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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 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박민영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7월
평점 :

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이 책은 현재 우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차별과 배제, 편견의 모든 형태를 전방위적으로 살펴보고 혐오가 일상이 되어 가는 우리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뉴스 기사나 언론의 보도를 보면 교모하게 혐오를 조장하는 경우를 왕왕 본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젠더 갈등, 을과 을 갈등 같은 것을 보면 기사 타이틀을 통해 혐오를 조장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연봉 1억 생산직 파업 결정’ 같은 타이틀을 보자마자 누구도 몇 년을 하루 몇 시간씩 무슨 일을 해서 연봉 1억을 받는 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많이 받는 생산직인데 파업을 해?’ ‘배가 불렀네’ ‘다 짤라’ 와 같은 인터넷 댓글에 옹호하기 쉽다. 이것이 전형적인 을과 을 갈등을 조장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세대, 이웃, 타자, 이념에 대해 포괄적으로 저자는 조목조목 혐오가 난무하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혐오 하면 쉽게 떠오른 것은 특정한 집단, 지역, 인물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 누구도 혐오에 대해 자연스러울 수 없다. 대표적인 예로 아무렇지 않게 ~충이라는 단어를 쓰고 읽고 사용한다. 또한 자신과 생각과 사상, 가치관이 다른 이들을 싸잡아서 매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예멘 난민’ 사건을 들 수 있다.
청소년, 청년, 주부, 노인을 각각 세대별로 지칭하는 단어들을 보고 혐오를 일상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은 중2병, 청년은 공포세대, 무기력한 세대, 주부는 맘충, 노인은 뜰딱충으로 부르며 싸잡아 혐오 한다. 여성 혐오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일상에서 많이 발생되고 있다. 외모품평, 몸매품평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 밖에 장애인, 동성애자, 세월호 피해자, 이주 노동자, 조선족, 난민, 탈북민, 일본, 정치, 이슬람, 빨갱이까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세세하게 짚어 준다.

'룸나무'라는 말이 있다. 룸사롱과 꿈나무의 합성어다. 주로 여성 청소년에서 쓰이는 말이다. 이 얼마나 개탄할 일인가? 그렇지만 이런 말들을 과연 아이들이 스스로 비하 하려고 만들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특히 여성 아이들에게 이러한 말을 쓰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너무나 유명한 말 중 하나인 ‘중2병’이라는 말은 기성세대나 사회에 편리한 면이 있다. 중2병이라고 낙인 찍어 놓으면, 청소년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도 되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여성에게 '예쁘다'고 칭친하는데 그것이 왜 여성 혐오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 못생겼다고 하건 예쁘다고 하건 상관없이, 외모를 두고 품평하는 것은 모두 여성 혐오다. 사람을 물화시킴으로써 그가 가진 인격과 존엄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물화된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가장 적나라한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포르노그래피다. 포르노그래피에서 여성은 결코 독립적인 인격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남성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 상대방의 기분이나 의사를 무화시킨다는 점에서 포르노그래피는 파시즘적이다. 남성의 욕망을 충족된다고 치환함으로써 성폭력을 정당화 한다.
장애인 혐오는 유서가 깊다. 속담은 옛말이고,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는 얘기도 하지만 속담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장애인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정소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귀머거리 들으나 마나'
'벙어리가 서장질을 해도 제 속이 있다'
'장님이 넘어지면 지팡이 나쁘다 한다'
'문둥이 죽이고 살인한다'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 문둥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혐오다. 귀머거리는 청각장애인으로, 벙어리는 언어장애인으로, 장님은 시각장애인으로, 문둥이는 나환자로 불러야 한다. 비장애인들은 흔히 장애를 결핍으로 본다. 이 때문에 장애인은 지피의 대상 혹은 동정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조금만 인식을 바꾸면 장애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장애는 결핍이 아니라 '차이'다. 비정상이 아니라 또 다른 정상, 무능이 아니라 또 다른 능력이다. 장애인은 모자란 존재가 아니라 또 다른 존재다.
혐오가 난무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민중의 고통, 불안, 분노가 크다는 반증이다. 정치적으로 위험한 징후다. 민중의 불안과 분노가 크다는 것은 체제 불안이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혐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 한다.
첫째,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둘째, 경제적 격차를 줄어야 한다.
셋째, 공동체적 가치 지향을 담은 진보적인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한다.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지 '혐오는 안 된다'는 윤리적 당위만으로는 부족하다. 혐오에 대한 '메타 지성'이 필요하다. 혐오가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논리적 맥락 속에 있으며, 그 역사적 원인은 무엇인지, 그 발생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 혐오가 일상이 되어 버린 세상은 결국은 분열 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지금이라도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시도를 해야 할 듯 하다. 현재 한국 사회 속에 만연해 있는 혐오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