욱더 정치공방이 지겹고 지치게 만드는 요인인 것 같다.
주인공인 정찬우는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여 평양여자고급중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재직 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 총장 딸이자 문학도인 허인숙과 약혼을 하기로 언약을 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북한 당의 일방적인 통보로 인해 남한으로 내려가 사상 교육을 하는 김일성 직통 교육위원으로 전쟁에 참여를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주인공의 비서인 이옥련, 운전사 윤성남, 김책의 비서였던 심영숙등이 있다. 이들은 차례대로 죽음을 맞이 하면서 더욱더 책은 전쟁과 포로에 대한 현실적인 사실을 부각 시켜 준다. 또한 북한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여서 남한 포로가 되어서 오히려 북한군을 매도 하는 마치 일제시대의 앞잡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통해 단순한 이념의 문제가 아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에 대해 조명을 하고 있다.
민간인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한 정찬우는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사상 강연을 하면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낙동강에서 전투가 치열해지고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중간에 퇴로가 막히면서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맞이 하게 된다. 그럴 때 운전사 윤성남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하고 참호 속에서 껴 안고 있는 커플을 즉각 사형 시킬려는 박창섭을 설득시켜서 살려주는 것이 계기가 되어 전애심의 도움을 여러 번 받기도 한다.
평양에서 김책 사령관에게 권총을 받았으나 한번도 쏜 적이 없는 그는 살상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전쟁 중이며 권총을 소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누굴 죽이거나 상해를 입힌 적도 없었다. 경상남북도를 담당하는 영남지방 교육위원으로 파견되어 진주까지 왔으나 인민군이 패주하는 바람에 어떠한 임무도 수행하지 못하고 도망 다니다 결국은 포로가 된다.
포로가 되어서 수용소에 가보니 그곳 간부는 대개 인민군 시절 군관이었던 이들이 맡았다. 공산주의에 가장 열성적이던 인민군 장교들이 포로수용소에 와서는 반대로 반공포로로서 사병 출신을 괴롭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는 친일파들이 부와 권세를 장악하고 미국의 식민지가 된 남한을 해방해야 하며 가난한 인민을 위한 새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자신의 연설이 틀렸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권총을 가지고 다녔어도 한번도 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처형 위기에 처한 이들을 여러 명 구해주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전면전이라는 최악의 수단을 선택한 평양의 권력자들을 저주하게 되었다고 해서 남한체제에 순응하려는 건 아니었다.
개전 3개월 만에 후퇴할 때 추풍령에서 유격전 문제로 언쟁하다가 다른 부대장들을 비겁자라고 비난하며 권총을 들고 설치던 사람이 바로 이봉춘이었다. 그는 조금만 수틀려도 아무에게나 반혁명분자니 기회주의자니 하며 비난하던 골수 공산주의자가 돌연 국군의 수족으로서 중앙포로수용소에서 감찰이라는 완장을 두르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60년 전과 지금과 다를 바가 없는 듯 하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모순적 모습으로 인해 결국은 선량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
포로에게조차 본인의 뜻을 물어보고 선택을 하게 하는 성중위를 보니 허가이가 전화로 호출해 일방적으로 임명장을 건네던 그날 아침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과 고위급 간부들조차 당 중앙의 한마디에 운명이 결정되는 사회가 더욱 싫어졌다. 이러한 그는 포로 수용소에서는 신임을 얻어 취사 반장이 되기도 하고 교화 위원으로 임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남한의 체제에 순응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해 10년을 구형 받고 형무소에 들어간다. 그곳에 들어가니 더욱더 심한 모략이 있을 뿐이었다. 간수들 중에는 친절하고 인간적인 사람도 있었지만 악질적이고 빨갱이로만 사람을 치부하는 무지막지한 간수로 인해 모진 고통을 감내 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주인공은 이남이나 이북이나 뭐가 서로 다른지 단순히 제도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같아서, 돈과 권력을 차지한 악마 같은 인간들에게 지배당할 뿐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소설로 인해 숨겨있었던 한 명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좋기 기회가 된 듯하다. 극좌에서 극우로 혹은 극우에서 극좌로 간 사람에 대해 너무나 쉽게 비난하고 질책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이전 경력과 언행이 현재의 그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님에도 용서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생각과 문화가 하루 빨리 자리 잡히기를 바랄 뿐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이념 논쟁으로 보수와 진보 대립이 아닌 정책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논쟁을 많이 보는 세상이 오길 바랄 뿐이다.
이 책의 내용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될 수 있는 시대가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