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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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이 책은 브라질 의사가 쓴 완화의료 이야기다. 병원에서 불치병으로 죽는 것은 의사가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들 가운데 하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다. 저자는 환자들과 가족, 친구들을 위해 해온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짐스러운 하나의 거대한 위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음을 고백한다. 저 연극(85p)을 본 이후 자신이 올바른 길로 들어섰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돌보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살필 수 있다.

 

 

 

병에 걸린 사람은 종교적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유한성을 극명하게 인식하는 그 시기에 종교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위험요소도 있다. 신 혹은 신성하게 여겨지는 존재에게 대가를 바라는 조건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면, 그 무엇도 위대한 만남’, ‘종말’, ‘죽음을 미룰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완전히 무너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도 큰 고통에 시달리는 고난의 시기에 신이 소망을 을어주지 않고 삶에서 사려져버렸다는,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기분은 그 무엇보다 큰 아픔을 줄 수 있다.

 

 

 

 

완화의료는 병의 어느 단계에서도 도움이 되지만, 병이 진행되어 신체적 고통이 극심해지고 의학적으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장 큰 가치와 필요를 지닌다. 병의 예후가 좋지 않고 죽음이 임박하면 의사들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니다라는 예언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더 이상 병을 치료할 방법은 없을지라도,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남아 있다. 불치병 진단 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삶의 종말을 맞이하는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과 가족에게 커다란 위안과 평화의 원천이 된다.

 

 

 

의사로서 저자는 환자를 죽이는 건 병이지 병에 관한 진실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환자가 중병에 걸린 걸 알게 되면 일시적으로 슬픔을 느끼겠지만, 그때 느끼는 슬픔은 치유에 대한 환상이나 거짓 약속 없이 진실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으로 건너가는 유일한 다리이다. 환자의 희망을 죽이는 건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 아니라 버림받은 느낌앋. 진실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은 잘못됐다. 환자의 가족들에게 환자 본인이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알 권리가 있음을 납득시키느라 늘 진땀을 뺀다고 한다.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진실을 말해주면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게 될 수도 있다는 근거없는 낭설을 믿는 경우가 많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를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 그리고 통증과 기타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감시킨다. 완화의료자를 흔히 안락사 시켜주는 의사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완화의료는 오히려 안락사를 막아준다. 통증이 없어지고 증상이 좋아지면, 환자는 죽음을 찾아가는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호스피스 병동은 누구나 한 번은 오고, 한 번만 온다. 지구 역사상 이렇게 오래 사는 인류는 우리가 처음이다. 죽어감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죽음이 힘들었다면, 준비되지 않은 노년 역시 춥고 고달프다. 완화의료를 선택한다면 누구나 통증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늙으면 아플까 라는 질문에 대한 정보는 아직도 부족하다. 건강하고 찬란한 노년의 마무리는 영원한 삶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숙지하는 좋은 책인 듯 하다.

 

 

 

 

 

 

 

 

 

 

 

 

 

 

 

 

 

 

 

 

 

 

 

 

 

 

 

 

 

 

 

 

 

 

<인상 깊은 구절들>

 

단 한 번의 리허설도 없다. 죽음에는 연습이 있을 수 없기에 모두가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결과적으로 삶 전체와 일맥상통하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는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78p)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마하트마 간디를 찾아가서 간청했다.

마하트마, 제발 부탁입니다. 제 아들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고 말해주십시오.”

간디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머니에게 말했다.

“2주 후에 아들을 데리고 다시 오시오.”

2주 후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다시 찾아갔다.

간디는 소년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설탕을 먹지 마라.”

어머니는 고마우면서도 영문을 몰라 물었다.

왜 저에게 2주를 기다리라고 하셨습니까? 2주 전에 왔을 때 똑같은 말씀을 해주실 수 있었는데요!”

간디가 대답했다.

“2주 전에는 나도 설탕을 먹고 있었소.”(62~62p)

 

 

 

 

 

 

기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보다는

위험에 용감히 맞설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리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보다는

고통을 이겨내게 해달라고 애원하게 하소서.

 

인생의 싸움터에서 동지를 찾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얻어낼 인내심을 소망하게 하소서.

 

저의 성공 안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실패 안에서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85p)

 

 

 

 

 

우리가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체험은 죽음의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다. 섹스도, 키스도, 비밀을 털어 놓는 것도, 그 어떤 것도 본격적인 죽음의 과정을 함께하는 것만큼 친밀할 수 없다. 그 순간에 당신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함께 있어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 또한 거기에 존재하는 의미를 찾고자 할 것이다. 당신과 죽어가는 사람 둘 다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에서 우선순위와 짐, 두려움, 죄책감, 진실, 환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135p)

 

 

 

 

 

죽음에 가까워진 환자는 동일한 현실에서 만난다. 인간의 고통은 부나 학위, 고무도장, 여권, 접시가 가득 차 있는지 비었는지, 책꽂이에 책이 얼마나 많이 꽂혀 있는지에 좌우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고통을 야기하는 문제들은 다 똑같다. 부유한 아버지에게 유산을 받기 위해 싸우는 아들의 분노와 최저임금의 절반밖에 안 되는 연금을 두고 어머니와 싸우는 가난한 아들의 분노는 똑같다.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느끼는 아픔, 고독, 삶에 대한 사랑, 분노, 죄책감은 똑같다. 종교적 과격성도 똑같다.(158~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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