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스
제시 볼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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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뿐인 사랑

이 책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들과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부자의 이야기이다. 아내가 죽고 의사로써 아들과 함께 살고 있던 주인공은 어느 날 시한부 선거를 받아 다운증후군인 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인구조사원이 되기로 한다.  

시간의 흐름도, 장소의 위치도 모호하기만 하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까지도 시간은 계속 뒤엉켜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미지의 세계는 A~Z까지 알 수 없는 명칭으로 설명 되고 있다. 책의 제목은 census’ 인구 조사를 뜻하고 있다.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수작업으로 인구 조사를 하지 않지만 아직도 몇몇 나라에서는 책에서 나온 것처럼 마치 사람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사람들에게 표식(문신)을 남긴다. 외과 의사이자 지역 병원 과장이었던 주인공과 다운증후군 아들이 떠나는 여행이라고 하지만 둘의 대화보다는 타 지역에 사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 하다.

인구조사를 한다는 것은 가끔 목적을 위해 말싸움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가 순순히 동의해주지는 않는다. 몸에 표식을 남겨도 좋다고 허락해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멀리 외곽으로 갈수록 저항은 더 심해진다. 아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는 일을 정말 좋아하고 아들도, 아내도 여행을 정말 좋아했는데도 여행이 힘들었던 건 사람들이 아들을 대하는 태도 탓이었다. 어김없이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야비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인간이 잔인해지는 건 참으로 쉽다. 틈만 나면 서슴없이 저지른다. 인간은 잔인한 행각을 사랑한다. 제 딴엔 가소로운 권력을 휘두르는 기회니까 라고 생각한다. 자살이란 사랑에 빠지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인구조사의 사명에 몸과 마음을 바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면서 희한한 얘기를 들었다. 인구조사라는 명목으로 여행하는 이들은 여타 노동자 같은 보호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신상을 보호받을 기본권마저 이  서약을 통해 포기하게 된다. 조사원을 공격하고 상해를 입혀도 아무런 법적인 조치가 없다.

인구조사원들은 완벽하게 무해해 보여야 한다. 책임을 다하려고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조사원들이 상해로 고소할 수 있다면 어떤 집에서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인구조사의 계명

집에 초대를 받으면 무조건 가야 한다.

절대 말과 행동으로 남을 다치게 하지 마라.

목숨이 걸려 있다 해도 안 된다.

단정하고 맵시 있는 복장을 해라

불평은 금지다. 인구조사의 평판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서라도 도움을 기대하지 마라 아무도 당신을 도와 주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씩 당신이 출발한 센터로 완료된 조사의 문서를 보내라

책의 겉모습만 보고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한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 넘는다. 다양한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여러 사람들의 속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을 아들에게 또한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듯 하다. 장애우와 함께 살아가는 건 단순한 동정심과 배려로 이뤄지지 않는다. 타인의 삶이 행복해 보이고 평온해 보이는 것은 지켜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도 파편처럼 몇몇 부분에서만 나오지만 책을 관통하는 것은 역시나 각 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말들이다. 그 말들은 주인공이 동의하기도 하고 때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아들을 남겨두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아비의 심정을 구구절절하게 묘사하지 않아서 더욱더 좋았다. 저자가 본인에게 다운증후군 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기에 더욱더 몰입이 될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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