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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자
구소은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나의 조국은 어디인가?
이 책은 한 명의 주인공을 통해 국적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평범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비범한
인생을 담고 있다. 한번쯤은 주변에서 들어봤을 법한 부모세대 이야기와 인생의 풍파를 온 몸으로 견뎌낸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부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크고 작은 사건들을 열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는 방식이라면 2부는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태국, 프랑스로 몸을 숨기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기수이다. 그는 전쟁 통에 고아가 된 엄마와 38따라지가 된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3번째 아이였다. 그에겐 머리가 아주 똑똑한 외삼촌이 있다. 외삼촌은 국내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 입학을 하였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시위에 앞장을 서게 되고 결국은 강제 퇴학을 당하게 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잡일에 이골이 난 강직한 성격을 가졌고 억척스럽게 가정을 일궈내려고 하지만
청계천에 살던 사람들을 강제로 경기도 광주로 이주 시키고 나서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결국 그는 정부에서 뽑는 독일 광부로 운 좋게 뽑혀서 3년간 받은
봉급을 송금 하면서 가정을 일으켜 세운다. 외삼촌은 여러 사건을 거친 후 자신의 삶을 바꿔보고자 매형을
쫓아 독일 광부로 간다. 몸이 허약한 그는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지는 못했지만 비상한 머리로 남들보다
빨리 언어를 습득하여 행정일을 하도록 배치가 된다. 그러는 사이 독일로 돈 벌로 한국에서 온 간호사와
눈이 맞아 사랑을 하게 되고 약혼까지 한다. 그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육체적은 노동을 감수하다가
그만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만다. 결국 외삼촌은 한국으로 온다.
외삼촌은 술로 세상을 욕하면서 비판하던 성격이 10년쯤 지나자 점차
무뎌지지만 무던하던 아버지는 점차 욕이 늘고 세상을 욕하던 성격으로 변하는 것을 대비하는 모습을 소설에서 보여준다.
누가 진보이고 누가 보수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젊은 날에 한 순간의
객기로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던 사람이 나이가 듦에 따라 보수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사람이 시간이 지날수록 비판적이고 날카로워지기도
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 하다.
힘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던 가정에 믿었던 친구로부터의 배신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집안은 풍지박살 난다. 쫓기듯 첫째와 둘째 누나는 결혼을 하게 되고 대입을 앞둔 주인공은 부모가 바라던 대학입학을 외면 한 채 삶의
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특전사 제대 후 대출업을 하는 보스의 경호원이 되고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 차츰
지내던 중 어머니의 갑작스런 병으로 인해 큰 돈이 필요하게 된다. 보스는 주인공의 착실한 성격을 믿고
거액을 선뜻 빌려준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다. 보스는
살해를 당하고 용의자로 기수는 표적이 된다. 기수는 살해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정황상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고
증인이 있기에 충분히 감옥에 갈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때 외삼촌의 도움으로 태국으로 잠시 몸을 숨긴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수는 엄마가 낯선이와 오랜기간 편지를 주고 받은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친모임을 깨닫고 무작정 프랑스로 가게 된다. 그는 거기서 뜻하지 않은 묘령의 여자를 알게 되고 사랑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 잡힌다. 체류기간이 임박해진 그는 결국 프랑스의 외인부대에 입대를 함으로써 신분 세탁과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거기서 10년을 복무하고 제대를 하고 결국은
한국에 돌아오지만 끝내 정착을 못하고 다시 떠돌이 인생으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다.
이 책의 내용은 영화 <국제시장>과 상당부분 유사한 점을 찾게 된다. 독일의 간호사, 광부 사건을 비롯해 굵직한 한국의 근 현대사 사건을 다 열거하였기 때문이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이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이선희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노래가 귓가에 계속 맴돌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그 노래
마지막 부분인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그 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이 부분 때문일 것이다. 서독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이숙희라는 여성은
자신의 아들을 한 번도 본적 없는 장신자라는 여성에게 맡기게 된다. 그녀가 받은 것 돌사진이 전부이다. 장신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남동생이 정신을 차리고 나이가 듦에 따라 다시금 이숙희에게 마음이 있는지 넌지시
물어보지만 이미 그녀는 프랑스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장신자는 이숙희에게
더 이상 편지를 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때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편지 왕래는 끊기게 된다.
프랑스의 외인부대에서 일하던 주인공 기수는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나이가 아주 많은
한국인 간호사를 만나게 된다. 처음부터 그녀는 자신의 아들임을 알았지만 모른 척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수도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게 되었지만 모른 척 하면서 둘은 묘한 관계를 이루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숙희의 집에 초대된 날이 기수의 생일날이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미역국을 끓여주기도 하고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해 급히 한국으로 가야 하는 상황 속에 공항에서 헤어질 때 둘은 선물을 주고 받고 프랑스식으로 인사를
하자면서 포옹도 하고 뽀뽀도 한다. 기수는 그런 그녀에게 큰절을 올린다. 이것이 그 둘이 서로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을 것이다. 입
밖으로 ‘어머니’ ‘아들’이라고
끝까지 말하진 않았지만 그 둘의 절절한 감정은 글로도 충분히 전해진다.
자신의 인생을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할 수 없다. 각자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참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 기수와 군대에서 알게 된 탈북자 김준의 대화를 통해
이 책의 핵심 내용이 전달 된다. 과연 우리에게 국적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인지를 되묻고 있다. 이 책은 격동의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인 6.25세대, 지금의 40~50대인
민주화 세대 그리고 지금의 88만원 청년 세대까지 다양하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인 듯 하다.
인상 깊은 구절들
『참나무 몽둥이를 휘두르던 삼청교육대의 조교들은 집에서는 착한 아들, 좋은
남편, 멋진 아빠였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는 악마로
변신했다. 천사와 악마는 원래 샴쌍둥이였던 게 분명하다.』(55p)
『행운이라는 것은 낙담한 사람이 거의 모든 것을 체념하려는 순간에 불쑥 찾아오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다.』(2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