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같은 외출 미래의 고전 59
양인자 지음 / 푸른책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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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모습 그대로


이 책은 10대들의 세밀한 감정을 잘 나타낸 책이다. 총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다양한 아이들의 심리 묘사가 일품인 책이다. <진짜는 나쁘지 않았다> 두 집 살림을 하는 아빠로 인해서 폐인처럼 살아가는 엄마, 그리고 아이들에게 늘 거짓말을 하는 영주이야기, [쑥ː] 돈을 벌기 위해 양심을 팔지만 이내 다시금 양심의 소중함을 깨닫는 상진이이야기, <그날, 우리는> 5.18광주 사태를 목격한 정우 이야기, <가출 같은 외출> 식당을 하면서 무관심하다고 여긴 부모님의 속 마음을 알게 된 주령이이야기, <망월동 삼거리> 광주사태를 몸으로 겪은 아버지를 둔 해광이, 성재이야기, <날 좀 내버려 둬> 집 나간 엄마를 그리워 하는 채민이 이야기


2015년 롯데는 형제의 난을 겪었다.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의 그룹 지배를 놓고 법정 싸움을 시작하면서 그간 베일에 쌓여있던 신격호 회장의 세 번째 부인인 서미경씨가 언론에 주목을 받았다. 당시 서미경씨를 두고 세 번째 부인이라는 호칭을 붙였지만 엄연히 말하면 정식 부인이 아니었다. 사실혼 관계였지만 정식 부인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축첩(첩을 두는 것) 행위는 불법이기에 정확한 호칭을 붙이기 어려웠다. 이와 비슷한 예로 배다른 형제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은 부부 당사자간의 문제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녀가 받게 된다. 첫 번째 단편인 <진짜는 나쁘지 않는다>에서 주인공 영주는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생활비 주는 것으로 의무를 다한 것처럼 행세하는 아빠와 바람난 남편이 창피하다며 집 안에만 틀어박힌 엄마 사이에서 친구들에게 버림 받는 것이 두려워 과외를 받고 좋은 집에 사는 척 거짓말로 일관한다. 그러한 영주에게 어느 날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장은이가 영주를 보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한다. 영주네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였지만 교통 사고를 당하면서 집에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고 엄마는 생계를 위해 생선가게를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장은이를 보고 영주는 충격을 받는다. 장은이는 예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가면을 썼다고 고백을 한다. 장은이의 이야기에 영주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면을 벗고자 노력을 하고 그러한 노력 덕분에 집에만 있던 엄마도 바깥으로 외출을 결심하면서 마무리 된다. 히키코모리, 불륜, 왕따등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문제들을 소소한 재미와 곁들여 짧은 단편에 다 풀어낸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가면을 쓰게 만든 당사자인 어른들을 향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들이 만든 가면을 스스로 벗을 수는 있기에 아직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돈의 위력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스마트폰이 1위가 된지 오래 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폰의 가격으로 자연스럽게 서열화를 한다. 부모의 직업, 지위, 집 평수를 통해서 재산을 유추하는 건 아이들에게도 식은 죽 먹기다. 아이들은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고 부모들은 거기에 동조를 한다. 주택공사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일반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같이 놀지 못하게 하려고 철조망을 쳐 놓고 놀이터를 구별해서 논다는 이야기, 학교를 등교하기 위해서 아파트를 지나가는 아이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문을 걸어 잠궜다는 이야기 등등 이러한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고 현실이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라는 거대한 공동체에 들어가는 순간 돈이 곧 권력이고 힘이라는걸 알게 된다. 


