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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해졌다 ㅣ 창의성을 키우는 어린이시 지침서 1
최은수 지음 / 렛츠북 / 2018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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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이 책은 84편의 초등학생들의 시를 담은 책이다. 시를 쓴 학생들은 초등학교 1~5학년이기에 그들의 생각과 감성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책이다. 시를 읽다 보면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맞춤법과 문법에 맞지 않는 부분들도 어린이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했다고 표기하지만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책은 시와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같이 선보이고 바로 옆에 창의적 확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시평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시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의 다양한 심리를 그리기 위해서 이 책을 묶은 저자인 최은수 교사는 농어촌 소규모 학교 2곳, 도심지 2곳, 중간 규모 2곳을 통해서 다양한 계층과 환경에 처한 아이들의 시를 묶어서 더욱더 많은 시점을 느낄 수 있게 되어 있다. 시를 읽고 있으면 특정한 것을 주제로 하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최대한 아이들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 자유롭게 주제 선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시가 언론과 매체를 통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제목은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였고 시는 매우 짧지만 강력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셔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짧은 시를 통해서 많은 아빠들이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사회적으로도 잦은 야근과 회식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아이들의 말은 정직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보고 경험 한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이 시를 쓴 아이의 눈에는 자신의 아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이 생겼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들의 상상력의 한계가 없다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어른이 되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에 제한을 두지만 아이들은 물고기와 대화를 하고 인형과 소꿉놀이를 하며 꿈과 현실을 혼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줄어들 수 밖에 없지만 창의적인 생각들을 잘 잡아만 준다면 아이는 융합이 필수인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될 것 같다.
책의 제목인 멍해졌다는 이 책의 첫 시인 ‘바다구경’의 마지막 시구이다. 이 시는 학생이 제주도 여행을 위해서 바다를 타고 가는 시간 동안 바다를 보면서 느낀 감정을 쓴 시인데 마지막 시구인 ‘멍해졌다’로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 멍해졌다라는 표현을 쓴 것도 개인적으로 놀라웠지만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그 느낌을 전할 수 있는 감성이 더욱더 신기 했다.
초등학생이 자발적으로 쓴 것이 맞나 하는 시들도 종종 있다. ‘늑대’라는 시는 1연에서의 두려움은 관찰자 입장으로 2연에서 두려움은 적극적인 입장으로 마지막 3연에서는 화자의 입장으로 설명을 한다. 늑대라는 동물을 통해 자신에게 있는 거대한 두려움이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그 두려움에 맞서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결국은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이가 늑대라는 동물을 통해서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눈이 오면 직장인들은 출퇴근을 걱정하고 군인들은 제설작업을 걱정하고 주부들은 감기를 걱정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마냥 즐겁고 행복해 한다. 1년 중 겨울에만 오는 눈은 몇 일이 되지 않지만 어른들에게는 반갑지 않는 선물일 수도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 살면서도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민감하게 여기지 않고 한 해 한 해를 살아가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아이들은 잠자리가 신호를 지킨다고 생각을 하고 햇빛이 강력해서 가뭄이 심해진다고 생각을 하고 바람, 무지개, 저녁, 해, 밤 하늘 등을 통해 자연과 일상과 대화를 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시를 읽고 있으면 다시금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시 중에서 시험에 대한, 휴대폰에 대한, 잔소리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시들을 읽고 있으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벌써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그것들을 바라보는지에 대해서 고찰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어른들의 생각을 주입하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은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보기에 좋은 책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