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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ㅣ 세계기독교고전 27
앤드류 머리 지음, 원광연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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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왕, 예수를 본 받자
이 책은 겸손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실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겸손(謙遜/謙巽)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겸손이라는 단어는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겸손이라는 좋은 뜻은 현재 착한 척, 혹은 호구 라는 이미지로 변질 되어 버린 듯 하다. 하지만 겸손을 실천하는 이들은 주변사람들을 감탄시키고 감동 시킨다.
기독교인과 교회가 세상과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사라지자 교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30~40년전만 해도 잘 곳이 없는 사람, 먹을 것이 없는 사람, 돈이 없는 사람이 쉽게 들어갈 수 있던 곳이 교회였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줬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 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사랑으로 받아줬던 교회에서 결국은 은촛대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잡혔지만 신부님은 자신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밝힌다. 이를 계기로 주인공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소설과 같은 영화와 같은 이야기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이름도 없이 눈물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무수한 성직자들이 존재하지만 몇몇 대형 교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면면을 보고 있자면 그들에게는 겸손이라는 단어 자체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몸이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자신의 아들에게 부당한 방법을 총 동원해서 물려주고 또한 더 낮은 자리로 가서 많은 이들을 섬기라고 직분이 있지만 그 직분을 위해서 매관매직을 하는 모습은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전통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 책의 중심 구설은 빌립보서 2장 5절~8절 말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특히 8절에 나온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겸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맹목적으로 참고 견디고 버티는 것을 떠올리기 쉽다. 이 책에서는 겸손이라는 개념부터 어떻게 적용해야 하며 왜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겸손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며 사람이 담당해야 할 첫째가는 의무이자 최고의 덕이다. 겸손은 모든 덕의 뿌리가 된다. 이러한 겸손을 상실한 상태를 교만이라고 한다. 교만은 모든 죄와 악의 뿌리이자 자기를 높이고 지옥의 문, 지옥의 저주이다.
성경에는 다양한 은혜가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시는 전적은 선물이다. 대표적인 은혜가 바로 구원이다. 하지만 겸손은 여러 가지 은혜나 덕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것의 뿌리다. 왜냐하면 오직 겸손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를 갖게 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행하시도록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겸손이란 우리가 하나님께 가져다 드리거나 혹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전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식이다. 그런 의식은 하나님이 과연 만유시라는 것을 바라볼 때에 생겨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유가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의식 가운데서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마치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엄마가 요리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칼질을 해서 도와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영화롭게 해 드리며 영원토록 그분으로 인해 즐거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자 삶의 태도이다. 하지만 신앙 생활을 오래 하고 자발적이고 기쁨이었던 여러 가지 행위들이 어느덧 남과 비교하고 마치 우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율법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면 그건 겸손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겸손이란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진정한 위치를 시인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합당한 지극히 높은 위치를 인정하며 그것을 그에게 돌려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분을 계속 시인하면서 인식하면서 살아야만 겸손의 삶을 유지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첫째가는 최고의 증표가 바로 겸손이다. 이러한 겸손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겸손을 소원해야 하고 겸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믿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겸손의 반대말로 이 책에 많이 나오는 단어는 바로 교만이다. 교만처럼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없고 그처럼 간교하여 우리의 눈에 감추어진 것이 없고 그것만큼 어렵고 위험한 것이 없다는 사실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속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의 교만 때문이다. 교만의 뿌리와 엄청난 힘은 우리의 내부에도 있고 외부에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된 하나님의 겸손이다. 그리스도의 삶의 뿌리를 소홀히 하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토록 연약하고 열매가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인간의 모든 명예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명예를 구하는 그런 겸손을 구해야 한다. 가장 낮은 자가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법이다. ‘마더 테레사’ 의 명언 중 ‘당신이 오늘 베푼 선행은 내일이면 사람들에게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선행을 베풀어라’ 가 있다. 이 말은 지금 헬조선 이라는 자조 섞인 말로 꿈과 희망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한 번쯤 생각해볼 말인 듯 하다.
교회의 가장 귀한 자리는 가장 겸손한 자에게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겸손은 성령에 충만하여 우리가 우리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가 우리 속에서 사실 때에 비로소 능력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은혜이다. 겸손이 없으면서도 진지하고도 적극적인 기독교 신앙의 모습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성직자를 비롯한 신앙인이라는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온갖 사회 활동을 통해 명망을 쌓고 주변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신앙생활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속에 겸손의 모습은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외형적인 가르침과 온갖 개인의 노력이 있다 해도 그것들이 교만을 정복하는 데에 혹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는 데에 얼마나 허약한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겸손하게 되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겸손으로 우리 속에 거하심으로써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 생활의 모습을 보면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은 질투나 투기를 느끼지 않는다. 가장 낮은 자가 되고, 가장 낮은 자로 취급 당하기를 즐거워하며, 예수님처럼 아무리 미천하고 아무리 미약한 자들에게라도 그들의 종이 되고, 돕는 자가 되며, 위로자가 되기만을 구하는 그런 거룩한 겸손이 없기 때문에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가짜 거룩의 중요한 특징은 겸손이 없다는 것이다. 겸손이란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신다는 것을 봄으로써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거룩한 사람은 동시에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보이는 겸손이야말로 우리 이웃들을 대하여 항상 겸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유일한 능력이다. 믿음과 겸손이 서로 뿌리가 같다. 참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참된 겸손도 있는 법이다. 자신에 대해 죽을 때에 비로소 겸손이 완전해지는 것이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겸손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봐야 한다. 겸손한 태도가 외부적인 것인지 자발적인 것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신앙인의 겸손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 드림으로써 보여주신 것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겸손인 것이다. 낮은 척, 착한 척, 순결한 척 하는 모습이 아닌 죽기까지 순종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겸손의 본이 되신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겸손을 실천해야 하는 수 많은 신앙인들과 겸손의 본질적인 의미를 알고 싶은 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인 듯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올린 CCM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의 왕’이라는 찬양이다. 그 찬양의 가사가 이 책의 모든 내용을 한 곡으로 요약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겸손의 왕 –천관웅-
왕 겸손의 왕
평범한 목수의 아들
주 종으로 오신
죄인을 섬긴 창조주
주의 손 거친 못이 찔렀고
주의 발 갈보리 오르셨네
모든 것 내어 주신 주님
우리의 발을 씻겼네
주가 싫어 거역한 우릴 위해 고통 당했네
무엇을 향한 사랑인지
무엇을 바란 희생인지
당신은 사랑에 눈 먼 주님
왕 겸손의 왕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신
주 종으로 오신
그 겸손 나 알기 원하네
주 허리 거절의 창이 찔렸고
주 음성 왜 날 버리셨나요
인간을 지은 하나님이 인간 손에 죽으셨네
주가 싫어 멸시한 우릴 위해 죽임 당했네
무엇을 위한 사랑인지 무엇을 바란 희생인지
당신은 사랑에 눈먼 주님
인상 깊은 구절들
『우리를 가장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가르쳐지지 않았습니다.』(22p)
『하나께서 베푸시는 생명은 그저 단 한 번에 주시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강력한 능력의 끊임없는 역사를 통하여 매 순간마다 계속해서 주시는 것입니다.』(2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