두 번째 단편인 [쑥ː]에서는 여생에게 키보드를 사주기 위해 돈이 필요한 상진이는 수학 숙제를 대신 해주는 대가로 종현이에게 돈을 받기로 한다. 하지만 약속한 돈은 주지 않고 시험 볼 때 답을 요구한다. 돈과 양심을 놓고 고민하는 날 속에서 여동생인 미진이는 현정이가 청소를 도와주면 떡꼬치 사준다고 해놓고선 안 사줘서 속상해하는 모습에 상진이는 여동생에게 벌컥 화를 낸다. 여동생은 할머니도 돈이 없고 집에는 먹을게 없고 오빠도 돈이 없고 떡꼬치는 먹고 싶은데 어떡하냐고 오히려 하소연 한다. 상진이는 여동생의 행동과 자신의 모습을 통해 다시는 양심과 돈을 바꾸는 행동을 하지 않기도 한다. 아이들은 돈의 개념을 이해하는 순간 돈이 많으면 단순히 좋다는 걸 떠나서 거대한 힘이 생긴다는 걸 안다. 초등학교때부터 돈이 많은 아이들은 돈으로 뭐든지 해결하려는 습성이 보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주면서 친구를 하인 부리듯이 대하거나 선물을 빙자해서 뇌물을 줌으로써 자신의 편을 만들기에 힘을 쏟는 모습은 어른들이 하고 있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릴 때 누구나 실수 할 수 있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양심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시기라는 걸 저자는 보여주는 듯 하다.


<그날, 우리는>, <망월동 삼거리>은 5.18을 주제로 한 단편이다. 작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 되었다. 연설을 마친 5.18유가족 대표를 포옹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기 때문이다. 자신의 탄생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했던 그 연설은 너무나 심금을 울렸고 그에 즉흥적으로 반응한 것인지 미리 예정되어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포옹으로 많은 걸 함축적으로 담을 수 있던 사건이었다. 


5.18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날, 우리는>에서는 주인공 정우의 누나 정주는 어제 군인들이 쏜 총소리에 놀라 교복을 잃어버렸다. 어머니의 꾸중에 못 이겨 정주는 교복을 찾으러 밖으로 나간다. 누나를 찾기 위해 정우도 밖으로 나갔다가 원희 누나를 만나고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을 듣는다. 원희 누나는 군인이 쏜 총에 발이 맞아 피를 흘린다. 누군가 원희 누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린다. 이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지만 어린 정우는 그날의 모습을 잊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무고한 시민이 폭군이 되고 아무런 죄 없는 학생들이 빨갱이가 되어버린 현실을 눈앞에서 본 아이들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고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망월동 삼거리>에서 나온 5.18을 직접 겪은 아버지를 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단편 소설이지만 유추하면서 생각할 수 있도록 저자의 배려가 돋보였다.


<가출 같은 외출>은 먹고 살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자영업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주령이는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민박 겸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두었다. 부모님은 항상 바쁘다. 그런 부모님을 돕기 위해서 13살때부터 물 겁 나르는 심부름을 했으니 벌써 경력 3년차가 되었다. 주령이네 가족은 여행은커녕 찜질방조차 간 적도 없다. 주령이는 무료로 하는 케이팝 스타 총출동 콘서트가 있는 고척스카이돔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후에 있는 버스를 타고 ‘가출 같은 외출’을 할 예정으로 식당을 돕고 있는데 식당에 온 아저씨가 가게 문을 나가면서 손가방을 찾기 시작한다. 주령이는 손가방을 못 보았다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지만 아저씨는 막무가내로 주령이를 의심하고 방안을 뒤지려고 한다. 이에 어머니도 주령이 편을 들고 아버지는 아저씨에게 역정을 내면서 딸을 두둔한다. 몸싸움까지 갈 정도의 상황으로 번져갈 때 일행이 손가방을 들고 있음을 알게 된 아저씨는 주령이 아버지에게 사과를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딸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라고 한다. 이 모습을 통해서 주령이는 부모님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혼자 쓸쓸히 눈사람을 쓸쓸히 만들고 있는 남동생에게 다가가 콘서트를 포기하고 함께 눈사람을 만들기로 한다. 이에 부모님도 동참을 하면서 마무리 된다.


삶이 팍팍하기에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 늪에 빠진 것처럼 좀처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의 폐업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기에 전쟁터 같은 일상을 살아내야만 한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채 담담히 말하면서도 그러한 일상 속에서도 자식을 향한 따뜻한 속마음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부모의 사랑이 있음을 알려준다. 다양한 주제로 이뤄진 이 책은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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