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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어 ㅣ 풀빛 그림 아이
알리체 로르바케르 지음, 리다 치루포 그림, 이승수 옮김 / 풀빛 / 2024년 9월
평점 :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서툰 길의 여정
이 책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영화감독인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첫 번째 그림책이다. 길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서툰 길이었다. 우물쭈물하던 길은 아무렇게나 구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큰 나무에 부딪쳤다. 나무가 움찔하며 부르르 잎사귀를 떨궜다.
뭐하는 거니? 내가 뿌리 내리고 있는 거 안 보여? 겁먹은 길은 아무 말 없이 멈췄다. 그리고 몸을 구부려 숲을 빙 돌아갔다. 이번에는 줄지어 가는 개미 떼를 만났다. 어쩌다 보니 개미 떼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개미들은 크게 놀라 우왕좌왕했다. 길 양쪽으로 갈라진 개미들이 울먹였다. 길은 자기는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길일 뿐이지만 개미 떼는 수가 많고 갈 길이 정해져 있으니 비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오르막에 들어섰다. 오르느라 지친 길은 점점 좁아졌다. 돌멩이와 부딪칠 때마다 길은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갔고 이제는 그저 작은 오솔길이 됐다. 길은 뒤로 돌아 자신의 모습을 봤다. 좁고 울퉁불퉁했지만 정말 아름다웠다. 구불구불 휘어진 길이 신부의 면사포 자락처럼 산을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솔길은 너무 좁았다. 수레조차 지나갈 수 없었다. 수레를 끌던 사람이 투덜거렸다.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길은 수레가 지나갈 수 있게 넓어졌다. 지금까지 이렇게나 넓어진 적은 없었다. 이제 길은 탁 트인 포장 도로가 되었다. 자동차 한 대가 길을 보자마자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이어서 또 다른 차가 들어왔고, 일곱 대가 더 들어왔다. 그 뒤로 백 대, 천 대 쏟아지듯 들어왔다. 차들은 길을 마구 굵어 대며 달렸다. 길은 고속도로가 되었다.
길은 이제 지쳤다. 차들을 모조리 떨쳐 내기로 마음먹었다. 위험하게 굽은 길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계속 흔들어 대자 다들 길을 욕하고 침 뱉었다. 그렇게 나쁜 길이 되었고, 더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거리를 혼자 남았다. 텅 비었다. 조용한 길은 낮은 언덕을 보았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런데 조금 뒤, 한 꼬마의 작은 목소리가 길을 깨웠다. 둘은 장난치며 내리막을 쪼르르 달려갔다. 우리는 길 밖에 서서 바라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