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왜 이러세요? - 욥이 물었다
강정훈 지음 / 두란노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욥이 물었다



 


이 책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세월이 오래 흘러가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심스러운 목소리이다. 저자의 아내는 골수암으로 5년간 투병하다가 41세 나이로 8월 15일 하나님 곁으로 갔다. 당시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 4학년이었다. 이 후 저자는 20년간 아내의 죽음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이제야 숨겨 놓았던 속마음을 욥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 한다. 저자의 아내는 1989년 자꾸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무릎에 멍울이 잡히면 빨리 병원을 찾았어야 했는데 무심히 시간을 보냈다. 동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나서 조직검사에서 뭔가 발견이 되어 적십자병원으로 갔는데 ‘육종육종肉腫-sarcoma-뼈에서 발생하여 유골조직 및 골조직을 만드는 악성 종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교회를 개척하고 교인 수가 100여 명이 되던 어느 날 아내에게 날벼락처럼 육종이 찾아왔다.





하나님에 대해서 믿는 것과 인생에서 실제로 마주치는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좋은 사람들에게 악한 일이 생기는가 하면, 악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때마다 분명한 답을 주시지 않기에 우리는 자꾸 실망하게 된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욥기의 주제를 ‘고난’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욥기를 고난에서만 멈추는 것은 오해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요셉의 꿈을 총리가 된 것, 즉 세상에서 성공한 것으로 해석하고 멈춘 것과 같다. 욥기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난은 주제를 밝혀 주는 소재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고통을 네 가지(인과응보(因果應報), 반발, 운명론(運命論), 동정)로 해석한다. 욥의 친구들은 고통을 인과응보의 시작으로 해석했다. 욥은 인품, 영성, 가정, 재력, 명예 모든 방면에서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사람으로 성경은 묘사한다. 아브라함, 욥, 다윗, 아리마대 사람 요셉 등은 깨끗한 부자였고 이런 사람들로 하나님 나라는 더욱 힘을 얻어 왔다. 그리스도인들은 깨끗한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돈이 많으면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돈을 하인으로 부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유능한 하인이 된다. 돈은 우리를 고상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게 만든다. 모든 돈은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하나님은 돈의 사용처를 우리에게 일임하신다. 돈은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몫으로 나누느냐도 깨끗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가늠한다. 이런 면에서 욥은 드물게 부와 경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사람이었다.





욥은 선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교육과 직접적인 다스림 속에서 살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에 대한 소망도 없었다. 욥은 사탄의 시험을 통하여 자기의 의가 얼마나 인간적이고 하나님 앞에서 별것 아니었는지를 알아 간다. 욥기는 욥이라는 인물이 자기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극한의 고통을 당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욥기의 중심은 고통이 아니다. 자기의 파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욥기의 주제는 착한 사람이 왜 고통을 당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의는 내 손으로 얻을 수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선물로 받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최고의 정직자 욥을 대상으로 보여 주는 셈이다. 부당하게 엄청난 일을 당하면 대부분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반발형이다. '하나님, 대체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까?'라고 따진다.

둘째는 책임전가형이다. '이렇게 된 건 다 당신 때문이댜'하면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셋째는 자책형이다. '부모인 내게 죄가 있지 저 어린 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러니 제발 나를 책하시고 어린 것은 살려주세요' 하며 눈물로 간절히 애걸복걸한다.






어제(5월 17일) 교회 집사님의 부친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장례식장을 방문하였다. 건강하셨던 분이 집에서 갑자기 쓰러지시고 열흘도 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교회 집사님의 모친은 재작년 정차 중인 상태에서 후미 추돌을 당해 뇌출혈로 현재 의식 불명인 상태이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터라 얼굴을 보자 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부터 흘렀다. 무어라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3년 전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 드리고 장례를 치르면서 가장 많이 운 시간은 동네 소꼽 친구가 밤샘 근무를 마치고 작업복을 입은 채 헐레벌떡 와서 와락 나를 끌어 안았을 때였다. 2년 반이라는 투병 생활이 있었고 끝을 어느 정도 예측 할 수 있었고 임종을 함께 했기에 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말 없는 포옹에 나도 모르게 그간 숨겨두었던 눈물샘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저자의 말대로 마치 낙방생 엄마에게는 낙방생 엄마의 말이 위로가 되고 아픈 사람에게는 아픈 사람, 아팠던 사람의 말이 위로가 된다. 어제 내가 말없이 흘렸던 눈물은 황망하게 아버님을 잃는 집사님에게 아주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욥과 객관적으로 비교하여 더 큰 고통을 당한 사람은 결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욥보다 더 큰 고통이라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이 책이 큰 위로와 감동을 주는 듯 하다.  






<인상 깊은 구절들>



고난은 견디는 것이지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다.(2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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