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으로는 어른과 맞먹지만, 아직 어린아이 특유의 무서운 상상력을 졸업하지는 못한 나이다.-62쪽
또한 3분의 1은 담배를 피우고, 대체로 술을 마시며, 다들 내일은 없다는 듯 먹어댄다. 직업상 늘 불행을 가까이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와 우울증, 그리고 웃음과 쾌락에 대한 남다른 욕구... 누가 이유를 알겠는가. 시카고 법의국의 부국장으로 있는 냉소적인 친구 하나는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 "될 대로 되라지. 언젠가는 나도 죽어. 사람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고. 건강한 몸으로 죽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66쪽
당신 같은 예술가들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예술가뿐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똑같은 감정을 느껴요. 똑같은 공허함, 똑같은 고독... 단지 그걸 말로 표현할 재주가 없을 뿐이에요. 그래서 계속 살아나가는 거예요. 몸부림치면서. 감정은 감정일 뿐이죠. 난 온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89쪽
미술가라면 그림을 그려줬겠죠. 피터슨은 말로서 그림을 그려준 거라고요. 그게 그 사람의 존재 방식이고 표현 방식이에요. 오로지 언어를 통해서. 이런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101쪽
습격당하는 순간 공포 때문에 소화 활동이 완전히 멈춘 것이다. 이건 인체의 방어기제 중 하나다. 위장 대신 팔다리로 혈액이 흘러가서 저항하거나 도망갈 태세를 갖추기 위하여 소화 활동이 중지되는 것이다.-150쪽
삶의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익어가는 거지.-187쪽
나만 빼놓고 모든 사람들이 합세해서 지독한 장난이나 음모를 꾸미고 있는 느낌이었다. 참을 수 없는 고독감과 심한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나 자신의 판단력과 통찰력, 이성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237쪽
나 역시 새벽에 집을 나서서 다음 날 저녁까지 들어오지 않아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였다. 생존은 오로지 책과 연구실, 시험, 교대 근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 에너지를 유지하는 데 달려 있었다.-238쪽
하지만 장미꽃에 양분을 공급하는 것은 토론이 아니며, 인간관계의 기반은 논리가 아니다. 나는 지성과 이성이라는 벽 뒤로 숨어버리는 것은 타인의 행복을 희생하여 자기 보호를 꾀하는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243쪽
하지만 이모도 상처받아서 그랬는지도 몰라. 네가 우리 사이의 신뢰를 깨뜨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팠어.-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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